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인득 70대 노모 "절대 봐주지 말라, 가장 강한 처벌 줘야"

김윤호 2019. 4. 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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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변인이 본 안인득
조현병 치료 끊은 뒤 증세 심해져
경찰 "이웃 살해 계획 세운 듯"
병원 치료 중단 뒤 기초수급 탈락
가족 "가장 강한 처벌 내려달라"

안인득, 어떻게 괴물 됐나 <상>
진주 묻지마 살인 사건의 희생자 5명 가운데 처음으로 황모(74)씨의 장례가 21일 치러졌다. 이날 오전 경남 진주 한일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이 고인의 유해를 운구하고 있다. [뉴시스]
“조금도 봐주지 말고 벌해 주세요. 절대 봐주지 말아야 합니다.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70대 노모는 양손을 바르르 떨었다. 취재진이 18일 오른손을 잡았는데도 떨림이 그치지 않았다. ‘살인범’ 안인득(42)의 노모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점점 격해졌다. 노모는 17일 사건 당일부터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취재진이 다음날 경남 진주시 모처에서 만났을 때 “이렇게 큰일을 저질러서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유족에게 너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노모의 눈밑에는 깊은 주름이 팼고, 얼굴빛이 너무 좋지 않았다. 노모는 “가장 강한 처벌을 내려 달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안인득은 17일 경남 진주시 가좌동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5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15명을 다치게 했다. 노모와 안인득의 형제들도 충격에 빠졌다. 한 형제는 “범행 중 손을 다쳤는데 경찰이 치료하려면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고 왔더라”며 “‘사람을 죽여 놓고 자기(안인득을 지칭)는 살고 싶다고 하더냐’고 되물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활고에 고교진학도 포기=안인득은 어릴 때부터 가난했다. 단칸방을 여러 차례 전전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그를 지켜봤던 A씨(42)는 “말이 별로 없고, 친구가 많지 않았다.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고 노래방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1993년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가난한 형편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졸 학력 탓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길이 없었다. 진주의 한 정비공장을 시작으로 공장 근로자로 전전했다. 공장에서 가족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중졸에다 가계곤란자로 분류돼 상근예비역을 마쳤다.

20대 초반 경남 김해의 한 공장에서 허리를 다쳤는데, 이때부터 이상 징후가 싹텄다. 큰형은 “허리를 다치고 나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으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다른 형제는 “가족을 포함해 주변에서 밥을 주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고함을 지르면서 물건을 창밖으로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고 말했다. 피해망상 증세가 시작됐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 무렵 고교 졸업장을 따겠다며 뒤늦게 들어간 방송통신고 과정도 그만뒀다. 아무도 안인득의 조현병을 알아채지 못하고 방치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피해망상 증세에다 가족을 다그치는 등의 폭력적 행위를 보였다면 ‘편집성 조현병’으로 볼 수 있다”며 “그때 조기에 집중 치료를 했으면 회복됐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국 조현병 환자의 평균 미치료 기간은 84주다. 영국(30주)의 2.8배다. 그런데 안인득은 500주가량 된다. 20대 초반 시작된 조현병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산재 불승인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변해 갔다. 몇몇 공장을 전전하던 안인득은 31세에 경남 창원의 한 대기업 공장에서 물건을 나르던 중 또 허리를 다쳤다. 안인득의 형은 “가족도 모르게 혼자 산업재해를 인정받으려고 돌아다녔지만 결국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안인득은 이번 범행 후 “늘 불이익을 당했다”고 소리쳤다.

안인득은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비관해 스타렉스 차량에서 노숙했다. 그러다 30대 초반이던 2010년 대학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충남 공주치료감호소에 들어갔다. 퇴소 후 이유 없이 주변 사람과 가족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경찰서를 들락거렸다고 한다. 형제들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 2011년 11월 조현병 진단을 근거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퇴원 후 스스로 통원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병세가 호전됐다. 포클레인 자격증을 따려고 시도했다.

그는 무직에 외톨이였다. 정부 생계비와 어머니의 지원금으로 살았다. 2015년 12월 노모 집 근처 아파트로 이사했다. 노모는 “기초연금 20만원으로 아파트 임대료 15만원을 내줬고 반찬값도 5만원을 보탰다”고 말했다. 안인득은 신용카드를 사용해 빚을 지기도 했다. 안인득은 2016년 말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했다. 근로소득이 있다고 신고하면서다. 이듬해 9월 다시 신청했고,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조건부 수급자가 됐다. 지난해 12월 진주자활센터에 한 달 정도 나갔다. 조건부 수급자는 자활센터에 의무적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1월 17일 ‘조건 불이행’이 됐다. 당시 센터 직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노모가 매달 20만원 지원=경찰은 안인득이 조현병 환자이긴 하지만 계획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쉬운 말로 ‘헛것을 본다’고 표현하는 조현 증세와 달리 망상은 자신이 위협받는 상황을 상상해 극도의 불안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망상 증세가 있다고 해도 범행을 계획하는 사고 능력이 사라진 건 절대 아니다”며 “따라서 자신을 보호할 ‘작전’을 짜고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동우 교수는 “조현병을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화·중증화되는데 주변의 인식 부족, 본인의 거부 등이 겹쳐 중증환자가 됐다. 2017년 5월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면서 인권을 강화했지만 외려 입원 치료가 어려워져 치료 지연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진주=김윤호·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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