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LG·삼성 전기차 배터리 기지개? 中서 불어온 보조금 훈풍..'제2 반도체' 되나

김경민 2019. 4. 2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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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보조금 승인을 앞두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마다 기대가 크다. 사진은 LG화학 중국 난징 공장. <LG화학 제공>
지난해까지만 해도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는 저마다 풀이 죽어 있었다.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에 안간힘을 써왔지만 정작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뚫지 못해 답답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국이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보조금 승인을 앞두면서 중국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최근 홈페이지에 제318차 형식승인 통과 자동차 목록을 게재했다. 이 목록에는 LG화학 난징 공장에서 배터리를 공급하는 둥펑르노자동차의 전기차 4종, 삼성SDI 톈진 공장 배터리가 탑재된 충칭진캉자동차의 전기차 1종이 포함됐다. 둥펑르노는 프랑스 르노와 중국 둥펑자동차의 합작법인이다. 이를 두고 미중 무역협상에 따른 중국 정부의 개방 확대 신호라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상인 친환경차 추천 목록에 포함되려면 형식승인부터 통과해야 한다. 형식승인이란 중국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을 지급하기 전 일종의 후보군을 선발하는 단계다. 일단 형식승인 관문을 통과한 만큼 둥펑르노와 충칭진캉차가 각각 보조금을 신청하면 5월 중 최종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보조금 신청이 통과될 경우 국내 기업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보조금이 지급돼 중국 진출에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업체마다 中 공장 증설 안간힘

이는 국내 업체 입장에서 의미가 크다. 중국 정부는 2016년 말부터 자국 산업 육성,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 조치로 한국 업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지 않는 정책을 펼쳐왔다. 중국 시장 전기차 판매가격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달하다 보니 내수 전기차 업체 발주는 사실상 끊겼다. 중국 수주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보조금 대상 승인은커녕 형식승인조차 내주지 않으면서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사이 CATL, BYD 등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는 자국 내 물량을 독식하면서 초고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일례로 CATL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중국 합작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배터리를 대량 공급하면서 수주 물량을 늘려갔다. 이 덕분에 CATL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 부동의 1위인 일본 파나소닉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BYD 역시 중국 서부 칭하이에 축구장 140개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 배터리 공장을 지으면서 ‘배터리 굴기’에 나섰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21.9%로 1위(2018년 기준)를 기록했다. BYD 역시 세계 시장점유율이 12%에 달해 일본 파나소닉(21.4%)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한국 업체 중 가장 점유율이 높은 LG화학은 4위(7.6%), 삼성SDI는 8위(3.1%)에 그쳤다. SK이노베이션은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중국 정부 형식승인으로 한국 업체들은 상당히 들뜬 모양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판로가 열리면 단숨에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덕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 토종 업체가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델로 형식승인을 신청할 정도로 한국산 배터리 기술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형식승인을 넘어 보조금 지급까지 받게 되면 중국 시장점유율이 급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호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 지방정부는 6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기로 했다. 중앙정부 보조금도 전년 대비 절반가량 축소된 상태다. 대당 900만원까지 주던 보조금이 올해 50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그 덕분에 CATL, BYD 등 중국 업체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어 기술력에서 앞선 한국산 배터리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보다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 배터리 경쟁력이 차츰 흔들리면서 중국 배터리 업계가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도 높다. 실제 중국 전기차 배터리 3위 업체 워터마는 지난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이며 퇴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가 잘나간다지만 CATL, BYD 등 상위 업체를 제외하면 후발주자는 하나둘씩 도태되는 분위기다. 보조금 수혜를 입지 못할 경우 중국 업체가 줄줄이 쓰러질 가능성도 있다”고 귀띔했다.

‘절호의 기회’를 맞은 한국 업체들은 중국 공장 생산 물량을 늘리며 차근차근 중국 시장 공략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LG화학의 경우 중국 난징시 전기차 배터리 1공장과 소형 배터리 공장에 2020년까지 1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다 보니 자금난 우려가 컸지만 최근 글로벌 화학 기업 최초로 그린본드를 발행해 15억6000만달러(약 1조7800억원) 자금을 유치했다. 글로벌 그린본드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주요 금융시장에서 동시에 발행돼 유통되는 채권. LG화학 관계자는 “이번 자금을 전기차 배터리 수주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영찬 KB증권 애널리스트는 “LG화학의 경우 현재 5GWh인 중국 자동차 전지 생산 능력이 2020년 30GWh로 늘어날 전망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중국 매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중국 산시성 시안에 배터리 공장을 둔 삼성SDI 역시 제2공장 신설을 검토 중이다. 시안 공장에서 전기차 3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지만 급성장하는 배터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후발주자 SK이노베이션도 올해 중국 장쑤성 창저우시에 40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7.5GWh 규모의 부품 공장 착공에 들어간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전망도 장밋빛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올해 200만대, 2025년 1100만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중국 시장을 뚫지 못했지만 국내 배터리 업체 수주 실적도 괜찮은 편이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지난해 신규 수주액은 110조원을 넘어섰다. 석유화학, 자동차 수출액을 앞지른 데다 국내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연간 수출 규모(141조원)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중국 시장 빗장이 뚫릴 경우 머지않아 반도체 수출 규모를 훌쩍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물론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다. 형식승인 목록에 포함되기는 했지만 중국의 보조금 대상 전기차로 확정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앞서 지난 2월 상하이GM이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델의 형식승인을 받았지만 최종 보조금 대상에서는 빠졌다. 만약 중국 정부가 보조금 대상으로 승인해주지 않을 경우 중국 시장 진출이 물거품 될 우려도 크다.

일본 업체도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한때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 파나소닉은 최근 테슬라와의 독점 계약을 끊고 세계 1위 자동차회사 토요타와 전지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한국, 중국 배터리 업체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자국 대표 기업이 손을 맞잡은 셈이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마다 경쟁적으로 증설에 나서면서 자칫 배터리 시장이 공급 과잉에 시달릴 우려도 크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중국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은 164GWh로 수요 예상치(54GWh)를 한참 웃돈다. 지난해에도 배터리 생산 능력이 134GWh로 수요(30GWh)의 4배에 달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가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차별화된 기술력이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중국, 일본의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10점 만점에 중국 8.36, 일본 8.04, 한국 7.45로 한국 경쟁력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경쟁력은 일본에, 성장 잠재력은 중국에 한참 뒤처졌다. 전기차 배터리가 한국 경제를 먹여살릴 ‘제2의 반도체’로 주목을 받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중국,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기술 혁신을 위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동시에 전문 R&D(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도 세제 지원, 충전 인프라 확충으로 국내 배터리 기업이 수익을 낼 만한 환경을 마련해줘야 할 때다.” 양은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 의견은 의미심장하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4호 (2019.04.17~2019.04.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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