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독일서는 유머 이해 못하는 외국인들 난동으로 생각"[인터뷰]

백상진 기자 입력 2019.04.15. 18:41 수정 2019.04.1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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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른바흐' 아시아 여성 비하 광고 한달..삭제 운동해온 독일 유학생 강성운씨

지난달 15일 독일의 정원 관리용품 업체인 ‘호른바흐(Hornbach)’가 공개한 광고 영상으로 SNS가 들끓었다. 광고는 정원에서 일하던 백인 남성들의 땀에 젖은 옷이 진공 포장되면 아시아 지역(일본으로 추정)의 한 여성이 자판기에서 구매해 냄새를 맡으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광고 끝에는 독일어로 ‘이게 봄냄새지’라는 자막이 뜬다.

광고가 공개된 후 트위터 등에서는 아시아 여성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설정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독일 쾰른대 박사과정에 있는 강성운씨는 ‘#Ich_wurde_geHORNBACHt’(나는 호른바흐당했다)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하며 광고 삭제 활동에 나섰다.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에 그가 올린 청원에는 15일 오후 4시 기준 3만8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하지만 호른바흐 측은 한 달이 지나도록 요지부동이다. “우리 광고는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차별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을 주체적 소비자로 설정해 기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며 적반하장식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강씨는 14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주류 언론들이 광고 논란을 다루긴 했지만 여전히 독일 내에서는 현지 문화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의 난동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독일에도 아시아인이 살고 있으며 그들을 비하해서는 안된다는 걸 설득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이 광고를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문제제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인권의식이 높은 독일 사회에서 아시아 여성을 비하한 광고가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온라인상에서뿐 아니라 주변의 독일 사람들도 이 광고가 아시아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성차별적·인종주의적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독일에 사는 아시아인들이나 해외 장기 체류 경험이 있는 아시아계 지인들은 곧바로 문제를 지적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공적으로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해서 선례를 남겨야 앞으로 이런 광고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되새기는 나라인 독일에서 아시아인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는 광고가 충격으로 다가온다. 독일에서 이런 정서가 만연한 것인가 아니면 특정 고객층을 겨냥한 기업의 문제로 해석해야 하나

“아시아계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정서가 만연하다기보다는, 아예 우리가 독일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관념 자체가 희박하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아시아계에 대한 일상적 차별이 독일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도 무지하다. 이것이 호른바흐라는 기업이 아시아 여성에 대한 비하적 광고를 내놓을 수 있는 사회·문화적 토양이 됐다.

호른바흐는 집수리와 정원 일에 필요한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 특성상 중장년층 이상의 남성 및 관련 업종 종사자가 주된 고객층이다. 이 인구집단은 공교롭게도 독일대안당 등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파의 주된 지지층과도 겹친다.

독일에서는 유로화 위기와 난민 정국 이후로 외국인 혐오 정서가 짙어지고 있으며, 이는 각 지방·총선거에서도 독일대안당의 급부상으로 증명됐다. 여당인 기독민주연합마저 표를 얻으려고 특히 외국인에 대해 굉장히 위험한 수사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 업체와 차별화하고 고객을 모으려고 택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호른바흐 광고 삭제 운동을 펼치고 있는 강성운씨. (c) Patric Fouad /pfp

-독일에서 한국인과 아시아인들은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나. 광고 등 대중매체에서 이번처럼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논란이 과거에도 있었나

“아시아인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 자체가 없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구분할 능력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대개 다 ‘중국인’이라고 불리며, 관광객으로 취급한다. 열심히 일하고 예의바르다는 희미한 이미지 정도만 갖고 있는 듯하다.

9년째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이렇게 큰 기업이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성차별적 광고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경각심을 느끼고 반대 캠페인에 나선 듯하다. 여러 분들께서 메일이나 전화로 ‘수십년째 독일에서 살고 있는데 그동안 쌓였던 것이 이번 광고로 터져버렸다. 이 나라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독일 광고업계에서는 호른바흐 광고 논란이 확산되면서 되레 내부 단합을 다지는 분위기도 있다고 강씨는 우려했다. 지난 1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광고 페스티벌에서는 유명 프로듀서가 호른바흐 광고를 소개하면서 “불안정한 시기에도 우리가 위축돼서는 안된다”고 연설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강씨는 “생각보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문제가 뿌리깊고 광범위하다”고 전했다.

-독일 주재 한국문화원에서도 호른바흐 광고에 대한 우려를 표한 걸로 안다. 한 달 간 독일 사회가 광고 반대 목소리에 반응하거나 여론 변화가 감지되는 건 어느 정도인가

“유력 일간지인 FAZ, SZ, taz와 주간지 차이트 등 주류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단 광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졌다. 하지만 호른바흐사가 지난 1일 공청회를 열고 이후 광고를 계속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낸 뒤로는 독일 언론사의 관심은 사실상 거의 사라졌다. 소수자 이슈이다 보니 후속 보도가 필요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기업의 이름이 언급되면 결과적으로 광고효과가 있어 보도가 어렵다고 한 신문사 기자가 설명해줬다.

