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헬멧? 머리 망가져서 쓰기 싫어요".. 관광 수입 앞에 단속은 '먼 얘기'

나진희 입력 2019.04.20. 19:01 수정 2019.04.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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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스쿠터에 몸살 앓는 전주 한옥마을 / 대부분 헬멧 없이 운행..인파도 뚫으며 곡예운전 / 업체들, 면허·음주 여부 확인 허술 / 경찰·지자체, 단속 어려움에 책임 떠넘기기만
헬멧 없이 한복을 입고 전동스쿠터를 타고있는 관광객들
국내 유명 관광명소인 전북 전주 한옥마을이 전동스쿠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전동스쿠터 대여 업소에서 이용자들의 헬멧 착용 의무에 대해 고지하지 않을 뿐더러 운전면허 소지나 음주 여부도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객이 늘어나는 봄나들이 철이라 안전사고 위험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지자체는 관광수입 감소를 우려해 단속 및 계도 주체를 놓고 ‘책임 떠넘기기’만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여점 직원이 손님들에게 운전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스쿠터 하나에 3명 타고, 한손 운전도... “사고 날까 걱정”
 
 주말인 지난 14일, 연간 1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은 따뜻한 봄 날씨를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과 전동스쿠터들이 한데 뒤섞여 야단법석이었다. 인파를 뚫으려 곡예 운전을 하는 전동스쿠터들과 갑자기 인도를 침범하는 스쿠터들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행인들도 보였다. 등 뒤를 바짝 쫓은 전동스쿠터를 보고 깜짝 놀라거나 길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전동스쿠터와 부딪힐 뻔한 여행객도 다수 보였다.
 
일부 전동스쿠터 운전자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모습으로 운전하기도 했다. 풍성한 한복 치마 끝이 바퀴에 말려 들어갈까 봐 한손으로 치마를 움켜쥔 운전자도 있었다. 최대 정원이 2명인 스쿠터에 3명까지 끼어 타기도 했다. 사고 위험이 다분한데도 이들 전동스쿠터 운전자는 대부분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이날 가족과 한옥마을을 찾은 직장인 박모(32)씨는 “사람이 다니는 길인데도 전동스쿠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혹시 어린아이들과 부딪혀 사고가 날까 걱정이었다”며 “전주에서 평화롭고 고즈넉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는데 사람들과 섞여 다니는 전동스쿠터들 때문에 오히려 좋은 분위기가 안 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인파로 북적이는 전주 한옥마을
◆“한옥마을 내에선 헬멧 안 써도 된다” 공공연히 홍보하는 대여업체
 
 전주시청에 따르면 전주 한옥마을 내엔 4월 기준 22곳의 전동스쿠터 대여점이 운영 중이다. 이날 한 대여점을 찾아 가격을 문의해보니 보통 최대 속도가 25km/h인 일반 오토바이 모양의 2인승 전동스쿠터 대여료는 시간당 2만원이었다. 직원은 현금 결제로 2시간 빌리면 3만5000원까지 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대여점은 운전자 안전 관리에 소홀한 모습이었다. 교복을 빌려 입고 매장을 찾은 한 연인이 ‘머리가 망가질까 봐 헬멧을 쓰기 싫다’고 대여를 망설이자 직원이 “한옥마을 내에선 (헬멧을) 안 써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실제 대여용 스쿠터 손잡이에 헬멧 두 개가 걸려있었지만 ‘거추장스럽다’며 헬멧을 매장에 놓고 스쿠터만 대여해가는 손님도 눈에 띄었다. 손님들이 잘 안 쓴다는 이유로 애초에 대여 시 헬멧을 제공하지 않고 소수의 헬멧만 매장 안에 비치해놓은 대여점도 있었다. 직원은 “손님들이 한복이나 교복, 개화기 옷 같은 걸 빌려 입으시면서 보통 머리 손질을 하고 오신다”며 “머리가 눌릴까 봐 걱정들을 하시는데 (거리를) 보면 아시겠지만 대부분 다 헬멧 안 쓰고 다닌다. 여기(한옥마을)선 관광객들 상대라 단속을 거의 안 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캔맥주를 마시며 온 손님에겐 대여하는 동안 먹다 남은 캔을 맡아주겠다고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직원은 “어차피 시속 25km 정도로 밖에 못 달려서 문제없다”며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당부했다. 대여 절차가 끝날 때까지 운전면허증을 보여달라는 말도 없었다. 계약서에는 전동스쿠터가 고장 나거나 분실됐을 때 운전자가 금전적인 책임을 진다는 내용뿐 안전사고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었다. 직원이 간단히 시동 걸기, 브레이크 잡기, 방향 전환기 등을 몇분 알려준 후 운전 교육은 끝났다.
 
