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최초" 5G 시대가 체감되지 않는 이유

김철오 기자 2019. 4.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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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 시설도 부족하고 콘텐츠도 없다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를 알리는 광고판이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SM타운 외벽에 설치돼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는 5세대 이동통신(5G)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한 국가다. 국내 이동통신 3사는 지난 3일 밤 11시(이하 한국시간) 5G 회선을 개통해 모바일기기 연동 절차를 시작했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의 상용화 시점인 4일 오전 1시를 2시간 차이로 앞질렀다.

하지만 2주를 넘긴 기간 동안 체감되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되레 회선 단절이나 속도 저하에 대한 이용자의 불만만 높아지고 있다. “5G로 회선이 분할돼 기존 통신망의 속도가 줄었다”는 항의도 나온다. 5G는 ‘세계 최초’ 상용화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왜 환영받지 못하고 있을까.

저변 없는 ‘세계 최초’의 공허한 타이틀

국내 이동통신 3사는 ‘세계 최초’를 목표로 삼고 5G 상용화를 서둘러 시작했지만 회선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저변을 충분하게 마련하지 않았다. 5G 기지국의 숫자만 봐도 부족한 저변을 확인할 수 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이동통신 3사 장치 현황에서 5G 기지국은 상용화 당일인 지난 3일 전국에서 8만5261개로 집계됐다. SK텔레콤이 3만8213개로 가장 많았다. KT는 3만5264개, LG유플러스는 1만1784개로 뒤를 이었다.

5G 기지국 수는 2011년 상용화된 4세대 이동통신(4G) LTE의 국내 이동통신 3사 합계(83만2380개)와 비교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마저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경기·인천에 설치된 5G 기지국 수는 5만4899개. 전국 기지국의 64%가 수도권에 있는 셈이다. 지방 대도시인 부산·대구·울산·광주·대전의 기지국 합계는 1만884개에 불과하다.

쉬운 예로 설명하면, 우리나라의 세계 최초 5G 상용화는 프로리그를 운영한다면서 경기장을 1곳밖에 확보하지 못한 스포츠 종목의 출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야구장 10곳으로 운영되는 프로야구를 경험한 국내 스포츠팬에게 경기장 1곳뿐인 종목은 ‘정상적 운영’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5G 상용화 3주차를 앞둔 21일 SNS에서 “5G폰으로 바꾼 뒤부터 접속이 끊길 때가 많다” “5G가 개통된 뒤부터 LTE폰 속도가 느려졌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트위터의 한 이용자는 “5G폰의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 짧은 글을 올리는데 1분이 걸렸다”고 적었다. SK텔레콤은 연내까지 7만개, LG유플러스는 같은 기간 8만개까지 5G 기지국을 늘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회선의 품질 개선을 위해 기지국 숫자의 증가와 더불어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운영능력이 요구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9일 5G 안정화 및 품질개선을 위해 이동통신사, 모바일기기 제조사와 함께 ‘5G 서비스 점검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TF는 오는 23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매주 현안을 점검할 계획이다.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를 알리는 광고판이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의 한 백화점에 설치돼 있다. 뉴시스

“지금도 충분한데 굳이 5G?” 더 큰 문제는 이용의 당위성

4G, 5G는 회선 기술의 세대를 구분할 뿐 정식 명칭은 아니다. 무선통신망 표준을 제정하는 국제기구 3GPP(3rd Generation Partnership Projec)는 4G의 상업용 명칭을 LTE(Long Term Evolution·오랜 기간의 진화), 5G를 NR(New Radio·새로운 무선통신)로 명명했다. 국내에서 LTE라는 이름이 보편화된 4G와 다르게 5G는 NR보다 보편적인 홍보문구로 활용되고 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들은 ‘5G 시대’를 선언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NR을 LTE와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은 ▲20배 이상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 ▲10배 이상 빠른 반응 속도 ▲10배로 늘어난 동시접속자 수(NR은 1㎢ 안에서 모바일기기 100만대 접속 가능)로 볼 수 있다. 무엇이든 NR이 LTE보다 빠르고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웹서핑, 게임, 영화 감상 수준으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가뒀던 콘텐츠의 시각효과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로 확대할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판단력을 높이거나 인공지능(AI) 중장비를 실수 없이 움직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 전송은 NR 안에서 가능하다.

문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수준의 모바일기기만 활용하는 보통의 무선통신망 이용자에게 웹서핑, 게임, 영화 감상 이상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이유가 없는 점에 있다. AR 시대를 주도할 것으로 기대됐던 모바일게임 포켓몬고의 일시적인 흥행은 기술적 진보보다 유명 캐릭터를 앞세운 주목도 상승의 결과로 분석된다.

단순한 기지국 수 증가만이 아닌, 이용자에게 당위성을 부여할 콘텐츠 개발도 5G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신 보고서에서 “5G 보급률은 이 회선이 정착할 2022년 이전에 충분한 저변을 확보하지 못해 0.4%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는 상용화의 원년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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