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南 군사합의 위반' 24번 비난할 때 정부 대응은 0건.. "北 버릇 나쁘게 만든다"

윤희훈 기자 2019. 4. 2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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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6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017부대를 찾아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을 지도했다. 이어 17일엔 국방과학원이 진행한 신형 전술 유도무기 사격 시험을 참관했다. 김정은이 비행훈련을 지도한 16일 노동신문은 우리 군의 F-35 전투기 도입에 대해 "전쟁장비 반입과 침략전쟁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면서 "군사적 대결과 평화는 양립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작년 9·19 남북 군사합의서를 체결한 이후 우리 군의 통상적인 훈련은 물론 예정됐던 무기 도입에 대해 "긴장완화 흐름에 배치되는 행위"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자신들의 군사 훈련과 무기 시험 등에 대해선 "인민들의 행복한 내일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북이 툭하면 한국 정부를 향해 군사 합의 위반 운운하며 비난하면서 자기들은 거리낌 없이 군사 행동을 계속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의 이런 미온적인 태도가 북한의 버릇을 더 나쁘게 만들어 비핵화 협상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하고 있다. / 뉴시스

◇ 北, 대남 비남 관영매체로만 24건…선전매체 포함하면 100건 넘어

작년 9·19 군사합의서 채택 이후 북한은 관영 매체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총 24차례(4월 20일 기준)에 걸쳐 우리군의 군사 활동을 비난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메아리', TV방송인 '조선중앙TV',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 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합동참모본부가 작년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부터 지난달 14일까지 집계한 결과, 북한이 신문·방송·라디오와 인터넷매체를 통해 ‘남측이 군사합의를 위반했다’고 비난한 횟수는 모두 122건이었다.

같은 기간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0'건이다.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이 지난달 18일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군사합의를 위반한 사항이 식별돼 10여회 이상 북측에 조치를 요구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에 대해 어떤 채널로 통보했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김 정책관은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우리 군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성명이나 담화를 북한의 공식 입장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관영·선전 매체의 발언은 공식 입장이 아닌만큼 공개적인 성명 형태의 공식 대응은 고려치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들어 대남 비난 수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3일엔 천안함 폭침과 서해 교전을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 행사에 대해 "북남 관계 파괴와 북침 전쟁 책동에 발광적으로 매달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범죄적인 동족대결정책의 산물"이라면서 "동족에 대한 적대감과 대결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행사"라고까지 했다.

김정은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정작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안팎으로 거듭 천명했다"고 했다. '오지랖' '제정신'과 같은 비난성 발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북 대화 기조를 어어가려고 저자세로 일관하다 무시당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정은의 '오지랖' 발언은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국민에 대한 모욕적 언사"라며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북한의 모욕적 행동에 대응을 제대로 않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작년에 나온 리선권의 '냉면 목구멍' 발언 때도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이런 식으론 북핵 협상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가 북핵 협상 기조가 깨지는 것을 우려해 ‘전략적 인내’ 기조를 취하는 것이란 해석도 있지만, 야당에선 "북에 안보를 구걸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6일 공군 제1017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17일 보도했다. 김정은이 북한군 수호이-25 전투기의 비행을 지켜보고 있다./조선중앙통신

◇ 김정은, 軍 관련 움직임 늘려가는데 한국은 조용조용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은 군 관련 일정을 부쩍 늘리고 있다. 지난달 25일엔 평양에서 1박 2일동안 '조선인민군 제5차 중대장 대회'를 주재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조성된 혁명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인민 군대의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조국의 안전을 수호하고 우리 인민의 영웅적인 창조 투쟁을 무력으로 튼튼히 담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일엔 항공부대를 방문해 비행 훈련을 지도했고, 17일엔 국방과학원이 진행한 '신형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지도했다. 김정은은 신형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한 뒤, "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들어내는 무기가 없다"면서 ‘사변’으로 평가했다. 김은 국방 과학 기술을 최첨단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단계적 목표와 전략적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김정은의 공개적인 군 관련 현지 지도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우리 공군의 첫 스텔스 전투기인 F-35A가 지난달 29일 공군 청주기지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인도식은 청주비행단장 주관으로 조용히 치러졌다. 공군 참모총장도 다른 행사차 청주기지를 찾은 길에 인도식에 들렀을 뿐이다. 한국군이 세계 8번째 스텔스기 보유국 반열에 드는 기념비적인 일이었지만 우리 군의 전력 증강을 사사건건 트집잡는 북한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16일 F-35A 반입에 대해 "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를 실현하자면 군사적 긴장의 근원으로 되는 외부로부터의 전쟁 장비 반입과 침략 전쟁 연습이 중지돼야 한다"면서 "군사적 대결과 평화는 양립될 수 없다"고 했다. 김정은이 같은 날 항공·반항공 부대를 찾은 것도 우리 군이 F-35A를 도입한 데 대한 대응 성격이 있어 보인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우리를 향해선 '훈련하지마라' '전술무기 도입하지 마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군사 훈련을 하고 신형 무기를 개발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김정은의 군사적 움직임은 우리 군이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F-35A 도입행사도 조촐하게 치룬 것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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