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내 마음은 왜 이럴까?] 무엇이 정신장애인의 치료를 막는가?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2019. 4.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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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효과가 오래가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은 장기 지속형 주사제 등이 널리 쓰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약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알록달록 예쁘게 만들어도, 설탕을 코팅해서 달콤하게 만들어도, 젤리처럼 쉽게 짜먹도록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은 원래 먹기 싫은 법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현대 사회에는 만성 질환을 앓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 등 만성 질환에 걸리면 아주 오랫동안 꾸준하게 약을 먹어야 합니다.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게다가 정신장애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실상 평생 먹어야 합니다. 살다 보면 끼니를 거를 때도 있는데, 약은 무한정 매일 꼬박꼬박 먹어야 한다니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약을 먹지 않는 환자들

몸이 아파서 약을 먹는 환자들은 그래도 좀 낫습니다. 당장 병들고 아프니 싫어도 약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병원에서 처방받는 대로 약을 먹지 않는 사람이 거의 3할에 달합니다. 통증이 느껴지는 병이라면 약을 잘 먹지만, 증상이 없는 병이라면 제법 심각한 수준이죠. 사실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이 악화되는 이유 중 상당수는 바로 약을 제대로 먹지 않는 것, 즉 약물 비순응입니다. 

그런데 정신장애를 앓는 환자는 이런 문제가 좀 더 심각합니다. 상당수의 환자는 병을 앓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증상이 여러 번 악화되면, 마지못해 인정하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 정신은 문제가 없어. 약 같은 것은 필요 없지’라고 믿고 싶습니다. 당연한 인간의 심리입니다. 

게다가 초기 치료로 증상이 좋아지면 이런 약물 비순응은 더 심각해집니다. 증상이 좋아졌으니 슬슬 약을 끊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정신장애는 약을 끊었다고 당장 나빠지고 약을 먹는다고 당장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며칠 약을 먹지 않아도 별 느낌이 없습니다. 게다가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는데, 약을 중단하니 부작용은 사라집니다. 마치 약을 먹을 때보다 더 가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병이 악화되었을 때는 약이 절실했지만, 이제 변심합니다. 사람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잠시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는 사회적 낙인이 심하기 때문에, 환자 자신도 자신이 장애를 앓는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약을 조금씩 줄이다가 끊습니다. 병원 방문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의사에게는 약을 잘 먹는다고 이야기하고, 몰래 약을 줄이거나 띄엄띄엄 먹습니다. 조금 컨디션이 나빠져도 약을 다시 챙겨 먹고 싶지 않습니다. 약을 안 먹었다고 의사에게 고백하기 미안하기 때문이죠. 점점 상황이 나빠집니다. 
 
부작용이 없는 약을 만들자

초기에 개발된 장기 지속형 주사제. 약을 매일 먹지 않아도 되었지만 부작용이 제법 있어서 널리 쓰이지는 못했다. webmd

1950년대 최초의 정신과 약물이 개발된 이후,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동안 만족스럽게 다루지 못했던 정신장애의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정신의학계는 열광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차도가 없어 마냥 입원만 하고 있던 환자들이 드디어 퇴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조현병의 치료 사례가 보고되면서 환자와 환자 가족, 그리고 정신과 의사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퇴원한 환자들이 다시 입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세상과 격리되어 지내다 퇴원을 하니 마땅한 직장을 얻을 수 없었고, 친구나 동료와 잘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대책이 수립되었죠. 그러나 사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퇴원한 환자들이 약을 끊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사들은 낙담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약을 왜 끊는 것인가?’ 

상당수의 정신장애는 약을 끊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됩니다. 물론 단기간 약을 쓰다가 점점 줄일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의 경우에는 약을 끊는 것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약을 끊어도 실익은 적고, 악화 가능성은 매우 높기 때문에 섣부른 중단은 금물입니다. ‘이제 약을 완전히 끊고, 병원에 다시 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은 정신과 의사에게 있어 대단히 기쁜 경험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평생 몇 번 경험하기 어려운 아주 예외적인 경험입니다. 

사실 초기 정신과 약물은 부작용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지고 있던 증상이 좋아지면, 약을 끊고 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침도 흘리고 몸도 뻣뻣해지고 손도 떨리는 부작용이 있었죠. 엄청난 규모의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부작용은 적고 효과는 좋은 약을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만에 효과는 우수하고 부작용은 없는 약이 나왔습니다. 2세대 항정신병 약물이라고 합니다. 정신의학계는 다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제는 환자들이 약을 끊지 않을 것 같았죠. 
 

