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논쟁, 1953년부터 시작됐다

이하늬 기자 2019. 4. 1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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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낙태허용 반대〃 한국 천주교·기독교 낙태반대 운동연합소속회원1천여명이 1994년 10월 26일 오전 여의도 광장에서 집회를갖고 제한적인 낙태를 허용한 형법개정안에 대한반대시위를 벌였다./경향DB

낙태죄와 관련된 논쟁은 1953년 처음 형법에 낙태죄가 명시될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회의원 19명은 낙태죄의 전면폐지를 포함한 형법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강력한 벽을 뚫을 수 없었다. 그러다 1973년 박정희 정권에서 처음으로 ‘모자보건법’이 만들어졌다. 제한적인 임신중절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모자보건법은 그러나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법이었다. 독일법을 베낀 일본법을 그대로 가져왔다. 도입 배경과 절차, 내용 등에서 한계가 있었다. ‘산아제한’이라는 경제성장을 위한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앞서 1963~1973년 8회 이상 임신중절 합법화를 정부안으로 제출했다. 하지만 이는 번번이 국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모자보건법은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된 이후 제정됐다. 이석배 단국대 법대 교수는 “어떠한 이견도 허락되지 않던 시기로, 종교계에서도 반대 의견을 표명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가족계획’이라는 명분 아래 사문화된 법으로 여겨졌던 낙태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09년이다. 낙태 근절운동을 하던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임신중절 수술을 한 병원 네 곳을 고발한 것이다. 이후 수술을 해주는 병원은 급속도로 줄고 수술비용은 치솟았다. 2010년대 들어서는 해외로 ‘원정 낙태’를 가는 여성까지 생겨났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여성의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를 결성해 활동을 펼쳤지만 확대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2012년 11월, 한 10대 여성이 임신중절 수술과정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병원이 임신 23주차인 여성에게 수술비로 현금 650만원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8월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지 3개월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국에서 낙태죄 폐지를 ‘전면’에 내건 운동이 등장한 건 2016년 10월이다. 2016년 9월 22일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 수술을 ‘비도덕 진료행위’로 규정해 의사에게 최대 12개월까지 자격정치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여성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반발했다.

한 번 불붙은 운동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2017년 9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한 달 만에 23만명이 동의했다. 답변자로 나선 조국 민정수석은 낙태죄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한 국가는 찾기 어렵다. 다만 임신 기간 및 특정 요건을 갖춘 경우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식이다. 독일은 12주 내 임신중절은 합법이다. 의학적인 이유에 의한 수술은 기간에 관계없이 허용한다. 핀란드는 12주 이내에는 사회적·사회의학적 또는 사회경제적, 산모의 정신적 건강에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와 강간 등의 사유일 경우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13~20주의 경우는 승인이 필요하도록 했다.

영국은 의사 2명의 의견이 있으면 임신 24주까지는 임산부의 육체·정신적인 건강상의 이유로 임신중절이 가능하다. 심각한 장애가 우려되거나 여성의 생명에 치명적이고 영구적인 손상이 우려될 때는 기간의 제한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캐나다는 임신기간의 제한, 요건을 두지 않고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이처럼 경제·사회적 이유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국가는 31개국이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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