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 실패 요인-외형 확장에 집착하다 캐시카우 다 매각 그룹 분열시킨 '형제의 난' 자구책도 맹탕
2000년대 후반 재계 7위까지 올랐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 재계 60위권 밖 중견기업으로 밀려난다. 불과 10년여 사이에 그룹 위상이 크게 추락한 금호그룹 패착 요인 4가지를 살펴봤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승자의 저주’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통한의 패착’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02년 취임한 후 그룹 외형 확장에 집중했다. 2006년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2008년에는 대한통운을 4조1000억원에 인수하며 회사를 재계 서열 7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10조원이 넘는 인수금액은 금호그룹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특히 대우건설 인수가 사달의 계기가 됐다. 인수금액이 당시 시장 예상가보다 2조원 이상 높았던 데다 자산 규모 3조원이 되지 않던 금호산업이 6조원 이상의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상당한 무리수를 둔 때문이다.
대우건설 인수 당시 금호산업에서 근무했던 A관계자는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스퀘어빌딩도 매각하자 대우건설 직원 반발이 거셌다. 대우건설과 금호산업은 둘 다 사업 영역이 많이 겹치는 종합 건설사인데, 가뜩이나 두 건설사 직원들 간 앙금이 있으니 사업 시너지에 관한 논의는커녕 실질적 교류도 별로 없었다. 합병 움직임도 전혀 없어 거의 다른 회사나 마찬가지였다”고 회상했다.
금호그룹은 두 회사 인수를 위해 KDB산업은행 등 재무적 투자자를 통해 3조5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차입해야 했다.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 대우건설에서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상환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인수 직후인 2008년 뜻밖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계획이 틀어졌다. 건설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며 대우건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여기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풋백옵션’이 독이 됐다.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의 평균 주가가 3만4000원에 못 미치면 투자자들에게 이 주가를 기준으로 주식을 되사주기로 한 일종의 ‘보증계약’이었다.
폿백옵션 행사 금액만 4조2000억원에 달했고, 이를 감당 못한 금호산업은 결국 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3년 만에 헐값에 재매각해야 했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10년 동안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며 알짜 자산들을 잇따라 매각, 그룹의 경쟁력은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박삼구 전 회장은 왜 그렇게 무리하게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했을까. 물론 사세 확장에 욕심을 낸 때문이겠지만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박 전 회장의 강한 애착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 전 회장은 2002년 취임 후 “2010년 재계 5대 그룹에 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그룹 전체 매출은 6조8000억원대(금융 계열사 제외)로 재계 순위도 10위권 안이었다. 5위 안에 들려면 항공·고속 등 운수업과 석유화학·콘도 등 기존 사업 외에 신사업이 필요했다.
앞의 A관계자는 “박 전 회장은 본인이 직접 키우다시피한 아시아나항공에 애정이 많았다. 그러나 항공업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도저히 라이벌 기업인 대한항공을 이길 수 없었다. 이에 그룹의 외형을 키워서라도 한진그룹을 이겨보자는 심산 아니냐는 얘기가 당시 금호그룹 내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왔다”고 귀띔했다.
▷알짜 계열사 매각에 캐시카우 사라져
무리한 사업 확장의 후유증은 컸다. 박 전 회장이 재계 5대 그룹 진입 선언을 한 이후 금호그룹 역사는 그야말로 알짜 계열사 처분의 연속이었다. 박 전 회장은 금호타이어 중국 톈진 공장과 지분 50%를 매각하고 아시아나항공의 공항 서비스도 팔았다. 무리하게 인수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재매각했고 광화문 사옥,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금호생명, 금호산업, 금호렌트카도 잇따라 내놨다. 금호고속 지분 일부도 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자 아시아나항공이 그룹 전체 실적의 60%를 책임질 만큼 쏠림 현상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정작 아시아나항공이 어려워지자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이를 지원해줄 다른 계열사는 남아 있지 않았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망가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도 비행기를 대부분 매입이 아닌 리스로 조달해 금융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다. 항공업은 노선 쟁탈전인데, 노선을 늘리려면 비행기도 늘려야 하니 없는 자금에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당시 흑자를 많이 냈던 대한통운과 금호렌트카만이라도 지켜냈다면 캐시카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동성이 너무 부족해 알짜 계열사를 팔아치우니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형제의 난’부터 ‘미투’까지
오너 리스크 역시 금호아시아나그룹 발목을 잡았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는 특히 박삼구 전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간 ‘형제의 난’ 도화선이 됐다.