오래 가는 약을 만들자

전보다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약을 먹지 않는 환자가 태반이었습니다. 의사들은 다시 낙담했습니다. 도대체 왜 효과는 좋고, 부작용은 별로 없는데 약을 먹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이라고 해도,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수치스러운 경험입니다. 뭔가 약을 먹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통제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느낌을 매일매일 받아야 합니다. 마치 뭔가 부족한 사람이거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가족이 약을 먹으라고 챙겨주면 괜스레 화가 벌컥 납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괜히 약을 끊어보고 싶습니다. 

의사들은 또 다른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매일매일 약을 먹는 불편함, 그리고 심리적인 저항을 줄여줄 수 있는 약을 만들자는 것이죠. 바로 ‘오래 가는 약’입니다. 사실 이런 약은 196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코코넛 기름이나 참기름에 약을 섞어서 근육 주사를 했습니다(물론 먹는 식용유에 그냥 섞은 것은 아닙니다). 천천히 흡수되니까 약효가 오래 갑니다. 한참 동안 먹지 않아도 되죠. 장기 지속형 주사제(LAIs)가 개발된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개발된 ‘오래 가는 약’은 너무 아팠습니다. 주사를 맞으면 근육통이 너무 심했죠. 피부나 근육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필요가 발명을 부르듯이 점점 좋은 약이 개발되었습니다. 약효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2주에 한 번 맞는 주사제나 개발되었습니다. 이제 한 달에 두 번만 주사를 맞으면 됩니다. 매일 약을 먹지 않아도 되죠. 

2주도 짧았습니다. 4주에 한 번만 맞는 약도 나왔습니다. 한 달에 한 번만 주사를 맞으면 약 같은 것은 잊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3개월에 한 번 맞는 주사제가 나왔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으면 됩니다. 이 정도라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 연구되고 있는 주사제 중에는 1년짜리 약도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만 주사를 맞으면 됩니다. 거의 예방 접종 수준입니다. 

무엇이 조현병 치료를 막는가?

인간의 마음은 아주 연약하다. 정신장애인의 온전한 치료를 위해서는 과도하게 낭만적인 견해도, 지나치게 경계하는 편견도 금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은 장기 지속형 주사제가 널리 쓰이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거의 30%의 환자가 장기 지속형 주사제를 처방받습니다. 적어도 10~20%는 넘습니다. 가끔 외래를 방문하여 간편하게 주사를 맞고 돌아갑니다. 재입원율이 낮아지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그러나 한국의 장기 지속형 주사제 처방률은 5%도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2% 수준입니다. 

처음에 장기 지속형 주사제가 도입되었을 때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험 처리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비싼 주사제를 전부 제 돈을 내고 처방을 받으려니 쉽지 않았죠. 일부 살림에 여유가 있는 환자만 ‘오래 가는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는데, 그 숫자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재발을 한 환자만 보험처리를 해준 적도 있습니다. 재발을 막으려고 쓰는 약인데, 재발해야만 쓸 수 있죠. 물론 지금은 보험 재정이 조금 나아지고, 정신과 환자에게 대한 보험 급여도 약간은 개선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쓰지 못하게 막아둔 약이라 그런지 몰라도, 처방률이 높은 편은 아닙니다. 조금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정신과 환자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현실 검증력을 상실하고 심각한 망상에 시달리는 환자는 전체 정신과 환자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마음의 상처과 가벼운 우울, 불안, 불면 등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분도 괜히 위축됩니다. 수백 종류가 넘는 정신과 장애가 각각 다른데도, 그냥 ‘정신장애’라는 이름으로 매도당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증상이 심한 환자도 적극적인 치료를 하면 좋아집니다. 스스로 판단력을 잃은 환자에게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꼭 필요한 약을 꺼리는 환자에게는 오래 가는 약이 되었든, 부작용이 적은 약이 되었든 처방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약도 있고, 좋은 병원도 있고, 좋은 의사도 있습니다. 한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 정상급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적지 않은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치료받지 못하게 막는 것일까요? 
 
에필로그 

정신장애인 관련 사건이 터지면 ‘모두 잡아 가두어라’는 극단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옵니다.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편견이 비등하면, 정작 정신과를 찾던 환자의 발길도 멈추게 됩니다. 안주머니에 넣어둔, 핸드백에 간직한 약을 들킬까 불안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흰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걱정합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습니다. 그 뿌리가 아주 깊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정신장애인’ 전체가 몽땅 미워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중증 환자에게 치료에 관한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을 주겠다는 낭만적인 태도도 곤란합니다. 마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인공호흡 장치의 조작 단추는 스스로 조절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환자를 보며 ‘아무리 물어봐도 자길 치료해달라고 말하지 않는걸?’라며 팔짱을 끼는 것입니다. 중증 난치성 환자를 위한 최고의 인권은 바로 그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parkhanso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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