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고령운전자에 졸업장을 주자" [日산지석]

김주동 기자 입력 2019.04.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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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서 87세 운전자에 의해 엄마·딸 사망
"고급국민" 비난 속 고령운전 사회이슈로
"운전시간제한·면허정년제" 의견 나와
고령자 이동 문제, 상실감 등 고려해야

[편집자주] 타산지석, 남의 산에 있는 돌이 내 옥을 다듬는 데 도움될 수 있다는 뜻. 고령화 등 문제를 앞서 겪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 경계할 점을 살펴봅니다.

/로이터=뉴스1


열흘의 긴 연휴에 들어간 일본, 그런데 일본 인터넷에서는 들뜬 분위기보다 '고급 국민'이라는 비아냥 섞인 표현이 더 눈에 띕니다. 고급 국민은 약 열흘 전 도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운전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19일 도쿄 이케부쿠로에서는 한 자동차가 가드레일에 부딪힌 뒤 시속 100㎞의 속도로 횡단보도 2개를 지나쳤습니다. 보행신호가 들어온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건너고 있었고, 31세 여성과 그의 3살 딸이 이 차로 인해 숨졌습니다. 다친 사람도 10명입니다. 운전자는 87세의 남성.

운전자 역시 부상으로 입원했습니다. 수사당국은 그가 입원한 데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이 남성이 과거 정부 행정기관인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공업기술원장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고급 국민'이어서 불구속됐다는 의심이 나온 겁니다.

24일에는 두 사망자들의 남편이자 아빠가 기자회견을 통해 참담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조금이라도 불안정한 사람은 운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해 일본 사회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초고령화 사회 일본의 여론은 이번 사고 이후 고령운전자 문제에 대한 더 큰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87세 운전자에 의한 교통 사망사고 현장에서 두 여성이 꽃을 남기며 모녀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트위터

◆"조작 잘못"… 고령운전자 사고비율 실제로 늘었다
지난해 5월 일본 가나카와현에서는 90세 여성이 적신호에서 교차로로 들어와 자전거를 타고 가던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2017년에는 병원에 주차하려던 76세 여성이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으면서 건물 1층으로 진입해 17명이 다쳤습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사망사고를 낸 75세 이상 운전자는 460명으로 전체 교통 사망사고의 14.8%를 차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75세 이상의 면허 인구당 교통 사망사고 건수는 75세 미만의 2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사고의 이유로는 브레이크와 액셀을 헷갈리는 등의 '조작 잘못'이 30%, 주변 확인을 제대로 못한 것이 2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08년에서 2017년 사이 연간 교통사고 건수는 비슷했으나 65세 이상 운전자의 사고는 163% 늘었습니다.

고령화 문제를 일찍 겪은 일본은 고령운전자 안전문제 대책도 오래전부터 시행했습니다. 지난 1998년부터는 65세 이상의 운전면허 자진반납제가 도입됐습니다. 지난해만 42만명이 스스로 면허를 내놓았는데, 이중 29만명은 75세 이상이었습니다. 2017년부터는 75세 이상 대상으로 면허갱신 기간을 줄여 3년마다 인지기능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70세 이상 운전자가 차량 앞뒤에 붙이도록 한 고령운전자 표시(왼쪽)와 고령자전용 주차공간 표시. /큰 사진=이미지투데이

◆자율주행차가 나온다면?
고령운전자를 배려하는 정책들도 있습니다. 70세 이상의 차량에는 고령자 스티커를 차량 앞뒤에 붙이게 하고, 다른 운전자가 함부로 끼어들면 벌금을 물릴 수 있게 했습니다. 고령자 전용 주차공간도 있습니다. 도로 표지판을 키우고 조명도 늘렸습니다.

이들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도 나왔습니다. 한 업체는 급브레이크 밟는 세기로 액셀을 밟으면 전기신호를 끊어 급가속이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었고, 고령운전자의 운전기록을 본인과 가족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를 하는 보험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케부쿠로 사고 이후 기존 대책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번 87세 운전자도 2년 전 면허갱신 때 인지검사를 통과했습니다. 그는 최근 걸을 때 지팡이를 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운전시간·차종을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와 '운전 정년제' 등입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23일 "고령운전자와 그 가족도 지키는 것"이라면서 운전면허의 정년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일본정부는 자율주행차를 하나의 대안으로 보고 연내 자율주행버스의 실증실험에 들어갑니다.

일본 오토박스 세븐의 '페달감시자'에 대한 설명. 가속 페달을 기준 이상으로 세게 밟으면 전기신호가 억제돼 급가속을 막는다. /사진=오토박스

◆"발을 묶지 마라"
고령운전자의 면허를 회수하는 데에는 그림자도 따릅니다. 이들에게 자가용이 유일한 교통수단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어려운 도심 외 지역은 특히 그렇습니다.

여러 지자체들은 고령자들을 상점, 병원, 온천으로 이어주는 택시와 비슷한 서비스를 하거나, 정해진 노선을 원하는 시간에 다니는 버스·택시의 특징을 섞은 교통수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동구역이 제한된 점, 수입 없는 노인에게는 부담될 수 있는 요금 등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당사자의 마음을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면허를 반납하는 사람들은 박탈감, 자신감 상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가족이 고령 부모에게 운전면허증 반납을 권유할 때 갈등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고령 드라이버' 책을 낸 릿쇼대학 쇼 마사후미 심리학교수는 "운전은 고령자에게 자립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가족 대신 지역 내 전문 간호사들이 고령운전자를 찾아 상담을 하는데 면허반납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는 고령운전자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쉽지만은 않은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도 사회 차원에서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적성검사 기간을 3년으로 줄였습니다. 경찰청은 연내 '중장기 고령자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낼 예정입니다.

지난 19일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남성이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고령운전자 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사진=트위터
김주동 기자 news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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