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WTO 일본 수산물, 1심에선 왜 한국이 졌나

송기호 변호사 2019. 4. 17. 20: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값진 승소였다. 그동안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조류독감, 유전자조작식품, 성장 호르몬 등 여러 검역조치 판결이 있었다. 그런데 지고 있던 1심을 2심에서 뒤집은 일은 처음이다. 유럽연합이 2008년에 WTO 호르몬 사건에서 1심을 뒤집었던 일은 이미 패소한 사건 결과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우리 경우와 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수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왜 1심에서 졌을까? 나는 이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2013년 9월6일 후쿠시마 인근 8개 지역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한 것은 같은 해 7월30일에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는 급박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WTO 협정은 이런 비상시에 회원국이 ‘잠정 조치’를 채택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추가적인 조사를 해서 위험 실태를 평가하고 재검토하여 합리적인 기간 안에 정식 조치를 하도록 했다.

임시 조치에 대한 재검토 절차는 필수적이며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2001년에 아르헨티나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 육류를 수입 금지했다. 앞에서 본 잠정조치였다. 그런데 미국은 2006년과 2009년 아르헨티나 현장을 방문한 후 2012년이 되도록 아르헨티나의 구제역 실태에 대한 조사와 평가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아르헨티나는 2012년 미국을 WTO에 제소했다. 미국은 패소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 한국은 임시 조치 재검토 절차를 밟기 위해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 두 차례 정식 실태 조사를 다녀왔다. 정부는 실태 조사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서 국민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보도자료까지 냈다. 이 보고서가 매우 중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법적으로는 한국이 WTO 협정상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국이 어떤 전략으로 일본 현지 실태 조사를 하는가는 매우 중요했다. 당시 일본은 세슘 허용치를 국제기준보다 10분의 1 낮은 수준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10만건이 넘는 자국 수산물 검사 결과를 제시하며 일본산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한국을 압박했다. 그러므로 수산물 상품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일본의 전략에 맞서, 일본의 생태와 환경에 대한 조사에 집중해야 했다. 우리의 수입금지 조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방사능 오염수 유출이라는 생태 환경적 재난에 터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바다의 해저토, 심층수에 대한 시료 채취와 조사, 일본 토양과 산림의 오염도, 오염수 방출 실태 등 생태 환경에 대한 조사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한국은 해저토와 심층수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일본이 동의한 표층수 시료만을 채취하여 조사하였고, 조사 결과 일본이 원하는 수치가 나왔다.

내가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애초 박근혜 정부는 현지 조사를 마치고 조사 보고서를 공개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소송을 해야만 했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2015년 6월5일, 돌연 보고서 작성을 중단해 버렸다. 중단 사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회의록을 그대로 인용한다. “WTO 제소의 상황 변화에 따라 위원회는 활동을 잠정 중단함.”

그러니까 일본이 2015년 5월21일, WTO 제소에 필요한 협의 요청서를 WTO에 제출하자 한국은 이를 이유로 일본 현지 실태 조사 보고서 작성을 중단해 버렸다. 잘못된 결정이었다. 한국의 의무 이행에서 핵심이 되는 절차를 한국이 중단한 것이다. 한국이 패소한 1심에서 재판부는 너무도 당연한 지적을 하였다. “소송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의무 이행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부재였다. 일본이 한국의 보고서 작성을 기다리지도 않고 소를 제기하고 밀어붙인 것은 그만큼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박근혜 정권에서 국가의 부재를 보았다. 일본의 눈은 적어도 그때는 정확했다. 사실관계에 치중하는 WTO 1심의 눈에도 국가는 없었다. 1심은 한국은 왜 보고서 작성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일본과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라는 대규모 자유무역협정(FTA)에 참여하기 위하여 일본의 승인을 받는 예비협의를 하고 있었다. 미국도 한국이 패소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WTO에 제출했다. 1심 패소의 교훈은 명료하다. 깨어 있는 시민의 정부만이 국제통상과 외교에서 보통사람들의 이익을 지킨다는 것이다.

송기호 변호사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