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황우석·복제견의 아버지" 이병천이 누구길래​?

최유경 2019. 4. 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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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동물실험 윤리 문제를 다룬 최근 KBS 보도와 관련해 오늘(19일)부터 수의과대학 이병천 교수의 '실험동물자원관리원장' 직무를 정지하고,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교수팀의 이른바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연구를 중지시키기로 했습니다. 동물실험 윤리 논란에 대해 학교 측에서 이례적으로 발 빠른 대응을 한 셈인데, 논란의 중심에 선 이병천 교수는 어떤 사람일까요?

■ '논란의 중심' 걸어온 학계의 스타, 이병천 교수

"동물이 단순히 연구 과정에서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애정을 가지고, 정말 우리의 결과를 같이 내는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실험합니다." (이병천 교수)
- 2005년 8월 6일, KBS 뉴스 930 <'제2의 황우석' 이병천 교수>

14년 전, KBS 뉴스에 등장한 이병천 교수는 동물실험에 대한 소신을 밝히며 동물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이 교수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뉴스에 나타났습니다. 검역탐지견을 실험동물로 데려가 학대했다는 논란, 그리고 여전히 '식용 개'를 농장에서 대량 구매해 실험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며 사회적인 지탄까지 받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복제견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이병천 교수는 학계의 독보적인 '스타'지만, 사실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지적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화려한 연구 행보마다 늘 논란이 뒤따랐는데요.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 세계 최초 복제견 '스너피'의 탄생…'쌍둥이' 의혹도

이병천 교수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또 다른 논란의 연구자 황우석 박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6년 이 교수가 대학원에 진학을 앞둔 시점, 당시 새내기 교수였던 황우석 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지난 2006년 5월, 세계 최초 체세포 복제견 ‘스너피’


이후 서울대 수의대에서 쭉 황 박사와 함께 연구해온 이 교수는, 지난 2005년 세계 최초 복제견 '스너피(Snuppy)'를 탄생시키며 단번에 화제에 올랐습니다. 당시 동물복제 일인자로 여겨졌던 황우석 박사 연구팀에 속해 있는 데다, 황 박사의 촉망받는 수제자로 알려지며 '제2의 황우석'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여 만에 스너피는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결과 조작 논란이 불거지며, 황 교수 연구팀의 결과물인 스너피도 복제견이 아니라 체세포를 제공한 아빠 개 '타이'의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겁니다.

이후 서울대 조사위원회와 황 교수 연구팀의 DNA 검사 결과 스너피는 진짜 복제견이 맞다는 최종 결론이 나왔지만, 의혹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습니다. 2006년에 같은 방식으로 암컷 복제견들을 더 탄생시키고 나서야 명예가 회복됐습니다. 줄기세포는 가짜였지만, 동물복제만큼은 독보적인 기술을 가졌다는 평가가 나오며 개 복제 연구는 다시 힘을 받았습니다.

■ '제2의 황우석' 명성 얻었지만…'연구비 횡령·식용 개농장' 논란 이어져

맨 왼쪽 이병천 교수, 중간 황우석 박사


하지만 이 교수 역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 교수는 지난 2009년 10월 허위 서류로 수억 원의 연구비를 빼돌린 혐의(횡령)로 벌금 3천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기소 두 달여 뒤인 2006년 7월엔 서울대로부터 정직 3개월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7년엔 특수목적견 복제 사업에 개농장에서 온 식용 개들을 이용해왔다는 논란이 불거지며 또 한 번 구설에 올랐습니다. 2017년 12월 동물보호단체 카라, 호루라기 재단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병천 교수 연구팀이 연구에 필요한 난자를 채취하고 대리모로 쓰기 위해 충남 보령의 식용견 농장에서 개들을 싼값에 사왔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 "농식품부는 이병천 교수의 놀이터"…'수십억 사업'도 거뜬

잇따른 논란에도 이병천 교수의 위상은 견고했습니다. 국내 개 복제 사업의 양대산맥은 황우석 박사와 이병천 교수, 서울대 수의대 출신의 두 사람입니다. 둘은 각별한 인연의 사제 관계이기도 합니다. 황 박사가 줄기세포 조작 사건 이후 학계에서 힘을 잃으면서 제자였던 이 교수가 오히려 독보적인 일인자로 떠올랐습니다.

가혹한 실험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복제 검역탐지견 ‘메이’는 이병천 교수가 진행한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사업의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주한 복제견 사업을 10년째 도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15년까지 4년간 '우수 검역탐지견 복제생산 연구' 사업을, 2016년부터 21년까지 5년간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사업을 맡았습니다. 첫 사업은 17억 원짜리인데 이병천 교수팀이 단독 공모해 선정됐습니다. 두 번째 사업은 25억 원으로 예산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황우석 박사팀(수암생명공학연구원)과 이 교수팀이 경쟁했지만, 이 교수팀이 최종 선정됐습니다.

이 교수가 관여한 사업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2012년 진행한 예산 11억 원의 '정부 우수 특수목적견의 복제 생산 및 보급' 사업에도 이병천 교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약 60여 마리의 복제견을 생산해 5개 특수 목적견 운영기관(국방부, 농림수산식품부, 관세청, 경찰청, 소방방재청)에 인계하는 사업입니다. 2018년부터 추진된 예산 43억 원의 '반려동물연구사업단'에도 이병천 교수가 단장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부 연구 사업에도 서울대 수의대 오현주 교수 등 이병천 교수의 측근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농식품부가 그야말로 이병천 교수의 놀이터인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업계가 워낙 좁다 보니, 수십억 대 정부 주도 복제견 사업이 발주되면 무조건 이병천 교수의 주머니로 흘러들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견제할 수단도, 제대로 된 감시도 없는 채로 이병천 교수는 점점 더 견고한 카르텔을 쌓아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 풍비박산 난 서울대 동물실험…바로잡을 수 있을까?


현재 서울대의 동물실험은 그야말로 '풍비박산' 상태입니다. 박재학 동물실험윤리위원장은 어제(18일) 사임 의사를 밝혔고, 실험계획서의 사전 검토와 배정을 맡고 있던 계약직원의 계약 기간이 종료되며 사실상 업무는 마비 상태입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담당자의 부재로 심의를 무기한 중단한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습니다. 서울대 전체의 동물실험 심사가 완전히 멈춰버린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병천 교수에 대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일단 조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인데, 내홍을 겪고 있어 신속한 진상 파악이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은 윤리위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게 전부입니다. 해묵은 동물실험 윤리 문제, 이번엔 정말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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