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처음 블랙홀의 모습을 보고 있다"(종합)

윤신영 기자 입력 2019. 4. 1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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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을 통해 얻은 최초의 블랙홀 영상. 사진제공 EHT

인류가 ‘블랙홀’의 핵심부를 영상으로 확인하는 데 사상 처음으로 성공했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시하면서 처음 개념이 등장한 블랙홀의 존재를 직접적인 증거를 통해 눈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를 이끈 쉐퍼드 도엘레만 미국 하버드 스미스소니안 천체물리센터 교수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이것이 인류가 본 최초의 블랙홀 모습이다”라며 “100여 년 전에 한 사람, 아인슈타인이 상상했던 것이 이제 증명됐다. 이 결과는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브뤼셀 외에 미국 워싱턴DC,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대만 타이페이 등 6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 ”인류는 최초로 블랙홀의 모습을 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 연구자로 구성된 국제 연구협력 프로젝트인 ‘사건지평선망원경(EHT)’ 연구팀은 10일 오후(현지시각) 인류가 직접 관측한 블랙홀의 모습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연구팀은 2017년 4월 약 열흘에 걸쳐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5500만 년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의 거대한 은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을 관측한 뒤 2년에 걸친 데이터 분석 끝에 공개했다.

연구 결과 이 블랙홀은 빛이 강한 중력에 의해 휘어 둥글게 휘감기며 형성한 지름이 400억 ㎞의 고리 모양의 구조 안쪽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칠흑같이 어두운 이 공간은 내부의 빛이 빠져나오지 못해 형성된 공간으로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불린다. 블랙홀은 이 어두운 공간 내부에 마치 달걀 속 노른자처럼 자리하고 있으며 지름은 약 150억 ㎞로 추정됐다. 지구 쪽으로 향하는 빛의 흐름은 좀더 강한 빛으로 표현됐고, 반대로 멀어지는 빛은 흐리게 표현돼 고리 모양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는 못했다.

블랙홀은 천체가 극도로 압축돼 아주 작은 공간에 큰 질량을 포함한 천체다. 우주에서 가장 빠른 존재인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중력이 강해 어두울 것으로 예측돼 ‘블랙홀(검은 구멍)’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어두운데다 극도로 밀집해 크기가 작고 거리는 멀어 그 동안 아무도 지상에서 블랙홀을 직접 관측하지 못했다. 영화 ‘인터스텔라’나 과학책 등에 등장하는 블랙홀 그림은 모두 이론 계산을 바탕으로 그린 상상도였다.

비록 상상이었지만, 이번 관측으로 그 중 일부는 꽤 정확하게 블랙홀의 특징을 예견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폴 호 EHT 이사는 “이번에 관측된 특징 증 상당수는 기존에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것과 상당히 잘 부합한다”며 “블랙홀의 질량 등 관측 결과에 대한 해석 역시 제대로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그림은 블랙홀 주변에 물질이 회오리치며 빨려들어가며 얇은 원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거나, 이런 원반 위아래로 강한 물질 및 전자기파 분출(제트)이 일어나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는 보다 멀리서 블랙홀 주변부를 묘사한 이미지로, 이번에 EHT가 관측한 블랙홀은 이보다 훨씬 가운데에 자리한 블랙홀의 핵심의 모습이다. 

10일 밤 10시(한국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사건지평선망원경(EHT) 기자회견에서 연구자들이 인류가 처음 관측한 블랙홀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유럽남방천문대 중계화면 캡쳐

이번에 EHT는 은하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태양의 수백만~수십억 배 무거운 거대한 블랙홀인 ‘초대질량블랙홀(거대질량블랙홀)’을 대상을 관측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초대질량블랙홀인 우리은하 한가운데의 ‘궁수자리A별(*)’과, 우리은하와 비교적 가까우면서 유독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초대형 타원은하인 ‘처녀자리A(메시에87)’의 초대질량블랙홀이 대상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그 중 메시에87의 중심부에 자리한 태양보다 65억 배 무거운 블랙홀로, 연구팀은 2017년 4월 5일부터 14일까지 전 세계 8대의 전파망원경을 동시에 사용해 관측했다.

