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세월호 5주기 계기수업 현장

2019. 4. 2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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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10년, 현장을 가다>
지난 16일 세월호 계기수업 현장
혁신학교 8년차 시흥 응곡중학교
민주시민·안전교육 '종일 워크숍'

노란 리본 달고 동네 행진하며
희생자 추모 활동지 채워나가

'세월호 플래시 몹' 한 고양 덕양중
학교 밴드 추모공연 통해
4월16일 의미 기억하고 톺아봐
지난 16일 오후 갯골생태공원에서 진행된 세월호 계기 수업 ‘다섯번째 봄, 망각을 넘어 공동의 기억으로’ 시간에 응곡중 3학년 장혜정, 김민우, 유상우(사진 왼쪽부터) 학생이 활동지를 쓴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시흥/김지윤 기자

이 기사는 지난 16일 경기 시흥시 응곡중학교에서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진행한 ‘다섯번째 봄, 망각을 넘어 공동의 기억으로’ 계기 수업을 장혜정(응곡중 3) 학생의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경기도교육청은 2022년까지 모든 학교에 혁신학교 운영 원리를 적용하고, 현재 27곳인 혁신교육지구를 전 지역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혁신학교 시리즈 두 번째 주자로 경기 지역 8년차 혁신학교인 응곡중학교를 찾았다.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벌써 5년이 되었다. 2014년 4월16일, 당시 11살이었던 나는 그날의 티브이 뉴스 화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언니 오빠들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세월호 안에서 창문을 두들기며 서 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어린 마음에 너무 슬프고 답답해서 티브이를 보며 기도했다. 옆에 앉은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다른 어른들도 오가며 “아이고, 어떡해. 빨리 구해줘야지 뭐 하는 거여”라고 말하며 애가 탄다고 했다. 이튿날 교실에 들어섰더니 담임선생님도 퉁퉁 부은 눈으로 교단에 서 있었다. 그렇게 해마다 같으면서도 다른 4월16일을 보내며 나도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됐다.

우리 학교 등굣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이런 봄날에 그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 ‘지겹다’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쏘아주고 싶다. 그런 말은 당신들이 할 말이 아니라고.

오늘(4월16일)은 1교시에 우리 학교 학생자치부 주관으로 먼저 각 반 교실에서 15분간 추모활동을 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한 뒤 학급별 추모 글을 모아 노란색 세월호 리본 만들기 활동을 했다. 친구들은 연필을 들고 노란 접착메모지에 진심을 꾹꾹 눌러썼다. 반별로 만든 활동지를 학교 중앙현관 앞에 걸어두었다.

지난 16일 오후 경기 시흥시 응곡중학교 전교생이 갯골생태공원에서 진행된 세월호 계기 수업 ‘다섯번째 봄, 망각을 넘어 공동의 기억으로’ 시간에 활동지를 작성하고 있다. 시흥/김지윤 기자

“언니, 오빠들. 5년이 지났어요. 지금은 편안하신가요? 아직 온전히 진실이 밝혀지진 않은 거 같아요.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배 안에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예전에 안산의 한 공원에서 수많은 메시지와 꽃들을 봤어요. 하늘에선 행복하세요.”

“형, 누나들. 난 아직 잘 모르고 힘도 없지만 매년 생각하고 또 생각할게요. 어떻게 잊을 수 있어요.”

전교생이 노란 리본 달고 행진

오후 2시에 우리 학교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학생회 봉사부 주관으로 우리는 노란 리본을 손목에 묶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갯골생태공원으로 행진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차에 탄 어떤 아저씨가 “어느 학교 학생들이니?”라고 물었다. 뜻깊은 수업이라며 응원한다고도 해주었다.

20여분을 행진하고 갯골생태공원에 도착해 모둠별로 ‘다섯번째 봄, 망각을 넘어 공동의 기억으로’ 활동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7쪽으로 구성된 활동지를 한칸씩 채워보며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 안전사회 만들기 등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전교생이 모둠을 이뤄 활동지를 채우는데, 곳곳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지난 16일 응곡중 학생들이 노란 종이에 추모 메시지를 쓴 뒤 학교 복도에 전시했다. 시흥/김지윤 기자

“그런데 아직도 처벌받은 사람이 없대.” “미수습자 5명의 유가족들은 얼마나 애가 타실까.” “오늘 어떤 정치인이 세월호 관련 망언을 했다는 기사 봤어? 황당하지 않니?”

나는 같은 반 민우, 상우와 함께 모둠 활동을 했다. 우리는 활동지에 각자 두 글자씩 ‘잊지’ ‘않을’ ‘게요’를 쓴 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왜 잊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 살 기회가 있었다는 것,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주변 모둠 친구들도 노란 리본을 손목과 머리에 묶은 뒤 생각에 잠긴 채 열심히, 때론 덤덤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김미영 선생님이 모둠 쪽으로 다가오셨다. 선생님은 “생태공원 저쪽 끝에서 해가 지기 시작하면, 노을이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힘겨운 하루를 머금은 하얀색 구름 끝에 노오란 햇빛 한점이 걸려 있었다. 이 작은 빛이 친구들의 손목과 가슴에 달린 세월호 리본에 겹쳐 보였다.

지난 16일 오후 경기 시흥시 응곡중학교 전교생이 갯골생태공원에서 진행된 세월호 계기 수업 ‘다섯번째 봄, 망각을 넘어 공동의 기억으로’ 시간에 활동지를 작성하고 있다. 시흥/김지윤 기자

플래시 몹, 추모공연 한 학교도 있어

경기 고양시 덕양중학교에 다니는 내 친구도 마침 ‘4월16일 세월호 평화수업’을 하고 있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와 같은 혁신학교인 덕양중에서는 50여명의 친구들이 학교 안팎에서 세월호 플래시 몹(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하고 학교 밴드부가 추모공연을 했다고 한다. 특히 플래시 몹은 3주 전부터 모여 연습하면서 4월16일의 의미를 몸으로 나타내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덕양중 친구가 녹화해 보내준 영상을 보며 우리는 각자 손목에 묶었던 노란 리본을 학교 나무에 소중하게 달아주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모두 우리의 활동에 동참해주셨다.

지난 16일 경기 고양시 덕양중학교 밴드부가 운동장에서 세월호 5주기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김수정 교사 제공

남의 아픔 아닌 우리의 아픔으로

모둠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5년 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비슷한 기억을 갖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학생회장인 서연이는 “계속 실종자 몇백명 이렇게 뜨고 구조자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봤다”고 했고 부회장인 기환이는 “오히려 중학교에 입학한 뒤 추모 영상 등을 찾아보며 세월호에 더 관심 갖게 됐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흥과 안산은 이웃 지역이라 4월이면 그 아픔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고도 했다. 나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활동지를 채우다가 맨 아래에 적힌 글을 읽어봤다. 기억과 안전, 민주시민과 평화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혁신학교인 응곡중의 2019년 세월호 프로젝트는, 기억의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안전과 평화를 고민해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요소들을 계속 찾아나가 봅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아닌 우리의 아픔’으로 여기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시흥/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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