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5·18 망언' 김순례 비판성명 철회한 숙대 사건의 의미는?

2019. 4. 1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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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온건 페미니즘 VS 급진 페미니즘 충돌?
②커뮤니티에 밀린 총학생회 대표성의 위기?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사진 왼쪽)과 숙명여대 캠퍼스 모습.

8일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5·18 망언과 세월호 유가족 폄훼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40여일 만에 철회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5·18 망언’ 김순례 의원 비판성명 철회한 이유) 이번 결정은 지난 4일 열린 ‘전진숙명’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 정기회의에서 14명의 운영위 위원(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유지 2인, 철회 8인, 기권 4인’으로 성명 철회를 의결한 데 따른 것입니다. 그러자 에스엔에스(SNS) 등에선 숙명여대 학생들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학생들을 싸잡아 비판하기보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을 통해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뉴스AS에서 숙명여대 총학생회의 ‘5·18 망언’ 비판성명 철회와 관련한 2가지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온건 페미니즘 VS 급진 페미니즘 충돌?

10일 숙명여대 재학생과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 성명 철회 사건은 숙명여대 내 온건 페미니스트와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대립 구도에서 온라인 여론을 등에 업은 ‘급진 세력’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승리(?)를 거둔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2015년 여성 회원이 주축인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가 등장한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여론은 ‘페미니즘=탈코르셋(여성에게 여성다운 외모와 복장 등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금기에 대한 일종의 저항 운동)=메갈리아=워마드’라는 일률적인 공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페미니스트 개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관점에 따라 ‘온건’ 성향부터 ‘급진’ 단계까지 여러 갈래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분화 현상은 숙명여대뿐만 아니라 최근 여성 회원들이 주축인 커뮤니티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쟁점 가운데 하나가 지난해 12월 당 대표로 선출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지지 여부입니다. ‘급진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이 보다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나경원 의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 ‘온건 페미니스트’들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력 사건 특검 도입을 놓고 ‘드루킹 특검’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브레이크를 건 나 의원을 ‘명예남성’으로 비판하며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치인을 지지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차이에 더해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회의론까지 제기되면서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온건 페미니스트들과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분화는 가속화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숙명여대 동문인 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을 비판하는 총학생회의 성명에 대해서도 학생 사회 내부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총학생회는 지난 2월18일 낸 성명에서 “김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를 모욕하여 또다시 숙명의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켰다”며 총동문회가 2016년 김 의원에게 수여한 ‘올해의 숙명인상’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일 총학생회에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독단적 의사결정을 멈추라’는 ‘615명의 숙명인’ 명의의 성명서가 도착하면서 성명 철회가 재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5·18 망언’ 비판성명의 철회를 주장한 숙명여대 학생들이 내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같이 발언한 남(성) 의원 학교에선 무슨 일을 하나요? 총학생회는 안 그래도 좁은 여성 정치인의 입지를 그만 막으시길 바랍니다.”

“굳이 우리가 나서서 동문을 규탄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여성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기회가 과연 몇이나 되는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지난 4일 진행된 중운위 14차 정기회의 회의록 별첨자료2>

이에 대해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씨는 “(1990년 후반~2000년대 초반에 활동한) 과거 2~3세대 페미니스트 가운데에도 ‘여성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었다”며 “‘5·18 망언’ 비판성명의 철회를 주장한 페미니스트 그룹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진보와 선을 긋는 여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이같은 주장은 문제가 없는 걸까요? 권김현영씨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죠.

“‘여성을 위해서’라는 근거를 내세워 5·18 망언 비판성명을 철회하라는 주장인데, 중요한 건 어떤 여성의 이해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지지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자면 다 지지한다’는 건 5·18로 희생된 여성들의 이해관계는 무시하고, 김순례 의원처럼 권력을 가진 여성들만 챙기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여성을 위해 비판성명을 반대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되는 거죠.”

■ 커뮤니티에 밀린 총학생회 대표성의 위기?

이번 사태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총학생회 중운위의 결정이 40여일 만에 뒤집히는 과정에서 대학가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 학생들의 투표로 선출된 총학생회의 대표성을 압도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2월 총학생회 명의의 비판성명 발표 안건이 중운위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브리타임’에서 반대 여론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 온라인 여론은 거세게 커졌습니다. 이에 압력(?)을 받은 중운위 위원들이 입장을 바꿔 지난 4일 성명 철회에 대해 ‘유지 2인, 철회 8인, 기권 4인’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대학 총학생회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입장을 냈다가 일반 학생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경우는 이번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8월 서강대 총학생회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의 1심 무죄 판결을 비판했다가 학내 반발에 부딪혀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탄핵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총학생회의 입장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학생회 집행부가 탄핵 위기에 놓이거나 이미 발표한 성명을 철회하고 사과하는 일은 드문 사례였습니다. 2019년 대학 총학생회는 어쩌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보다 못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총학으로 대동단결’하던 1980년대와 달라진 2010년대 다원화 사회가 낳은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학생들이 그에 대한 대의에 공감했던 만큼 총학생회가 사회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면 지지를 받았지만, 민주화 이후 다원화된 사회에선 총학생회가 정치혐오에 빠진 학생, 사회문제에 관심은 있지만 관점이 전혀 다른 학생, 처우개선만 신경 쓰는 학생 등 다양해진 의견을 한 목소리로 대표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도 “총학생회가 직접 학생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못 하게 된 게 크다”며 “일반 학생들의 경우 총학생회의 의견이나 주장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대학생들 사이에 정치적 견해가 다양해진 게 원인인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 현상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번 사건은 숙명여대만의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며 “학교가 기업화하면서 학교는 일종의 브랜드가 됐고, 학생들은 교육 소비자로서 정체성이 확고해져 있어서 총학이든 뭐든 나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런 분위기가 대학생들의 탈정치화 현상과 연결되는데, 이는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쓸모가 없는 총학보다는 교수 평가 등으로 학교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에브리타임’ 등의 학내 커뮤니티가 더 효용성이 크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런 소비자주의적인 정체성이 대학의 주류가 되면서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숙명여대 총학생회의 ‘5.18 망언’ 비판성명 철회는 문제 될 게 없는 것 아니냐고요? 그렇진 않습니다. 권김현영씨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5·18 문제에 대해 그럴 수 있어?’라고 반응하는 건 생산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사태를 겪은 우리 사회 또는 진보진영은 앞으로 무엇을 해나가야 할까요? 그 답을 들어보시죠.

“‘대학생들이 어떻게 5·18 문제에 대해 그럴 수 있어?’라고 반응하는 데 그친다면, 비판성명 철회를 주장한 학생들은 ‘왜 저 사람들은 맨날 자기들만 옳다고 해?’라고 해버리겠죠. 1990년대 대학사회는 지금보다 엄청 정의로웠나요? 아니에요. 총학생회는 언제나 정의를 대변하는 소수였어요. 오히려 위임받은 권력을 특별히 견제받지 않는 경향이 컸죠. 그런데 이제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수단이 생긴 거예요. 이번 일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합의한 내용이 무너진 게 아니라 계속 갱신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이 왜 문제인지, 새로운 플랫폼에서 어떻게 공론장을 만들 것인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반대 의견을 수용하되,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고 기존 입장이 올바르다는 생각을 발표함으로써 다시 정치를 시작한 겁니다. 전진을 위한 후퇴라고 할까요?”

선담은 오연서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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