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금 쓰는 일자리 아니라 세금 내는 일자리 만들어야"

2019. 4. 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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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불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KDI는 ‘경제동향’ 4월호에서 “경기가 점차 부진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개선 추세’에서 지난해 11월 ‘둔화’로 바꾼 지 5개월 만에 ‘부진’이라는 표현을 썼다. KDI는 “둔화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생산·투자·소비·수출 모두 마이너스 성장한 현실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실물 경제도 암울하다. 사무실과 상가에는 불이 꺼졌다. 10% 정도이던 서울 강남대로 인근의 오피스 공실률은 최근 20%에 육박했다. 지난해 자영업 폐업자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8대 주력 업종’인 반도체·석유화학·석유제품·조선·자동차·철강·디스플레이·무선통신기기 가운데 최후의 보루였던 반도체마저 흔들리고 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6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60%나 급감했다.

무디스가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낮추는 등 나라 밖에서도 온갖 경고가 날아들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낙관 일색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가 견실하다”고 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긍정적 신호가 나온다”고 했다. 어이없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족보 있는 소주성(소득주도 성장)”은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 뉴욕대 교수가 “생산 없는 현금 분배는 인적 자원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해도 마이동풍이다. 경제 원로들이 대통령 앞에서 “(소주성이) 인권 정책은 될 수 있어도 경제 정책은 될 수 없다”고 해도 못 들은 척이었다. 추후 브리핑에서 원로들의 따끔한 지적을 대부분 뺐다. 참석자가 “이럴 거면 뭐하러 초청했느냐”고 할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도 옹호하는 소주성은 고용 참사를 불렀다. 이 때문에 정부는 세금 뿌려 일자리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진짜 필요한 건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의 말대로 “세금 쓰는 일자리가 아니라 세금 내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규제를 확 풀어 기업의 신산업 투자를 끌어내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규제라곤 무엇 하나 속 시원히 풀린 게 없다. 기껏 해결했다는 승차공유제 역시 속내는 ‘출퇴근 시간만 허용’이란 또 다른 규제를 낳은 게 전부다. 그러는 사이 기업들은 돈 보따리 싸 들고 투자처를 찾아 해외로 돌아다니고 있다. 이대로면 ‘세금 내는 일자리’는 외국에만 생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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