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전기도 고령화.. 이 기계가 멈추는 날, 신문은 어떻게 될까

최승영, 강아영 기자 입력 2019. 4. 10. 18:00 수정 2019. 4. 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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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전기로 본 신문의 현재와 미래
지난 4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 사옥 지하 4층에 자리한 윤전기에서 헤럴드경제 지면이 인쇄돼 나오고 있다. 윤전기는 시간당 4만부의 속도로 신문을 찍어낸다. 헤럴드경제 같이 32페이지 신문의 경우엔 초기에 파지만 80~100kg이 나온다.

지난 4일 오후 2시40분께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지하 3층. 서울신문 제작국 인력들이 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CTP(Computer To Plate)기가 4일자 석간 헤럴드경제 신문 지면 마지막 판을 막 내놓은 참이었다. 금속판 한 장엔 기자들이 취재해 마감하고 편집까지 마친 신문 한 면이 그대로 올라앉았다. 10분쯤 후, 프레스센터 지하 4층 공간 전체를 채운 기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간당 4만부의 속도로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 소리였다.

배출구 인근 3~4명 직원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초기에 나오는 파지 신문을 버린 이후 갓 나온 신문을 펼쳐 인쇄 질을 확인하고 기계 상태를 체크했다. 배병관 서울신문 제작국 과장은 “파지 신문은 32페이지 기준 80~100kg이 나온다”며 “이 기계로 헤럴드경제, 국방일보, 평화신문, 경기일보, 에너지경제 등 외부 매체를 시간대만 달리해 하루 종일 찍어낸다. 제작국 인력 39명이 4교대 근무로 이를 커버하고 있고, 이렇게 나온 신문이 아침 혹은 저녁 시간에 맞춰 전국 각지 독자에게 배달된다”고 말했다.

매끄러운 공정 이면엔 깊은 우려감이 자리한다. 신문 산업은 위축됐는데 윤전기 4세트 한 달 유지비에만 6억원 가량이 든다. 신입채용을 건너뛴 지 4~5년 됐고 인력은 고령화된다. “물량이 더 빠지면 부서 존폐위기”에 몰릴 수 있다. 무엇보다도 윤전기 수명이 문제다. 배병관 제작국 과장은 “윤전업계 이슈는 기계(윤전기) 수명이다. 언론사들 기계가 다 노후화되고 있다”면서 “종이인쇄가 사그라지는 단계라 우리가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을까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신문의 날’을 지나친 현재, 윤전기를 보유한 모든 신문사들에겐 공통의 고민이 있다. 신문이란 ‘제품’을 뽑아내는 공정 근간에 자리한 윤전기라는 기계가 고민의 핵심이다. 신문 산업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하루 수십만 부, 수백만부를 찍어낼 수 있는 윤전기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기계는 노후화된다. 더불어 업계는 대당 수백억원에 달하는 새 기계를 선뜻 구매할 상황이 못 된다. 윤전기로 신문을 찍어내는 풍경은 상당수 신문사에서 이미 실종된 상태다.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향후 기계 노후와 맞물려 업계에 큰 변화가 야기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배병관 서울신문 제작국 과장이 신문용지 위에 신문을 얹어 보고 있다. 신문용지는 신문 4개면을 펼쳐놓은 만큼의 폭이다.

◇국내 신문사 윤전기 현황과 수명은?기자협회보가 한국신문협회 회원사를 중심으로 지난 1월 윤전기 현황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 주요 신문사는 윤전기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협회 전체 52개 회원사 중 중앙·지역 일간지는 46개사였는데 윤전기를 보유한 곳은 22개사에 불과했다. 보유 윤전기 수도 적게는 1세트부터 많게는 10세트까지 편차가 컸다. 10대 주요 일간지 중에선 한국일보와 국민일보가 윤전기 없이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다수 윤전기는 1990년대 초중반과 2000년대 초반에 설치됐다. 가장 오래된 윤전기는 한국경제 중림동 공장 미스비씨 기계로, 2007년 설치한 GOSS기계와 결합해 구동 중이지만 본래 설치는 1986년에 됐다. 세계일보 가산동 윤전기도 1989년 설치돼 오랜 기간 작동된 상태다. 중앙 일간지 중에선 중앙일보(2009년, 4세트), 문화일보(2011년, 3세트), 동아일보(2014년, 2세트)가, 지역 일간지 중에선 강원일보(2016년, 1세트), 국제신문(2018년, 3세트)이 비교적 최근 윤전기를 새로 설치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통상 윤전기 수명을 ‘30년+a’ 정도로 말했다. 제품 성능과 기종, 관리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30년 이상을 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단, 해당 연한을 초과하면 부품 수급 문제가 생긴다. 전자 칩 하나만 고장 나도 작동을 안 하는데 부품이 단종돼 버린다는 것이다.

