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 안고 도망치는 그녀의 '엘사' 티셔츠에 아메리칸 드림이 보였다"

곽아람 기자 2019. 4. 17.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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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중남미 난민 취재한 로이터 기자, 한국 국적으로 첫 퓰리처상 수상
"보이는 것 그대로 취재한다.. '공정하고 편견 없는 보도'가 원칙"
2018년 11월 25일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 티후아나. 미국의 반이민 정책에 항의해 행진 중이던 수천 명의 중남미 난민들이 멕시코 경찰에 의해 행진을 저지당했다. 이들이 갑자기 국경을 향해 뛰기 시작하자 미국 국경 수비대는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김경훈씨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기저귀 찬 여자아이 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최루탄을 피해 달려가는 한 여성을 포착했을 때, 그는 셔터를 눌렀다.

"직감적으로 그 사진이 그날의 가장 중요한 사진이 되겠다 싶었다. 사진 속 아이 엄마가 몸에 꽉 끼는 '겨울 왕국'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사진 속 아이만 할 때 그 애니메이션을 수십 번 본지라 절로 감정이입이 됐다. 그 옷이 사진 속 가족의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16일 일본 도쿄에서 전화를 받은 김경훈(45·작은 사진)씨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퓰리처상 이사회는 김경훈씨 등 중남미 난민 사태를 취재한 로이터통신 사진팀을 브레이킹 뉴스 사진 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이날 새벽 밝혔다. 한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 사진 부문 수상자가 됐다. 그전에도 한국인 수상자들이 있었지만 모두 미국 교포였다. 퓰리처 위원회는 "이민자들의 절망과 슬픔, 긴박함을 생생하고 놀라운 시각적 서사로 보여줬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중남미 난민을 취재한 여러 사진 중 김씨의 사진은 특히 주목받았다. 트럼프 반이민정책에 대한 강력한 비판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김씨는 "트럼프는 중남미 난민 대부분이 깡패 혹은 범죄자들이라고 주장했는데, 사진 속에선 어린아이들이 기저귀 찬 채로 도망가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고 했다. 사진의 주인공 마리아 메자(40)는 온두라스 출신. 급히 시위에 참여하려다 보니 바지를 찾지 못해 다섯 살짜리 쌍둥이 딸에게 기저귀를 채웠다고 했다.

작년 9월 시작된 '캐러밴(중남미 이민행렬) 취재'는 로이터통신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다.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나라 사진기자들을 차례로 참여시키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시아 출신으로는 김씨만 참여했다. 인권 문제 보도처럼 보이지만 김씨는 "인권 문제라고만 딱 찍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어젠다를 세팅하고 취재하지 않는다. 있는 상태를 그대로 취재한다. '공정하고 편견 없는 보도'가 우리 회사 룰(rule)이다."

김씨는 고등학교 때 사진 동아리에 들면서 처음 카메라를 잡았다. 전쟁 보도 사진가 로버트 카파 전시 포스터를 보고 사진기자로서의 꿈을 키웠다. 중앙대에서 보도사진을 전공했고, 1999년 일간스포츠 사진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2002년 로이터통신으로 옮겼고 서울, 베이징 지국을 거쳐 지금은 도쿄 지국에서 근무 중이다. 최근 서재필 기념회(이사장 안병훈)의 서재필언론문화상을 받았고, 사진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 '사진을 읽어드립니다'(시공사)를 내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로이터에서 일하고 있지만 "초년병 시절, 한국 사진기자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이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자기 돈으로 밥 사주고 술 사줘가며 후배들에게 모든 걸 가르쳐주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 사진기자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기자로서 필요한 기술적·인간적 면모를 한국에서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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