박삼구 전 회장은 취임 후 외형 확장에 힘을 쏟았지만 동생 박찬구 회장은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박삼구 전 회장이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후 둘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게 됐다. 65세가 되면 동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가풍도 박삼구 전 회장대에서 끊어졌다.
형제간 반목은 그룹 경영에 실질적인 타격을 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을 모두 팔아넘기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며 계열분리를 추진했다. 이에 박삼구 전 회장은 동생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고 자신도 명예회장으로 퇴진했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을 비롯한 항공·건설·운수 부문을,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등 석유화학 부문을 맡는 등 분리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 전까지는 금호그룹 계열사 중 자금 흐름이 어려운 곳이 있으면 금호석유화학도 나서서 지원해주는 등 서로 돕는 관행이 있었다. 하지만 형제의 난 이후 금호석유화학에서 자금 지원이 끊겼고 계열사 간 시너지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두 형제는 ‘금호’ 상표권을 놓고도 갈등을 빚었다.
금호산업에 상표권 사용료를 내던 금호석유화학이 2009년 공동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사용료 지급을 거부했고 이는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2013년 금호산업은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를 상대로 브랜드 사용료 미납분을 지불하라는 소송을 냈지만 2015년 1심에서 패소했다. 2018년 항소심에서 금호산업 항소는 기각됐고 금호산업은 이후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낙하산 인사 논란도 빚어졌다. 지난해 박삼구 전 회장의 딸 박세진 씨는 금호리조트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선임됐다. 당시 리조트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데다 수년간 전업주부로 활동해온 인물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 상무는 이화여대 소비자인간발달학과를 졸업하고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 도쿄를 거쳐 르꼬르동블루 런던을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동경관광전문학교 음료서비스학과와 일본 핫토리영양전문학교를 나온 뒤 일본 상지대 대학원에서 글로벌사회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일본 아나(ANA)호텔도쿄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요리·관광 관련 학교를 졸업하고 3년여간 실무를 경험했지만 리조트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임원 자리에 오른 것은 재벌가 자녀기에 누릴 수 있는 특혜라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이 일자 박 전 회장은 “딸이 오랫동안 일을 쉬었는데 이제는 사회생활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금호리조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겠다. 예쁘게 봐달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박삼구 전 회장은 여성 승무원과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를 통해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본사에 방문할 때마다 여성 승무원들을 껴안거나 손을 주무르는 등의 행동을 일삼았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원 전환을 앞둔 승무원이 회사 강요에 의해 박 전 회장과 팔짱을 끼고 노래를 부르는 이벤트에 동원됐다는 제보와 파트장, 본부장 등 관리자들이 박 전 회장이 양팔을 벌리면 달려가 안겨야 한다고 교육했다는 제보 등이 이어지며 논란을 빚었다.
▷사재출연·유상증자 없이 5천억 또 요구
‘박삼구 전 회장 경영권 포기’ ‘박 전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 전량을 담보로 제공’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매각’ ‘3년 내 정상화 안 되면 아시아나항공도 매각’ ‘수익성 낮은 노선 정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이 5000억원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하며 산업은행과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계획안의 골자다. 공을 넘겨받은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별다른 고민 없이 하루 만에 퇴짜를 놨다. “채권단이 추가 자금을 지원하더라도 시장 조달의 불확실성으로 향후 채권단의 추가 자금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거절 이유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금호그룹의 자구책에 ‘알맹이’가 없었기 때문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 전 회장과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현재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 지분을 각각 21%, 31.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지분 중 42.7%는 이미 산업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돌려막기’ 자구책이란 지적이 나온 이유다. 또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매각한다 해도 지분가치는 1조원이 채 안 돼 아시아나항공이 당장 올해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 1조3000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특히 두 저가항공 계열사는 아시아나항공과 ‘통매각’이 결정됐을 정도로 계열사 간 시너지가 높다는 점에서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도 매각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여기에 박 전 회장의 사재 출연 등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 있는 해법이 제시되지 않았고 유상증자 등 실질적인 재무 개선 대책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산은이 퇴짜를 놓은 이유였다. 애초부터 체계적인 자구책을 내놨더라면 아시아나항공 매각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5호 (2019.04.24~2019.04.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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