신문사 윤전 부문 A관계자는 “상업용 윤전기가 아닌 만큼 부품 구하긴 더욱 어렵고, 결국 타사 윤전기 매물에서 부품을 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얼마 전 국민일보가 인쇄 자회사 문을 닫고 윤전기를 매각한다고 했을 때 정말 여러 신문사에서 달려들었다”면서 “2000년대 초중반 기종인 메이저를 제외하면 나머지 신문사는 연한이 5년 안에 끝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신문위기와 윤전기 운영에 부담 느끼는 경영진상당수 신문사 경영진은 윤전기 유지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윤전기를 보유한 종합일간지 경영 부문 B관계자는 “윤전기가 신문사의 상징이란 건 옛날 얘기다. 안 쓸 수도 없고, 쓰자니 비용만 많이 들어가고 현재로선 굉장히 골칫덩어리”라며 “인터넷매체는 인건비, 임대료 정도가 든다. 신문사는 종이신문을 만드는 비용 때문에 고비용 구조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이 윤전기”라고 했다.

배경으론 종이신문 수요가 급감하는 현실이 자리한다. 한국ABC협회가 매년 내놓는 160~170개 신문사 발행부수현황은 지속적인 부수 감소 추세를 보여준다. 제지업계의 국내 신문용지 소비현황은 이보다 더 종합적으로 신문 업계의 현실을 드러낸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신문용지 내수 소비량은 지난 2008년 97만톤이었지만, 2015년 60만톤까지 줄었고, 2017년엔 61만톤을 기록했다. 약 10년 새 37%가 줄어든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계 수명이 다 했다고 선뜻 고가의 윤전기를 구매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새 윤전기를 구입한다는 말이 돌았지만 현재로선 고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경제신문 C관계자는 “지난 2~3월 임원 등이 일본 윤전기 전시회에 방문한 게 좀 와전돼 전해진 것 같다. 윤전기를 구매하려면 현 기계를 언제 어떻게 떼고 가져와서 설치할지, 그 기간 대쇄는 어떻게 할지 계획이 서야 되는데 논의된 게 없다. 오랜 기간 고민 해왔지만 당장 구매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신문사에선 새 것에 가까운 윤전기를 팔아버리는 조치까지 나왔다. 국민일보는 최근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인쇄를 담당하는 자회사 국민일보P&B 문을 닫았다. 김형수 전 전국언론노조 국민일보P&B 지부장은 “우리 같은 일이 또 다시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업계 현실이 그렇다보니 2~3년 후에 벌어질 일일 줄 알았는데 때가 빨리 왔다.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전했다.

◇상당 기간 지속될 윤전기 근간 비즈니스 모델… 메이저 대쇄 몰릴 소지 커그렇다고 신문사들이 당장 윤전기를 없앨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현재 신문사가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윤전기의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쇄물에 광고나 협찬을 담는 대가로 신문 산업은 유지돼 왔다. 여기선 신문발행부수가 ‘단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아무튼 윤전기를 계속 돌려야 손해가 나지 않고, 대량인쇄가 가능하기에 성립되는 구조다.

다만 신문 위기 속에서 ‘발행부수 뻥튀기’ 등보다 실리를 찾으려는 쪽으로 경영기조가 기울고, 더불어 윤전기 노후에 따른 감가상각비 상승 우려까지 겹친 게 현재다. 현 신문사 경영진의 고민이 ‘윤전기 없이 윤전기에 기반한 산업 모델을 이어가는 것’이라 할 때 대안은 ‘대쇄’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신문사에 인쇄를 맡기는 것이다.

이미 신문업계에선 이 같은 흐름이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기계 수명이 상당 기간 남았고 대규모 발행이 가능한 몇몇 메이저신문이 인쇄의 거점이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실제 150여명이 근무하는 중앙일보 자회사 제이프레스비즈는 중앙그룹 매체 뿐 아니라 한국일보, 머니투데이, 파이낸셜뉴스, 국민일보, 강원도민일보, 이데일리, 대구일보 등 일간지는 물론 대학신문, 생활정보지, 전문지 등 100여종 신문 인쇄와 발송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2009년 전후로 1500억원을 들여 일본에서 베를리너판 윤전기 6대를 가져왔으며 현재 대판과 베를리너판 윤전기를 가동하고 있다.

