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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 명암.."일자리 늘고 쾌적" "주말엔 사람이 없다"

입력 2019.04.24. 05:06 수정 2019.04.29. 09:36
다시 균형발전이다
나주·부산·진천 가보니
112개 공공기관 10곳 혁신도시로 이전
지역인재 의무채용 정책으로 경제 활성화
타 지역 직원 62%가 혁신도시에 정착
나주·진천 등 혁신도시 소재 인구 증가

병원·학교 등 필수시설 부족하다는 불만
'인구 적으니 수요가 적어 시설 적고
시설 없으니 불편해 사람 안 오는' 악순환
"기관·기업 더 들어오면 인구 늘 것" 기대도
19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일반 도로 모습.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배밭은 빌딩 숲으로 탈바꿈했다. 넓게 닦인 왕복 10차선 도로는 도시의 동서를 관통했고, 도시 한가운데는 서울 여의도공원의 2배가 넘는 호수공원이 뻥 뚫린 하늘을 이고 있었다.

“아이들 키우기 좋아요. 깨끗하고 공원도 가깝고요.” 지난 2월25일 광주전남혁신도시(나주혁신도시)에서 만난 양아무개(38)씨가 아이와 함께 병원 등이 있는 상가로 들어가며 말했다. 양씨는 한국전력공사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 지난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오기 전에는 새로 조성되는 도시여서 기반시설 등이 부족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와보니 공원과 도로, 아파트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생활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나주혁신도시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한 한 중소기업에 취직한 뒤 이곳으로 삶터를 옮긴 정아무개(23)씨도 “도시가 깨끗하고 번잡하지 않다”며 “회사도 가까워서 살기 좋다”고 말했다.

나주혁신도시가 들어선 전남 나주 금천면, 산포면은 12년 전만 해도 온통 배밭이던 곳이다. 2005년 정부가 광역시·도별로 1개씩 혁신도시를 건설하려고 계획했지만, 광주와 전남은 협의해 두곳을 한곳으로 모아서 만들기로 했다. 광주에 가까운 전남 지역인 나주 금천·산포면에 혁신도시가 들어선 이유다. 광주시와 전남도의 협력으로 나주혁신도시는 전국 10곳의 혁신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계획됐다. 2007년 도시 건설이 착공됐고 2014년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혁신도시 건설에 따라 땅 이름도 금천·산포면에서 ‘빛가람동’으로 바뀌었다.

19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전경 맨 오른쪽이 한전 본사.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153개 기관 이전으로 지역 일자리 늘어 혁신도시의 역사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균형발전을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고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가운데 대통령이 정하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단계적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7년 수도권을 뺀 전국 광역시·도에 모두 10곳의 혁신도시를 지정했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고, 지역 경제를 활성시키겠다는 목표였다. 1차 목표는 2012년까지 모두 153개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23일 현재, 이들 공공기관 가운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만 뺀 나머지 152개 기관이 이전을 마무리한 상황이다. 구체적으로는 19개가 세종시에, 112개가 혁신도시에, 21개는 기타 지역으로 옮겼다.

혁신도시의 가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는 지역 일자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혁신도시 문현금융지구 한국남부발전에서 근무하는 부산 출신 ㄱ씨는 “지난해 우리 회사에 입사한 사람 가운데 30% 이상이 부산 출신이다. 공공기관, 공기업에 취업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혁신도시가 생긴 이후 부산 사람들에게 취업 기회가 넓어져 지역에선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관에서도 이직을 하지 않고 오래 일할 것이란 기대에 지역 인재를 선호한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 공공기관 임직원 62% 이주로 인구 증가 정현진(60)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살다가 2017년 부산 영도로 이주했다. 일터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부산혁신도시 동삼지구로 이전하면서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부인과 함께 내려왔다. 그는 부인과 둘이 살기에 혁신도시가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걸어서 다닐 거리에 직장도 있고, 차로 5분이면 영도 번화가인 나항동, 봉래동에 닿을 수 있고, 20분이면 부산 시내로도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혁신도시별 사업추진 현황’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이전 기관 직원 3만9593명 가운데 62%의 직원이 직장을 따라 혁신도시에 정착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도권에 있던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소속 직원과 그 가족들이 혁신도시에 둥지를 튼 결과다.

혁신도시 건설에 따른 이동으로 인구가 뚜렷하게 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은 나주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2010년 7만8679명이던 나주 인구는 혁신도시 개발을 마친 2015년 9만2582명으로 뛴 뒤, 지난해에는 11만3839명을 기록했다. 8년 새 인구가 44.7%나 증가한 것이다. 이는 전국 10곳의 혁신도시 가운데 가장 많은 공공기관(16개)과 기업(224개)이 들어서면서 3만819명이 정착한 나주혁신도시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진천·음성혁신도시가 위치한 충북 진천도 기관 이전이 한창이던 2015년 6만7천여명이던 인구가 지난해 7만7천여명으로 늘었다. 3년 만에 인구가 약 15%나 증가한 것이다.