도로교통법상 전동스쿠터는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된다. 주행 시 헬멧을 착용해야 하며 술을 마시고 운전하거나 자동차나 원동기장치 면허증 없이 운전하는 것은 불법이다. 실제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동스쿠터를 타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무면허로 입건되기도 했다.
 
한 대여점의 계약서
◆“경찰 소관” vs “법규 모호”... 관광객 단속에 부담 느껴
 
상황이 이렇지만 지자체와 경찰은 미비한 법령과 단속의 어려움을 이유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전주시청 관계자는 18일 통화에서 “법적으로 전동스쿠터는 차도로만 다녀야 한다. (한옥마을 안에서 운행하는 건) 원래는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인도 운행, 안전장비 미비, 음주운전, 무면허 운전 모두 사실상 경찰에서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시청 차원에서 안전 관련해 홍보 활동은 한다. 지난 월요일에도 주민, 한옥마을 상인들과 ‘조심하고 노력하자’며 함께 자정 캠페인 다짐대회를 했다. 하지만 사실상 즉시 실효성이 나타나려면 (경찰에서) 단속을 해야 맞다”고 전했다. 시청은 단속 권한이 없기에 단순히 계도나 홍보 차원의 활동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는 평일 위주로 홍보해 효과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인원이 부족해 주말에는 근무자가 2~3명밖에 없다. 이들도 민원처리 등으로 바쁘다”며 “그렇다 보니 보통 평일에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전동스쿠터 운전자 단속보단 대여업체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전북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단속도 중요하긴 한데 사실상 지자체에서 대여업체 쪽에 허가를 내고 운영을 하게 하는 측면이니 그 부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상 전동스쿠터, 전기자전거 등에 관한 정확한 개념이 정립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전동스쿠터는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 자전거에 해당해 운전하려면 최소한 원동기 장치 면허가 있어야 하고 안전모를 착용하고 차도로 통행해야 하는 게 맞다”면서도 “그런데 속도가 25~35km/h 수준인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 세그웨이 등 개인형 모빌리티는 정부 차원에서 자전거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어 규정이나 개념 등이 바뀌는 추세”라고 전했다.
 
대여용 전동스쿠터
 이어 “전동스쿠터를 자전거로 볼지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볼지 명확하지 않고 현 제도가 국민의 법감정과도 맞지 않아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적극적으로 단속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전동스쿠터 등을 타다 사고가 났을 때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으면 범칙금 2만원, 면허가 없거나 음주운전이면 형사 입건하고 있다고도 했다.
 
 공무원들은 관광지의 특성상 한옥마을 내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전동스쿠터를 타는 분들은 대부분 외지 분들”이라며 “전주엔 여행하러 온 것 아닌가. 그런데 도로교통법 위반했다고 단속돼서 벌금을 낸다든가 하면 (전주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단속하기에 부담감이 없진 않다”고 털어놨다.
 
지난 12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전동킥보드 관련 사고는 총 233건으로 2015년(15건)보다 15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10월에 전동형 개인이동 수단 이용경험이 있는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운전자의 대부분(190명, 95%)이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음에도 58명(29%)은 전동형 개인 이동수단 이용 시 보호장비를 한 번도 착용한 적이 없었고, 항상 착용한다는 답변자는 53명에 불과했다.
 
운전면허를 보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응답자는 전체의 42%나 됐으며 74.5%(149명)가 규제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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