여론 변화는 체감하기 어렵다. 아직도 반대 캠페인을 먼 나라에 사는, 독일 문화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인터넷에서 벌인 난동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추가 취재없이 호른바흐사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쓴 주요 언론도 여기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도 아시아인이 살고 있으며, 그들을 비하해서는 안된다’는 것부터 알리고 설득해야하는 단계다.”

광고 삭제를 촉구하는 해시태그 운동이 반향을 일으키자 호른바흐 측은 급히 공청회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강씨에게도 참석 제안을 했지만 강씨는 이를 거절했다. 호른바흐 측은 3명이 참석한 공청회를 진행한 후 “매우 생산적인 대화가 있었다”고 자평하면서도 다음날 광고를 중단할 뜻이 없다고 발표한다.

호른바흐 측이 공청회 참석을 거절한 강성운씨에게 보낸 메시지. 공청회는 홍보용 행사가 아니며 광고와 관련해 대화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호른바흐 측에는 어떤 경로로 문제제기하고 있나. 공청회 불참 이후 호른바흐 측의 추가 반응이 나온게 있나.

“불참 이후 내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나는 공청회 이후로도 호른바흐 측에 트위터로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동시에 홍보 총책임자인 플로리안 프로이스에게 메일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호른바흐는 더 실수를 할까봐 형식적인 답변만 할 뿐, 더 이상 나를 비롯한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대응하지 않는다.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공청회에 참석한 분들이 호른바흐사가 서명운동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주셨다.”

-광고 삭제를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과 SNS 해시태그 운동과 오프라인 활동 상황은 어떤가

“이번주중 청원서가 히브리어로도 공개된다.(지금까지 한국어 포함 7개 국어로 번역돼 있다) 독일 인종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인 유대인 사회에서 이 문제가 널리 알려지고 우리의 싸움을 지켜봐주기를 바란다.

이제 3주차에 접어들었는데도 놀랍게도 서명운동의 추이가 꾸준히 유지되는 편이다. 새로운 언어를 추가하는 것도 문제를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해시태그는 첫 주만큼 많이 사용되고 있진 않지만, 새로 이 이슈를 접한 사람들이 그동안 쌓인 정보를 찾고 행동에 나서는데 아주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오프라인 상에서는 베를린에 기반한 여성단체인 미투 코레아너린넨의 주도로 2주째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다음달 18일에는 베를린에서 열리는 대규모 여성주의 집회에 호른바흐 반대 캠페인이 한 꼭지를 맡아 참석한다. 혼자 하는 투쟁이 되지 않도록, 지금은 독일 시민 사회에서 연대와 지지를 구하고 있는 중이다.”

강씨는 ‘나는 호른바흐당했다’ 외에도 ‘1000번의 거절’이란 뜻의 해시태그 ‘#1000Absagen’도 새로 제안했다. 광고를 삭제하라고 항의메일을 보내도 꿈쩍하지 않는 호른바흐 측의 무책임한 대응에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취지다. 그는 “1000번 거절 당할때까지 계속 항의하자, 1000번이 모자라면 5000번 1만 번 거절당하자고 제안했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유럽 내 아시아계 소수자 인권 운동의 중요한 일부이며 이를 아카이브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에서도 이 사안을 다룬 것으로 안다. 독일 내 아시아인 커뮤니티에서 함께광고 반대 캠페인을 진행하는 게 있나

이 캠페인은 기성 단체들이 연계돼 하고 있지는 않다. 독일 내 아시아계는 그런 단체나 커뮤니티와 단절된 경우가 많다. 이 캠페인의 폭발력은 이렇게 단절돼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 광고를 통해 자신이 겪은 개인적 차별의 경험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온라인을 통해 만나 국적이나 언어와 무관하게 협업하는데서 나온다. 독일에서 우리는 한국인, 베트남인, 일본인으로 차별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인으로 한 데 묶여 차별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협업 과정에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현재 여러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PR팀이 2개, 액션들을 계획하고 실무를 처리하는 태스크포스에 30여명,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200여명 가량이 활동하고 있다. 서로 말을 나누기 위해 짧게라도 영어, 독일어, 일본어, 한국어 등을 섞어가며 게시물을 작성한다. 기성 단체 및 커뮤니티와의 연계는 각 지역별로 시위가 조직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이다.”

-호른바흐 측에 요구하는 것을 요약한다면

“광고의 즉각적인 중단, 모든 채널에서의 삭제,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 도입이다. 서명운동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나중에 협상하게 된다면 요구사항이 하나 더 늘었다. 최근 봤더니 2주 사이에 광고 유튜브 조회수가 200만 건이 넘어있었다. 이 광고를 통해 각 플랫폼에서 얻은 수익들을 독일 내 아시아 여성인권단체에 전액 기부하라.”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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