19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비어있는 상가들.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아직은 ‘미완성’…주말엔 ‘유령도시’ 그러나 나주와 충북 진천 등을 빼면 혁신도시의 직접적인 혜택을 본 지역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남 진주, 경북 김천처럼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인구가 1천여명 증가하는 데 그친 곳도 있고, 전북 전주·완주, 대구처럼 인구가 되레 줄어든 지역도 있다.

나주혁신도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나일수(66)씨는 “젊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혼자 나주에 내려와 주중에는 혁신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수도권으로 올라간다”며 “상가 2개 가운데 하나는 비어 있다. 상가는 엄청 지어놨지만 인구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나주혁신도시의 상가단지에는 수십개의 ‘임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평일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붐비던 빛가람동의 상업지구는 주말 밤에는 사람을 거의 찾기 힘들 정도로 조용했다. 상업지구에서 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조정미(47)씨는 “주말에도 장사를 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이제 주말 장사를 접으려 한다”며 “최근 장사를 접는 상가가 많아, 2~3년 전에 비해 상가 임대료가 7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19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호수공원.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부족한 기반시설과 낮은 가족동반 이주율 혁신도시에 자리를 잡지 않고 평일에 잠시 머무는 이들이 많다 보니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의료·교육시설부터 문화·여가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나주혁신도시에 있는 한 공기업에 다니는 김아무개(28)씨는 “이곳에는 영화관이 하나밖에 없고, 대형 병원도 없어서 걱정”이라며 “주말에는 보통 충청 지역의 본가로 간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음성 혁신도시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성훈(36)씨도 “아이가 한번 아픈 적이 있어서 청주의 한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만약 혁신도시에 살았다면 30~40분은 차로 달려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에서 수도권 출신 직원들이 대부분 청주나 서울에서 출퇴근한다. 나도 청주에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천·음성 혁신도시는 전국 혁신도시 가운데 가족 동반 이주율이 38.7%로 가장 낮다.

교육·보육 여건도 부족하다. 남편을 따라 진천·음성 혁신도시로 이주한 박한나(36)씨는 “이곳에는 아이들을 보낼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하나뿐”이라며 “어린이집은 국공립이 아니라 대부분 가정어린이집이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산혁신도시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근무하는 ㄴ씨는 “부산에서 사는 게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이 수도권에 있는 학교, 학원에 다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혼자만 부산에 내려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토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혁신도시별 정주여건 만족도 조사’를 보면, 2017년 기준 혁신도시 거주자의 정주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2.4점에 불과했다. 특히 교육(50.9점), 편의·의료서비스(49.9점), 교통(45.2점), 여가(45.2점) 등의 만족도가 낮았다.

19일 전남 나주 구 도심 중앙동 거리 모습.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인근 구도심 빨아들이는 ‘인구 블랙홀’ 혁신도시는 주변 지역에도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자가 늘고 개발이 진행되다 보니, 오히려 혁신도시 주변 구도심이 쇠퇴하는 ‘블랙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혁신도시 가운데 성공한 곳이란 평가를 받는 나주혁신도시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나주 구도심에선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곰탕집에만 손님이 드나들었고, 다른 상점들은 ‘썰렁’했다. 구도심 주민 이성훈(58)씨는 “혁신도시가 생기고 이곳 주민들이 혁신도시로 이사를 많이 갔다. 혁신도시에 살고 돈도 거기서 쓴다”며 “이 동네는 쇠퇴했다. 길거리에 아무도 없지 않으냐”고 토로했다. 주민 정범주(69)씨는 “10년 전보다 젊은 사람이 확 줄었다.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 훨씬 살기 좋은 혁신도시가 있는데 유치원도, 병원도 부족한 구도심에 왜 살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나주혁신도시가 자리잡은 빛가람동은 출범 첫해인 2014년 인구가 3895명이었으나 이듬해에는 1만2452명으로 주민수가 급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3만819명까지 인구가 늘어났다. 그러나 빛가람동을 뺀 나주시 인구는 2014년 8만6774명에서 이듬해 8만5730명으로 줄어든 뒤 지난해 12월에는 8만3020명까지 쪼그라들었다.

■ ‘미완성·구도심 인구 블랙홀’ 대안은? 이에 따라 인구와 산업을 광역시 등 지방 대도시에 집중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지방 대도시 도심을 활용해 혁신도시를 만들어야 했다. 대도시 밖에 혁신도시를 만들다 보니 대중교통과 기반시설이 미흡해 아직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와함께 혁신도시를 너무 많이 만들다 보니 그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한다면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좀 더 집중적인 방안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도시 도심으로 공공기관을 추가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실행 과정에서 기존 대도시 외곽이나 주변 도시에 세종시와 혁신도시를 건설한 문제점이 있었다”며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한다면 기존 혁신도시가 아니라 기존 대도시 도심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나주 진천 부산/채윤태 기자, 김일우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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