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고 밀리고.. 나는 1972년생 김부장입니다

박흥순 기자 2019. 4. 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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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등장한 ‘X세대’가 지금은 ‘낀 세대’ 김 부장으로 대한민국 중심에 서 있다. 유래 없는 ‘신인류’로 불렸지만 베이비붐·밀레니얼 세대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낀 세대’로 낙인찍힌 그들. 직장에선 ‘말 잘 듣는’ 부하직원이자 ‘꼰대 강박증’에 시달리며 집에 가도 아내와 아이들이 불편해 한다. 한해 1000명이 넘는 ‘김 부장’이 자살하고 젊은 날을 바친 직장을 떠난다. 누가 그들을 궁지로 내몰았을까. 무엇이 그들이 버티고 힘내게 하는 걸까. <머니S>가 ‘김 부장’의 하루를 통해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72년생 김부장] ①'김부장'의 하루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세대’. 한때 ‘신인류’로 불렸던 이들이 2019년 ‘김부장’이 됐다. 한 집안의 가장이면서 직장에서는 팀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김부장’은 이제 대한민국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심이 됐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40대의 보통 남자. 72년생 김부장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의 하루를 재구성해 봤다.

◆선배에 눌리고 후배 눈치 보는 ‘낀 세대’

오전 6시30분. 48세 김부장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이다. 직장생활 20년차. 산전수전 다 겪은 김부장이지만 출근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렵다. “속이 안 좋은데….” 간밤에 마신 술이 그의 위점막을 괴롭힌다. 냉수 한잔으로 겨우 속을 달래고 오전 7시 머나먼 출근 여정에 나섰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김부장의 집은 직장과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지만 출근까지는 1시간30분이 걸린다. 그래도 그는 나름 ‘대한민국 평균’이라며 위안 삼는다. 지난달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한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출근시간은 1시간43분이었다. “이정도면 다닐 만하지 뭐.” 그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콩나물시루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인파에 치여 주름 잡힌 옷을 툭툭 털며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30분. 출근시간이 30분 이상 남았는데 동료 부장들은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그의 팀원들은 아직 출근하지 않은 상태다. 자리에 앉은 김부장은 슬리퍼를 신고 간밤에 나온 뉴스를 PC로 접한다.

김부장이 인터넷 기사 갈무리를 끝낼 즈음 팀원들이 하나 둘 출근한다. 그는 팀원들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회의를 제안한다. 사실 별다른 내용은 없다. 이 상무의 기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회의 소집에 팀원들의 투정이 귓전을 맴돈다. 아니나 다를까. 회의실은 무거운 공기가 맴돈다. “왜들 이렇게 풀이 죽어 있어.” 김부장은 팀원들을 다독이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좋지 않다.

누가 그랬던가. 40대는 ‘낀 세대’라고. 김부장은 새삼 느꼈다. 위로는 상사의 분위기를 살피고 아래로는 후배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박쥐같다고. 사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40대를 그 누구도 품으려 하지 않는다. 윗 세대는 “너희들은 가난도 배고픔도 모른다”며 40대를 철부지 반항아 취급하고 아래 세대는 “헬조선, 이생망, N포세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냐”며 항변한다.

이도저도 아닌 그에게도 화려한 시절은 있었다. 1990년대 20대를 보낸 김부장은 ‘X세대’로 불렸다.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대중문화를 흡수할 수 있던 이들은 X세대가 유일했다. 그들은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율화되면서 세계를 누볐고 ‘삐삐’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문명의 혜택을 누렸다. 그렇다고 마냥 평탄한 삶을 산 것도 아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최초로 취업난을 겪은 세대다. 구인난에 모집인원은 ‘000명’에서 ‘0명’으로 줄었고 그 자리는 ‘SKY’ 출신들이 차지했다.

과거를 회상하던 김부장이 알 수 없는 씁쓸함으로 입맛을 다실 즈음 이 상무가 말을 건다. “김부장 점심 같이 먹지?” 후배들은 김부장의 시선을 외면한다. “예. 그러시죠.” 김부장은 하는 수 없이 오늘 점심시간도 이 상무에게 바친다. 정작 자신은 후배와 점심을 먹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하지만 김부장은 ‘꼰대’라는 낙인이 싫어 후배들에게 점심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X세대’ 출신 아닌가. 무한한 ‘쿨함’을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꼰대짓은 안될 말이다. 점심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카톡 감옥’이라는 말도 생기면서 후배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도 시계를 볼 정도로 ‘꼰대 강박증’에 시달린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꿈은 있지만 이룰 수 없는 그들

‘딩동’. 점심 후 나른함을 이기지 못한 김부장이 잠깐 눈을 붙이기 무섭게 스마트폰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부고 박×× 별세’. “익숙한 이름인데….” 생각해보니 대학시절 동기 녀석이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메시지였다. 그는 술을 참 좋아했다. 대학생이던 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으로 심야 술집영업이 금지됐을 때도 친구들과 어울려 신림동, 가리봉동, 화양리 등지의 몇몇 술집에서 암막커튼을 치고 밤새 술을 마실 정도였다.

“그렇게 술을 마시더니 기어이 먼저 갔구먼.” 퇴근 후 찾은 동기의 장례식장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가득했다. 이제 경조사가 아니고서는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그들 아닌가. 반가움에 인사를 하지만 분위기는 무겁다. 남 일 같지 않다는 말이 연신 장례식장을 덮는다. 사인은 돌연사란다. 출근길 준비를 서두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질병관리본부 추산 2017년 기준 40대 돌연사 사망자는 연간 1097명으로 30대 365명의 세배에 달한다. 대한민국 40대 가운데 하루 평균 3명이 돌연사로 명을 달리하는 셈이다. 돌연사 가운데 가장 많은 원인을 차지하는 허혈성 심장질환의 경우 술·담배가 치명적인데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근에는 음주·흡연을 권하지 않는 세태가 자리 잡았다지만 40대는 예외다. 윗사람이 권하는 술을 마다할 용기도 없고 술을 못하면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일자리를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마신 술이 독이 돼 돌아온다.

매일 그렇듯 오늘도 김부장은 술에 취해 귀가한다. 택시를 잡아타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라 외쳤던 혈기는 20년이 지난 지금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40대는 노력하면 이룰 수 있었던 베이비붐 세대도 아니고 꿈이 없는 밀레니얼 세대도 아니다. 목표는 여전히 가슴 속에 있지만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세대다. 김부장에게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 없는 하루일 뿐이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울해진 김부장은 눈을 감아버렸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7호(2019년 4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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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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