고성 불길, 속초 덮쳤을때..'재난 매뉴얼'따라 이미 피신했다

이상헌,오수현,김유신,신혜림 2019. 4. 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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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초기 대응
불난지 21분 만에 1단계 발령
초기 집중 대응
단일 화재 최대규모 동원 요청
유기적인 협조
강원도·행안부·軍, 대응 공조
목숨 걸고 불길로 소방관 헌신
'숨은영웅' 특수진화대도 회자

◆ 강원 산불, 대응 남달랐다 ◆

지난 5일 오전 강원 산불 진화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소방차들이 동해 초기 진화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망상오토캠핑장 인근 주차장에 주차돼 있다. 지난 4일 이후 5일까지 강원 산불 진화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투입된 소방차는 872대, 소방인력은 3251명에 이른다. [연합뉴스]
'530㏊'의 산림과 565채의 가옥을 잿더미로 만든 강원 동해안 산불은 역대급 피해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단 1명에 그쳤다. 화재 발생 14시간여 만에 주불이 잡히는 등 빠르게 진화됐다. 이는 재난 대응 체계가 신속하고 긴밀하게 제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강원 산불은 4일 오후 7시 17분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주유소 건너편 개폐기에서 최초 발화했다. 고성·속초소방서는 산불 발생 21분 만에 '화재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자체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초속 20m 이상의 강풍 탓에 불길이 속초 시내로 향하자 강원도소방본부는 산불 발생 1시간여 만인 오후 8시 23분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서울 경기 충북 등 강원 인접 지역에 소방력 지원을 요청했다. 고성에서 속초 시내로 번진 불길은 주택과 시설물 등을 덮쳤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미 대피소로 피신한 뒤였다. 속초시는 불길이 시내로 진입하기 전에 재난문자를 발송하고 대피령을 내렸다.

해가 지고 헬기 투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진화는 난항을 겪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소방청은 4일 오후 9시 44분 최고 수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 소방인력 출동 명령을 내렸다. 산불이 발생한 지 2시간여 만이었다.

이에 따라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소방차가 산불 진화를 위해 강원도로 향했다. 화재 현장으로 향하는 양양고속도로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소방차로 가득 찼다. 이렇게 모인 소방차는 모두 872대, 소방공무원은 3251명에 이른다. 단일 화재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소방관들의 목숨을 건 진화작업이 빛을 발했다.

고성과 속초가 초토화되고 있는 사이 강릉에서 오후 11시 48분께 발화한 산불이 동해 망상까지 번지고, 앞서 오후 2시 45분부터 시작된 인제 산불도 진화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강원도로 모인 전국 소방인력은 화재 현장으로 분리 투입돼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재난 대응이 가능했던 건 소방청 독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2017년 6월 정부조직개편안에 따라 소방본부는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산하 조직에서 소방청으로 분리됐다. 1975년 내부무 소방국이 세워진 지 42년 만이었다. 소방청 독립으로 해당 지역의 소방력만으로 진화가 어려울 경우 타 지역 소방력 동원을 요청하는 권한도 국민안전처 장관으로부터 소방청장에게 넘어갔다.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보다 신속하게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된 것이다. 행안부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행안부는 산불 발생 1시간여 만인 오후 8시 30분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재로 상황판단회의를 거쳐 자정을 기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강원도도 오후 10시 15분 고성에 현장통합지휘본부를 설치하고, 최문순 강원지사의 지휘 아래 현장을 통제했다. 군도 적극 협력했다. 국방부는 5일 일출과 동시에 군 헬기 32대, 군 보유 소방차 26대와 장병 1만6500여 명을 투입했다.

그 결과 고성·속초 산불은 발생 하루 만인 5일 오전 8시 15분께 주불을 잡았고, 강릉·망상은 오후 4시 54분께 진화를 완료한 뒤 잔불 감시 체제로 전환됐다. 2005년 낙산사를 태우고 산림 180㏊와 주택 161채가 불탄 양양 산불이 이틀 만에 잡힌 것보다도 빠른 대응이었다.

무엇보다도 목숨을 걸고 불길에 뛰어든 소방관들의 헌신이 돋보였다.

SNS에서는 국토 최남단 전남 해남에서 밤을 새워 소방차를 몰고 와 속초에서 맹활약한 후 한숨도 자지 않고 다시 해남으로 돌아가는 소방관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저가 마스크 등 열악한 장비를 갖추고 불속으로 뛰어든 '비정규직' 산림청 특수진화대 사례도 회자됐다.

헬기 진화 작업도 적절했다. 4일 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조종사들은 전원 소집 명령을 받고 즉시 출동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상태였지만 야간 비행이 금지돼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소방대원들이 인력으로 진화를 시도하기 어려운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뜬눈으로 화재 상황을 지켜보던 조종사들은 다음 날 새벽 6시 해가 뜨자마자 헬기에 탑승해 속초로 향해 진화 작업을 펼쳤다. 속초 진화에 이어 강릉과 인제 등으로 오가며 진화에 나서 끝내 불길을 잡아냈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소방헬기가 진화 작업에 투입되고 전국에서 달려온 소방차가 집중 투입되면서 진화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7일 페이스북에 "소방관과 산림청 공무원, 장병들 모두 최선을 다해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맹렬한 불과 맞서 이웃을 보호했다"며 "정말 자랑스럽다. 깊이 감사드린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에 대한 격려에도 감사드린다"라며 "재난은 예고가 없다. 항상 준비하고, 훈련하고, 더 신속하게 대응할 체계를 갖추겠다"고 다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이번 산불 진압 과정에서 가동된 정부의 위기대응체계를 정리한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의 총력 대응, 시스템 대응, 적극 대응으로 초대형 산불이 조기에 진화됐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재 상황판단회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 등 모든 상황이 매뉴얼에 입각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 문 대통령이 강원도 산불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함에 따라 고성군·속초시·동해시·강릉시·인제군에는 복구비와 세제 혜택 등 각종 지원이 이뤄진다.

이번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국가와 지자체는 산불 피해를 입은 사망자·부상자 등 피해 주민 구호와 피해 주택 등 사유시설·공공시설 복구비를 지원한다.

7일 오후 4시 현재 집계된 재산 피해 규모는 전날보다 더 늘었다. 당초 중대본은 6일 오후 11시 집계 기준으로 주택 285채, 창고 57채, 관광세트장 109동, 차량 14대, 건물 17동이 소실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7일 오후 9시 중대본의 집계에 따르면 주택 565채, 창고 142동, 관광세트장 158동, 차량 16대, 건물 99동이 불에 탄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축산시설 952곳, 농업시설 93곳, 공공시설 71곳, 문화관광시설 168곳, 학교 부속시설 9곳이 피해 집계에 처음으로 포함됐다.

[고성·속초 = 이상헌 기자 / 서울 = 오수현 기자 / 김유신 기자 /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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