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 9개 사립대 "현 고1 수능서 이과 선택과목 지정"..'문이과 통합'정책 유명무실해지나
일반고 심화과목 회피로 '특목고·사교육 광풍' 부추길수도
[서울경제] 연세대와 고려대 등 서울시내 주요 9개 사립대학이 현재 고교 1학년의 대학 입시에 첫 적용되는 문이과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관련해 자연계열 전형에서만 수학·과학 교과에 한해 일부 선택과목을 지정한다. 또 인문계열 전형에서는 선택과목을 지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현재 수능과 별다른 차이가 없게 돼 정부가 추진하는 문이과통합형 교육과정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주요 대학이 교육부의 권고대로 시한보다 1년여 앞서 이 같은 내용의 계획안을 내놓으면서 전형안 미비로 빚어졌던 일선 고교의 혼란은 한결 줄게 됐다.
계획안에서 대학들이 이과 계열에만 선택과목을 지정하면 문이과별 필수 과목이 사라질 뿐 현 입시제도와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현행 이과 수능과 동일한 흐름인데다 현재도 이과계 학생들이 문과계 학과를 진학하는 데 따른 불이익은 거의 없는 반면 문과계 학생이 이과계 학과를 지원할 경우 가산점 등의 혜택이 없어 ‘교차 지원’에 따른 여파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내 주요 대학이 동일한 입시안을 제시함에 따라 쉬운 과목을 지정한 특정 학교로의 쏠림 현상을 방지하는 한편 전국 4년제 대학들에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게 돼 입시 지형에 미칠 파장도 줄어들 전망이다. 정시에서 문·이과 통합이 전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쉬운 수능 과목으로 ‘러시’가 발생하고 사회탐구과목을 택해 공과대에 진학하는 일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이번 방안 제출에 앞서 전국입학처장협의회 등을 통해 교육부와 의견을 교환하며 당국의 ‘의중’까지 사전 탐사했다. 교육 당국은 대학들의 전형안이 문과와 이과 별로 필수과목을 지정한 현 고2까지의 대입 전형안의 폐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당국의 대전제에 상응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부처와 대학 간 정책 반영에 앞서 ‘눈높이’까지 맞춘 것으로, 당국도 일방적인 문이과통합이 부를 수 있는 혼란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문이과통합안 시행에 따른 현장의 파열음을 모두 막는 것은 요원할 전망이다. 하위권 지방대 등 선택과목을 지정하지 않는 전국 4년제 대학들이 많아질수록 교실의 학력 격차는 커질 수 있다. 이미 현행 고2부터 문과 과정이었던 미적분이 이과로 이동한데다 문과계도 쉬운 사회 과목에 몰릴 것으로 보여 기초학력저하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심화학습이 제도적으로 가능한 학교는 특목고에 그치고 일반고에서 심화 과목을 개설할 여지는 더욱 낮아져 ‘과학고 광풍’과 이과 사교육의 폭증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정시인 수능에 집중된 계획안에 수시 전형은 포함되지 않아 학교 현장의 ‘정책 발 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2022학년도 수능 비중을 30% 이상으로 두는 수능 확대책이 시작되지만, 수시 교과전형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려 ‘수능 30%룰’의 적용을 피해 가는 대학들도 늘어날 수도 있다. 이런 주요대의 방침이 수능 절대평가화 흐름을 막아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이밖에 문이과통합 이후 내신 절대평가를 추진해 고교학점제를 완성하려던 정부 계획에 일부 제동이 걸린 셈이라 향후 정책 흐름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학과 교수는 “입시에서 경쟁을 배제하려는 진보 정권의 흐름에 다시 제동이 걸린 셈”이라며 “학년마다 교육과정이 다를 정도로 복잡해진 입시 체제를 바로잡으려면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도록 교육 대계를 짜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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