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 남과여, 그들의 '보통의 사랑' [포토다큐]
[경향신문]
이상우씨(38)가 화장을 하고 있는 최영은씨(29)를 자꾸만 쳐다봤다. “예뻐요.” 상우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지난 10일 서울 논현동의 한 웨딩숍에서 결혼을 앞둔 상우씨와 영은씨를 만났다. 이날은 야외촬영이 있는 날. 예비신부에 이어 예비신랑이 화장을 했고, 드레스와 턱시도도 차려입었다.
촬영 장소는 덕수궁이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다행히 잦아들었다. 다소 쌀쌀한 날씨 속에 촬영이 진행됐다. 전동휠체어를 탄 예비부부는 고궁 내에 활짝 핀 벚꽃과 중화전, 석조전 등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신 터트리는 웃음이 봄꽃들보다 환했다. 궁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도 그들에게 ‘미소꽃’를 선사했다. 아예 몇분은 다가와서 커플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결혼식을 실감하는 듯 상우씨는 “꿈만 같다”고, 영은씨는 “조금 떨린다”고 했다.
상우씨와 영은씨는 ‘탈시설’ 중증장애인이다. 장애인거주시설인 ‘꽃동네 희망의 집’에서 각각 30년과 20년을 살다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활동가 등의 도움으로 2015년 3월 같은 날 시설을 나왔다. 시설에서 서로 짝사랑을 했지만, 표현할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둘은 시설 밖에서 머물게 된 장애인 자립주택 ‘평원재’에서 만나 필연적 사랑을 키웠다. 시작은 상우씨의 ‘카톡’ 문자고백이었다. “여자친구가 되어줄래?” “오케이~” 영은씨가 흔쾌히 받았다.
연애와 동시에 결혼을 생각했던 커플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을 아끼고 아껴 적금을 들었다. 전세대출을 받고 적금으로 모은 돈 5000만원을 보탰다. 지난해 7월 서울 창동역 인근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고 있다. 각자의 활동지원사가 아침부터 밤까지 두 사람의 생활을 돕는다. 외부 일정이 없는 날, 둘은 종일 방에 눕거나 엎드린 채로 서로 바라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낸다.
심한 언어장애를 가진 영은씨와 상우씨는 문자를 음성으로 바꿔주는 휴대폰 앱(진소리)으로 기자의 물음에 답했고, 둘 사이의 대화에도 사용한다. 결혼 비용문제로 다투기도 했다는 영은씨가 입력한 문장이 음성으로 변했다. “경제권은 제가 쥐기로 했어요.” 상우씨가 애교를 섞어 반발했다. 티격태격 사랑스런 공방이 오갔다. 프라모델 ‘덕후’인 상우씨는 활동지원사가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동안 넋을 잃고 지켜봤다. 옆에서 면박을 주는 영은씨지만 매년 상우씨 생일이면 프라모델을 선물한다. 늘 붙어지내는 이 커플이 가장 많이 하는 대화는 뭘까. 영은씨가 굽은 손으로 꾹꾹 누른 문자가 이내 소리를 냈다. “사랑한다는 말 지겹게 나눠요.” 상우씨가 느리게 문장을 완성했다. “그냥 보고 있어도 좋아요.”
외부 활동도 열심이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가인 이들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회 현장, 기자회견장을 누빈다. “3대 적폐”라는 장애등급제, 장애인 수용시설, 부양의무제의 폐지에 힘을 보탠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의 공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에는 나란히 야학 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한 야학교사는 “요즘 결혼 준비로 수업에 소홀하다”고 귀띔했다.
“평화롭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예비부부는 활동가로서의 바람도 덧붙였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 사회로 나오게 하고 싶어요. ‘우리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보여주고 싶어요.” 시설 밖으로 나와 온전하고 자유로운 ‘나’로 세상을 마주한 상우씨와 영은씨. 두 사람의 결혼식은 5월 6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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