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직격인터뷰]"경제성장·일자리 없었다면 스웨덴 '복지천국' 불가능"

장세정 2019. 4. 2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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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복지제도와 정치 시스템 31년간 연구해온 최연혁 린네대학 교수]
경제성장 통해 복지 재원 마련
출산장려금은 장기 효과 없어
동거부부도 법적으로 인정해야
과거 집착 한국, 미래 고민해야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를 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교수가 최근 일시 귀국해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정치 무능과 국민 불신이 한국사회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선 기자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최연혁(59) 교수는 '스웨덴 드림'을 주제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모색한 역저『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를 쓴 저자다. 요람보다 한 단계 전인 엄마 뱃속에서 무덤까지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 스웨덴에 1988년 유학 간 뒤 올해로 31년째 현지에 살고 있다. 복지의 최전선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의 정치제도, 복지 시스템, 사회·문화를 오래 공부하면서 한국이 가야 할 미래 비전을 모색해왔다. 최 교수는 "스웨덴은 한국이 단순히 따라가야 할 나라는 아니지만, 스웨덴의 경험은 한국이 대안의 하나로 고민해볼 나라"라고 말했다. 최근 일시 귀국했던 최 교수를 인터뷰하고, 출국 이후 추가로 e메일로 문답을 나눴다. 스웨덴의 복지제도와 상생하는 정치 시스템, 양성평등과 저출산 이슈 등이 주된 화제였다.
-한국은 '저부담·저복지' 체제다. 스웨덴은 어떻게 '고부담·고복지'가 가능했나.
"복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사회적 낙오자와 저소득층은 일자리가 없거나 있어도 임금이 낮아 문제다. 스웨덴 집권 사회민주당은 ‘가장 좋은 복지는 일자리’라고 강조한다. 물론 일자리 찾기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복지도 포함된다. 일자리를 구하면 세금도 내고 이걸로 정부의 복지 재원이 채워진다. 노동시장이 무너지면 복지 재원 창고가 비어서 복지의 연속성도 무너지게 된다. 소득에서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깨끗한 조세 행정 체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복지를 위해선 균형적이고 온전한 세제 개혁이 필수다."
아이들의 등교길을 동행하는 스웨덴의 '라떼파파'들. 스톡홀름=장세정 기자
-한꺼번에 세금을 너무 많이 올리면 조세 저항이 심할 텐데.
"스웨덴이라고 한꺼번에 담세율이 높아진 건 아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30%로 유럽에서 세금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였다. 이후 93~94년에 50.1%로 조세부담률이 세계 1위였다. 지금은 43%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세계 7위다. 70년대 갑자기 조세부담률이 높아진 이유는 경제 성장 덕분이다. 1932년에 처음 집권한 사민당은 70년대까지 40년 연속 집권하면서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제성장이 받쳐줬기 때문에 복지 약속이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거다. 성장하지 않으면 복지를 책임질 재원(세금)이 마련되지 않는다."
-한국은 근로자의 48%가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면세점 이하라는 통계가 있다.
"스웨덴은 면세점이 낮아서 세금 안 내는 사람이 적다. 일단은 내고 돌려받는 방식이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책임과 의무의 공동부담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번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은 사회안전망으로 돌려받으면 된다. 복지 재원을 함께 책임진다는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스웨덴의 조세 원칙은 형평성과 투명성이다. 책임과 의무의 균형을 통한 시스템 구축과 유지가 지속가능한 스웨덴 복지제도의 핵심이다. 스웨덴 공공기관 중 신뢰도 1위가 국세청, 2위가 연금청이다. 그만큼 투명 조세와 형평 조세가 이뤄진다는 증거다."
-현금을 뿌리는 선심성 복지에 대한 비판이 많다.
"기왕 할 거면 보편적 복지가 좋고, 필요에 따라 공공부조 정책으로 선택적 복지도 할 수 있다.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해서 유지할 방법도 중요하다. 스웨덴의 노령수당은 개혁 이전인 2001년에는 보편적 복지였으나 지금은 기여한 만큼 가져가는 선택적 복지로 바뀌었다. 아동수당과 출산 보너스제도는 현금성 복지다. 2014년에 도입된 출산 보너스 제도는 단기적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 효과가 작아 2017년에 없어졌다. 현금복지는 권장하지 않는다. 단기적·단편적 복지보다 더 좋은 방안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도를 확충하는 것이다."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아내와 함께 길을 가는 스웨덴의 라떼파파. 양성평등이 뿌리내렸다.