동아일보 역시 대표 사례다. 자회사 동아프린테크 100여명 인력은 아시아경제, 내일신문, 아시아투데이, 서울경제, 금강일보, 법보신문, 축산신문 등 17~18여개 외간 인쇄를 맡고 있다. 허석규 언론노조 동아일보 신문인쇄지부장은 “제지회사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대판보다 작은 크기의 베를리너가 용지 값이 20~30% 절감된다고 하더라. 외간을 맡기는 회사는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다보니 그쪽을 많이 생각하는 거 같다”면서 “중소신문사 윤전 식구들 고민이 많다. 문을 닫게 되면 우리를 포함한 몇몇 곳으로 수주가 몰리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배송·윤전인력 고용 문제 불거질 것이런 추세가 지속될 때 신문업계엔 배포를 두고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지역에 공장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서울에서 찍는 대다수 조간신문 1판은 현재 오후 5~6시쯤 인쇄에 들어가 자정 정도까지는 전국 모든 지국으로 운송된다. 삽지 등을 마치고 다음날 오전 3~4시쯤엔 배달이 완료되는 패턴이다. 그런데 몇몇 거점 신문사로 일이 몰릴 경우 같은 조간신문이라 해도 윤전기 이용시간에 선후가 생긴다. 신문사 마감 시간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인쇄순위가 뒤로 밀린 신문사들은 신문이 제때 배달되지 못하는 일을 겪을 수 있다. 신문의 정시성과도 연관된 문제다.

실제 회사 부침을 겪으며 2014~2015년 공장을 처분했던 한국일보 역시 세트를 비워준다는 약속 하에 중앙일보 측에 대쇄를 맡기고 있다. 소규모 신문사는 대쇄를 맡기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종합일간지 제작국 D관계자는 “신문을 기피하는 모습은 배달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가정 독자가 사라졌고 1인 가구가 늘면서 집을 비웠는데 배달이 되면 도둑이 든다고 안 좋아 한다”면서 “현재 아파트단지는 민원 등 때문에 지국에서 아줌마들을 고용해 배포시키고 배달비를 준다. 배달하는 입장에선 그 시간까지 일이 끝나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시간 맞춰 못 갖다 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현재 고용된 윤전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과제다. 대다수 신문에선 윤전인력이 한창 때 비해 이미 절반가량 축소됐다. 국민일보P&B의 경우 인쇄 자회사 폐쇄 후 39명 중 대다수는 본사 신사업부와 수송부로 인사발령 됐고, 2명은 중앙일보 자회사 제이프레스비즈로 이직했다.◇일본의 인쇄 혁신과 영국 ‘디인디펜던트’의 고민반면 신문 강국인 일본에선 수년 전부터 인쇄 혁신이 시도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사는 2015년 8월부터 디지털인쇄기를 본격 운영해 왔다. 같은 제호 아래 동시에 다른 구성의 지면을 인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일본 국보(國寶)전 특별판에서 1000개의 다른 국보 사진이 각각 실린 신문 1000부를 제작한 게 대표 사례다. 나고야 주니치신문사는 하이브리드 인쇄로 잘 알려져 있다. 디지털헤드를 설치, 신문지면에 가변인쇄를 가능케 하면서 개인화된 매체로서 신문 가능성을 시도했다는 평이 나온다. ‘하마마치 시티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희망자 300여명에게 각각 자신의 이름과 기록이 인쇄된 신문을 제공하기도 했다.

국내 신문사에서 인쇄 혁신 시도는 매우 드문 게 현실이다. 디지털 부문에서 유의미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한 현재, 인쇄 부문에 대한 지원은 전환기로의 본격적인 이양 전 경영충격 완화를 위한 보험으로서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16년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한 영국 전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를 방증하는 케이스다. 인디펜던트는 ‘온라인 온리’ 노선을 표방한 후 브랜드 가치가 폭락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니먼랩 보고서 등에 따르면 프린트 중단 전후 이용자들이 모바일과 PC로 기사를 읽는 시간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종이신문 뉴스를 읽는 시간이 그대로 빠져버리면서 콘텐츠 소비시간이 5분의 1가량 줄었다. 보고서는 “인쇄 중단 시 종이신문 구독자 4만명, 월간 디지털 방문자는 5800만명이었지만 적은 수의 종이신문 독자가 전체 콘텐츠의 89%를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었다.

배병관 서울신문 제작국 과장은 “TV가 나오며 라디오가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살아남지 않았나. 신문이 줄긴 하지만 명맥은 유지할 것으로 본다. 그러기 위해선 윤전 부문에 선 투자가 계속 돼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희망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종이 신문을 발행하는 신문사라 해서 디지털 미디어 영향력을 간과할 순 없다. 하지만 ‘디지털 온리’는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여전히 수익의 50%이상이 광고에서 온다. 특히 지면광고다. 오피니언 리더 같은 독자층을 가진 것도 디지털이 아닌 인쇄 부문이란 점도 고려돼야 한다. 상당 기간 인쇄는 디지털 부문 협력자로 역할을 하게 될 게 분명하다. 여전히 신문 인쇄에 투자가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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