● 전파망원경 묶어 초대질량블랙홀 구체적 모습 관측

그 동안 초대질량블랙홀을 관측하지 못했던 것은 아무리 큰 블랙홀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어 어지간한 망원경으로는 하나의 점으로밖에 볼 수 없어서다. EHT는 두 가지 방법으로 망원경의 성능을 개선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임명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전파망원경의 파장을 작게 만들거나 망원경을 크게 만들면 망원경의 해상도가 높아진다”며 “EHT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활용해 관측해 왔다”고 말했다. 

EHT는 파장이 1.3 mm(밀리미터) 수준으로 작은 전파를 이용했다. 또 스페인과 미국, 남극, 칠레 등 지구 전역에 흩어진 8대의 전파망원경 또는 전파망원경 군집체를 동시에 써서 큰 망원경을 쓴 효과를 냈다. 멀리 떨어진 전파망원경으로 동시에 하나의 천체를 관측하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망원경으로 본 것처럼 해상도가 높아지는 특성이 있다. 이번에 동원된 8대의 전파망원경은 지구 전역에 흩어져 있어, 사실상 지구 크기의 전파망원경을 쓴 것과 같은 효과로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었다. EHT는 “프랑스 파리에서 지구 반대편의 미국 뉴욕의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해상도”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런 정밀한 망원경으로 관측한 블랙홀 빅데이터를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연구소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헤이스택 관측소의 슈퍼컴퓨터로 보내졌다. 관측 데이터의 용량은 매일 350테라바이트 수준으로 어마어마해 이를 분석하고 이미지로 만드는 데 많은 컴퓨터가 필요했다는 후문이다. 연구팀은 이렇게 해서 10일 간의 자료를2년간 분석한 끝에 이날 발표한 한 장의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EHT의 관측에 활용된 주요 전파망원경의 위치(위). 지구 전역의 망원경이 모여 지구 크기의 전파망원경을 쓴 효과를 냈다. 아래는 전파망원경이 집합체를 이룰 때의 효과를 묘사한 그림이다. 단일 망원경(맨왼쪽)보다는 집합체가, EHT가 해상도가 높다. 마지막으로 또다른 전파망원경 집합체인 칠레의 아타카마대형밀리미터/아밀리미터집합체(ALMA)가 결합해 한층 선명한 영상이 됐다. 사진제공 NRAO, ESO

● 블랙홀 특성 규명, 일반상대성이론 증명 등 학문적 성과도

연구팀은 단순한 블랙홀 영상만 얻은 게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블랙홀의 특성을 분석했다. 연구에 참여한 변도영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은 “블랙홀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직접적인 증거를 통해 확인했다는 게 가장 큰 의의지만, 블랙홀의 질량이나 스핀(팽이처럼 도는 회전 성질) 등을 관측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의미가 있다”며 “추가로 블랙홀 관측 결과가 쌓이면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천체물리학적 현상이나, 중력이 매우 강한 환경에서 자기장 등 물리적 현상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일 등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15년 제시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도 104년 만에 관측으로 입증됐다. 연구팀의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은 “이번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궁극적인 증명이며, 그간 가정했던 블랙홀을 실제 관측해 연구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KVN그룹장은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천체물리학지식을 이용해 블랙홀의 모습이 어떨지에 대한 다양한 모델이 존재했는데, 이번에 그 중 어떤 모델이 맞는지 관측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천체물리학저널’에 여섯 편의 논문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연구에는 세계 각국 13개 기관에서 총 2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한국은 천문연 소속 연구자 8명이 동아시아관측소 산하 두 전파망원경 집합체의 협력 구성원으로서 참여했다. 한국이 운영하고 있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도 연구에 기여했다.
 

이번 관측에 참여한 전파망원경 집합체인 ALMA는 칠레 북부의 아타 카마 사막의 고원 해발 5000 미터에 위치하고 있다.ESO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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