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장 막고 법안 서류 빼앗고..한국당이 되살린 '동물국회'

2019. 4. 2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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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싸움 말자' 선진화법도 무용지물
'오신환→채이배' 사보임 결재되자
채 의원 사개특위 못 가게 '감금'
회의실 문 막고 법안 회부 방해도
채이배 의원실 점거한 한국당 의원들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5일 오전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을 오신환 의원에서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하는 사보임계를 팩스로 제출하자 의원회관 채이배 의원실을 찾아가 회의 참석을 저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몸싸움하지 말자’고 만든 국회선진화법도 무용지물이었다. 25일 국회는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을 앞두고 선진화법 이전의 ‘동물국회’ 양상으로 되돌아갔다. 여야 4당 합의안이 패스트트랙에 오르는 것을 막을 수단이 없다고 판단한 자유한국당이 사실상의 ‘물리적 봉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 법안 ‘접수’를 반드시 막아라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무산을 위해 화력을 집중한 곳은 국회 의안과 사무실이었다. 개별 위원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 절차를 밟으려면 해당 법률안이 위원회에 회부돼 있어야 한다. ‘회부’의 전 단계가 ‘접수’다.

더불어민주당은 오후 6시께부터 법률안 접수를 시도했다. 하지만 의안과 사무실에 몰려든 한국당 의원들의 방해로 연거푸 실패했다. 결국 팩스 제출을 시도했지만, 한국당 의원들이 팩스로 들어온 법률안 뭉치를 빼앗아 무위에 그쳤다.

오후 6시45분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법안 제출을 위해 의안과를 직접 찾았다. 의원들이 도착하자 대기하던 한국당 의원들이 힘으로 밀어냈고, 의안과 사무실과 복도는 아수라장이 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여야 4당과 한국당의 대치로 의안과 사무가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고 경호권을 발동했다. 경호권이 발동된 직후인 저녁 7시35분께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의안과로 접근했다. 한국당은 의원과 보좌진을 대거 동원해 의안과 출입구를 모두 봉쇄했다. 일부 인력은 의안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출입문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인간띠’를 만든 의원들 뒤에 올라서서 “독재타도, 헌법수호” 등의 구호를 외쳤고 애국가도 불렀다. 119구조대가 출동해 복도에서 대기할 정도로 상황이 위급했다. 저녁 8시30분께 민주당 의원들이 3차 시도에 나서면서 또다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통해 회의장 출입을 방해하거나 공무 집행을 방해한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 공직선거법은 국회 회의 방해죄로 5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 최하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의 봉쇄로 위원회 개최가 어려워지자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긴급 회견을 열어 “법을 지켜야 할 제1야당의 의원들이 (국회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난장판 폭력 사태를 만드는 것에 대해 민주당은 용납하지 않겠다. 반드시 오늘의 불법행위 폭력행위에 대해서 고발하고 그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5일 저녁 국회 의안과 앞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제출하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007작전처럼 이뤄진 사보임 이날 ‘동물국회’의 시작은 ‘사보임’이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9시35분께 사개특위 위원을 오신환 의원에서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해달라는 사보임 신청서를 국회 의사과에 제출했다. 통상 직접 제출하지만 전날부터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의사과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어 팩스 제출로 대신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시간30분 뒤 결재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앞서 헌법재판소에 사보임계 허가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진통은 계속됐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개특위를 열기 위해 여야 4당이 분주히 움직이던 중 바른미래당 소속 사개특위 위원인 권은희 의원도 전격 교체됐다. 대신 임재훈 의원이 투입됐다. 권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사개특위 협상을 강제로 중단했고 사보임계 제출을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다들 이성을 상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관영 원내대표는 라디오에 나와 “본인이 법안의 내용에 대해서 다소 생각이 다르시다고 해서 사임 의사를 말씀하셔서 사보임 절차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 회의 참석 막아라 한국당 의원 10여명은 이른 아침부터 사개특위에 새로 보임된 채이배 의원이 법안 문구 조율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방해했다. 채 의원은 결국 오후 1시10분께 자신이 감금 상태에 있다고 직접 112에 신고했다.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했으나 한국당 의원들의 방해로 사무실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채 의원은 창문 틈새로 얼굴을 내밀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4시간 넘게 한국당 의원들이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있다. 감금된 상태다. 필요하면 창문을 뜯어서라도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 의원이 6층 사무실에서 창문으로 탈출하는 상황에 대비해 한때 스티로폼이 건물 아래에 깔리기도 했다. 채 의원은 한국당 의원들이 길을 터준 오후 3시15분이 지나서야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채 의원을 ‘감금’한 한국당 의원들의 행위는 국회법 위반이 될 수 있다. 형법상 감금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

한국당의 ‘회의 방해’는 곳곳에서 펼쳐졌다. 한국당은 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본청 회의실 여러 곳에도 의원 20~30명을 보내 출입구를 봉쇄했다.

이날 한국당의 물리력 행사를 두고선 위법 소지가 다분할뿐더러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선진화법을 만들 때 ‘국회 내 폭력행위를 엄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한 것은 지금의 한국당 의원들이었다. ‘회의 방해죄’ 신설을 주도한 이들이 이제 와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김원철 서영지 장나래 이지혜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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