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억지로라도 쉬어 가라는 말씀

2019. 4. 2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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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온갖 만물이 생겨나
분주한 마음을 멈춰 쉬게해야
일상에도 '느린 포행'이 필요해
문태준 시인
얼마 전 강릉 현덕사를 다녀왔다. 그 절은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던 적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꽤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사발 커피도 유명했다. 주지인 현종 스님이 직접 원두를 볶고 갈고 내려서 커피를 내놓았는데 그것을 다완(茶豌), 즉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큰 사발에 담아 내놓았다. 사발에 담아 마시는 이유를 여쭤보자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들어 드시라는 뜻이라고 했다.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 있었을 과정들과 노고들을 생각하니 커피의 향이 더 짙고 각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현덕사를 다녀온 지 꽤 여러 날이 지났지만, 스님의 방에 걸려 있던 액자의 한 문장이 내겐 사발 커피의 향만큼이나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문장은 ‘억지로라도 쉬어 가라’였다. 그 문장을 만난 후에 나는 돌아오는 길을 재촉하지 않고 조금 늦춰 강릉의 솔 숲길을 걷고, 해변의 하얀 모래사장에도 잠깐 앉아 있었다. 질문처럼 밀려오는 바다의 파도를 보면서 열이 끓는 나의 마음에 숨을 돌리며 쉴 수 있었다.

‘억지로라도 쉬어 가라’는 말씀은 마음을 잠시 쉬게 하라는 뜻일 게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卽種種法生) 심멸즉종종법멸(心滅卽種種法滅)’이라고 했다. 마음이 있으면 가지가지 만물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으면 가지가지 모든 만물조차 사라진다는 뜻이다. 원효 스님이 무덤가에서 해골 물을 마시고 읊었다는 게송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있다. 쉬려면 마음이 먼저 쉬어야 할 터이다.

마음은 분주하다.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바퀴처럼 요란하고 바쁘다. 미련을 오래 갖거나, 다가올 시간에 바라는 것이 많거나, 미리 염려해 걱정이 많다보면 지금의 내 마음은 뒤엉킨 실타래가 되고 만다. 내 어머니는 내 마음이 뒤엉킨 마음일 때마다 크게 숨을 한 번 내 쉴 것을 권하시거나 ‘이만 하면 됐다’라고 혼잣말로 반복해서 중얼거리라고 이르셨다. 요즘도 가끔 나는 지금의 내 상황이 충분히 족하다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한다.

마음을 쉬게 한다는 것은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를 늦추면 세계가 잘 보이게 된다. 나는 어제 모과나무 아래에 서서 모과나무를 올려보았다. 모과나무 아래에 서본 지 꽤 오래되었다. 어느새 새잎이 돋았고,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모과나무를 무심하게 지나쳤으면 모과나무의 붉고 어린 꽃망울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또 나는 며칠 전에 유치원 아이들의 소풍 행렬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길을 가다 내가 멈춰 섰을 때에 그 아이들의 밝고 활짝 웃는, 싱그러운 행렬이 나의 마음속 소로(小路)를 걸어가며 나를 환하게 만들어놓는 것을 느꼈다. 내가 멈춰 서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행복이었다.

마음을 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짬을 낸다는 말이 있듯이, 하고 있는 일에서 잠시 손을 떼는 겨를이면 충분하다. 짧게는 들숨 날숨 사이에도 가능하다. 시를 쓰는 시인에게도 시상(詩想)이 태어나는 순간은 숨을 돌리는 그 짧은 틈에 있다. 그 순간에 안목이 열린다.

정지용 시인의 시 가운데 ‘인동차’라는 시가 있다. “노주인의 장벽(腸壁)에/ 무시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여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서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산중에서 삼동을 나는 일에 대해 쓰고 있다. 바깥은 눈바람이 맹수처럼 사납고, 책력 하나 없어 겨울은 언제 끝이 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랭에 갇힌 노인의 눈에 문득 보인 것은 통무에 파릇하게 돋은, 여리고 작은 순이었다. 이 파릇한 순을 보는 순간 노인은 혹독한 삼동을 살아낼 어떤 의욕을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한다. 무의 파릇한 새순을 바라보는 이 겨를이 노인에게는 마음을 쉬는 때이며, 이로 인해 차갑고 무거운 근심을 내려놓게 되고 삶의 의욕을 새롭게 갖게 된다. 무용해 보이는 잠깐의 눈 돌림이 마음에는 전환의 계기가 된 셈이다.

참선을 하다가 잠시 잠깐 느린 걸음으로 걷는 일을 포행(布行)이라고 한다. 화두를 내려놓지는 않지만, 몸을 풀기 위해 가볍게 걷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포행이 필요하다. 이완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이 없이 멍하게 앉아 있어도 좋다. 간벌(間伐)을 하듯 생활에 틈을 만들고 간격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형편이 안 되겠지만 억지로라도 쉬어 가라는 말씀을 생각한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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