최연혁 교수와의 대화 주제는 저출산과 고령화 이슈로 이어졌다. 한국의 출산율은 지난해 0.98명으로 역대 최저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저를 기록했다. 2017년 한국은 사상 처음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에 진입했다. 2065년에는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나온 상태다.
-한국 정부가 수백조 원을 뿌렸지만, 저출산 현상은 더 심해졌다.
"현금 정책의 효과는 일시적이고 부작용이 더 많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갈 때 쓸 수 있는 대책은 많다. 부작용이 따르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노동력 유입, 즉 이민 개방과 난민 수용이다. 단순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이제는 고급 지식 노동자도 받아야 한다. 스웨덴은 적극적인 난민정책을 펼쳐 인구의 20%가 이민자(국외 출생자)로 구성됐다. 물론 이민 개방과 난민 수용 정책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를 다소 늦출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결국 출산율을 올리는 것이다."
-결혼 기피 현상도 확산하고 있다.
"동거가 사회적 현상이 됐다면 사회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 혼인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 변화에 맞춰서 법과 제도가 변해야 한다. 혼인이라는 형식 안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정상 아이’라고 보고 그렇지 않으면 ‘혼외자’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다. 혼내·혼외 차별 없이 그냥 생명 탄생을 축복해줘야 한다. 간통죄가 사라진 것처럼 혼인법을 손봐야 한다. 스웨덴에는 혼외자 구분이 없고 혼전 부부라는 말 대신 동거(Sambo) 부부라고 부른다. 동거 부부가 출생 신고를 하면 아동수당·산모수당·출산휴가 혜택을 모두 받을 수 있다. 사실상 부부로 인정한다. 동거 증명서만 있으면 동거 부부로 등록돼 모든 사회복지 혜택과 법적 보호를 받는다. 혼인 부부와 달리 동거 부부는 상속 재산의 분할권리만 없다. 한국도 이제는 동거 부부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양성평등 문화가 정착돼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뽑인 스웨덴의 한 기업. 스톡홀름=장세정 기자
-워킹맘들이 안심하고 일과 가정(육아) 병행이 어려운 것도 결혼과 출산 기피의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 여성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아이를 안 낳는 거다. 제도·문화·관행까지 확 바뀌어야 한다. 가정에서 균형 잡힌 성 역할과 양성평등이 중요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장이다. 직장문화와 노동문화를 고쳐야 한다. 아프면 엄마가 먼저 달려가는 현상,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문화, 직장 중심의 일과표가 달라져야 한다. 하루 24시간을 3등분 하면 8시간은 수면, 8시간은 직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8시간은 개인 생활 또는 가족과의 시간이 돼야 한다. 스웨덴은 아이가 엄마의 미래와 직장생활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준다. 임신한 이후부터 낳고, 기르고, 교육하고, 대학 보내는 모든 과정에서 부모의 부담과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웨덴 복지를 ‘요람 전 태아에서부터 무덤까지’라고 표현한다."
-한국 젊은 세대에서 남녀 갈등도 위험 수위다.
"스웨덴은 양성평등 단계를 넘어 성이 구분의 대상이 되지 않은 지 오래됐다. 화장실에 남녀구분이 없고, 남녀구분이 없는 사우나도 많다. 수업시간에도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나누지 않는다. 남녀는 권리와 의무를 공유한다. 2018년부터 만 18세 이상 남녀는 똑같이 군대에 가도록 했다. 여성도 병역의무가 있고, 이를 당연시한다. 12개월 복무하는데 여성도 원하면 전투병이 된다. 스웨덴에서 남녀는 서로 사랑하고, 경쟁하고, 협업하는 사이가 됐다. 한국도 이제는 양성평등 기반을 닦아 남녀 격차를 줄이고 책임과 의무를 나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의 도서관. 남녀 학생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한다. 스톡홀름=장세정 기자
최 교수는 요즘 '온전한 국가'란 화두에 집중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온전한 국가는 법질서 속에 제도적 질서가 잘 잡혀 있고 이를 운영하는 사람도 신뢰할 수 있는 국가다. 온전한 국가라는 잣대로 최 교수는 스웨덴은 93점, 한국은 50점이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지금 한국은 장기적인 비전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 국가적 어젠다인지 합의를 못 본다"며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 내에 모든 것을 다 이루겠다고 계속 싸우니까 불협화음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왜 자꾸 과거 때문에 싸우나, 미래에 대해 할 고민이 너무 많다. 과거를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면 1:9나 2:8이든 3:7 정도로 나눠 미래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를 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교수. 경제성장과 일자리가 가능했기에 스웨덴이 최고의 복지 국가가 가능했다고 역설했다. 김상선 기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박규민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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