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혐오'가 언론에서 퇴출되지 않는 이유

김덕훈 2019. 4. 2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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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대한민국은 세월호 5주기를 맞았다. 희생자 추모나 진상 규명 요구보다 정치인들의 유가족 혐오 발언이 두드러졌다.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징하게 해쳐 먹는다. …(중략)… 보통 상식인이라면 내 탓이요, 내 탓이요 할 텐데 이자들은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좌빨들한테 세뇌 당해서 그런지 전혀 상관없는 남 탓으로 돌려 자기 죄의식을 털어버리려는 마녀사냥 기법을 발휘하고 있다"(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 세월호 5주기 전날 페이스북)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이제 징글징글해요', 오늘 아침 받은 메시지"(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 세월호 5주기 당일 페이스북)

"언론, 혐오 발언자 출연시켜놓고 책임은 회피"


'저널리즘토크쇼J'의 고정패널인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21일 방송에서 종편과 정치인의 공생 관계를 지적했다. 차 전 의원은 최근까지도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하며 정치 논평을 했다. 국회의원에서 물러난 지 7년째지만 방송을 통해 줄곧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정 교수는 "종편 탄생 이후 정치와 언론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정치인이 정치를 잠시 멈추고 있을 때 대중들의 이목을 계속 끌면서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종편 출연이다. 출연을 통해 가고 싶은 곳은 결국 다시 정치다. 호소하고 싶은 대중들에게 듣고 싶은 말을 해줌으로써 지지를 받아 세를 모으고 싶은 것이다. 언론사들은 자기 판단으로 이런 정치인들을 출연시키면서도 (발언에 대한 책임은) 계속 피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말하면 안 될 것에 대해 논의해야"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세월호 막말’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MBN ‘뉴스와이드’에 고정 출연해 왔다.


차 전 의원은 막말 문제로 수차례 방송에 퇴출과 복귀를 반복한 경험이 있다. 2017년 12월 15일 MBN '뉴스와이드'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놓고 대담하던 중 중국 측 태도를 문제 삼으며 "떼놈이 지금 우리 보고 절하라는 거 아니냐"고 말해 언론사로부터 '일정 기간 출연정지'를 받았다. '떼놈'은 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2014년 10월 31일 채널A '뉴스특급'에서는 성남시 환풍구 사고에 대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책임론을 제기하며 "종북 논란이 있는 사람에게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는 발언을 했다가 이 시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패소했다.

지난해 3월 SBS 라디오 출연 때는 성폭력 피해 폭로·고발 운동인 '미투'에 대해 대담을 나누던 중 실언했다. "인간의 DNA, 남자 수컷은 많은 곳에 씨를 심으려 하고 있다. 이런 본능을 문화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 논란이 됐다.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한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언론사가 혐오 발언을 반복하는 인사의 출연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사회에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에 초점을 맞췄다면, 한 번쯤은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합의를 이뤄야 한다. 차 전 의원이 방송에 출연하는 와중에 (혐오) 발언을 한 것,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 방송사가 (개인 발언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그런데 방송사가 다시는 그 사람에게 마이크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혐오 발언 내보낸 언론사도 제재 받아야"


J 고정패널인 안톤 숄츠 독일 출신 언론인은 혐오 발언에 대해 발언 당사자뿐 아니라 언론사까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에서는 이런 부정론(혐오 발언)이 불법이다. (누군가) 나치 시대에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발언하면 해당 발언이 나온 신문이나 TV에도 바로 법적 문제가 생긴다. 한국 사회에서는 혐오 정서가 심하다. 표현의 자유와 혐오는 경계가 필요하다. 혐오 발언을 해도 나한테 아무 일이 안 생긴다고 여기면 사람들은 마음대로 말한다. 이런 사람들을 섭외하고 방송에 나오게 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사들은 제재를 받아야 한다."

실제 독일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혐오 발언을 한 경우 최대 5년까지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언론사에 대해서도 혐오 발언을 비롯해 가짜 뉴스를 담은 게시물과 영상 등을 삭제하도록 강제한다.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5천만 유로(약 640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세월호 유가족 막말한 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을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있다. 청원글은 "끊임없이 문제 있는 막말을 쏟아내며 여러 논란을 만들어 냈지만, 방심위와 MBN은 봐주기 징계 정도로 항상 넘겨왔다. MBN 출연을 금지하는 데 도움을 달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청원에 참여한 사람은 1만 3천여 명, 정치인의 막말은 막말을 용인하는 언론사 책임이라는 데에 시민들도 공감하고 있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오는 21일(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40회는 '엇갈린 세월호 5주기 보도'와 '연합뉴스는 왜 국고지원금 폐지 청원에 직면했나?'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뤄진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독일 출신 안톤 숄츠 기자,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김빛이라 KBS 기자가 출연한다.

김덕훈 기자 (standb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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