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입고, 라멘 먹고, ABC마트 신발 신고..

이성훈 기자 입력 2019. 4. 29. 03:09 수정 2019. 4. 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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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비상걸린 유통·외식업계
일본 기업들 치밀한 공습, 입고 먹는 것까지 한국 파고들다

지난 26일 서울 합정역 부근에서 홍익대 쪽으로 이어지는 마포구 독막로3길. 거리엔 일본어로 된 간판이 즐비하다. 초밥집부터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라면집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한글 간판은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다. 홍대가 가까워지자 '롯폰기 홍대'라는 3층 높이 대형 세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4층 건물 외벽엔 일본어 간판이 빼곡하다. 인근 분식점 주인은 "4~5년 전부터 포장마차·클럽이 있던 곳에 일본 음식점들이 줄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며 "가끔 이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했다. 홍대입구역 부근에 있는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매장. 봄 셔츠와 바람막이 점퍼에는 2만9900원, 3만9900원 가격표가 붙어 있다. 매장 안은 고객들로 붐볐다. 유니클로는 지난해(2017년 9월~2018년 8월 기준) 1조373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같은 패스트 패션(SPA) 브랜드인 이랜드월드의 '스파오'(3200억원)나 삼성물산의 '에잇세컨즈'(1860억원)를 압도한다.

일본이야? 한국이야? - 지난 26일 일본식 주점들이 입주한 서울 홍대 인근 건물. 외벽에 일본어 간판이 줄줄이 달려 있다. /오종찬 기자

최근 침체에 빠진 유통·외식 시장에서 일본 음식점·브랜드의 선전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일본 브랜드의 옷과 음식은 한국 소비생활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 국내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실용성을 강조하는 일본 스타일에 한국 소비자들이 강하게 끌리는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대응이 늦어지면, 국내 소비 시장에서 일본 열풍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용성 앞세운 일본 브랜드의 공세

일본 브랜드의 공세가 가장 두드러진 부문은 패션·생활용품이다. 국내에 2005년 진출한 유니클로는 지난해 전년보다 10.9% 성장한 1조3732억원으로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 패션 시장에서 단일 브랜드가 4년 연속 1조원 이상 매출을 기록한 것도 유니클로가 처음이다. 의류·생활용품 전문 일본 브랜드 '무인양품'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2014년 480억원이던 무인양품의 한국 매출액은 지난해 1378억원으로 4년 만에 약 3배로 커졌다. 이는 한국 패션 업체들의 성적과 대조된다. 국내 1위 패션 업체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7590억원으로 전년보다 0.6% 늘어나는데 그쳤다. LF한섬의 매출액 성장률도 각각 6.9%와 5.7%로 한 자리에 머물렀다.

간호섭 홍익대 교수(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는 "국내 브랜드뿐 아니라 자라(Zara)·H&M 등 유럽 패스트 패션 업체도 있지만, 기능성과 실용적 디자인에서 유니클로·무인양품 같은 일본 브랜드가 생활 스타일이 비슷한 한국 소비자와 훨씬 잘 맞는다"며 "한국인이 좋아하는 무인양품의 나무 식기·소품은 다른 외국 브랜드에선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박상훈

일부 유통업에서도 일본 업체의 실적은 눈에 띈다. 일본 신발 편집 매장 브랜드인 'ABC마트'는 지난해 5114억원 매출로 전년 대비 7.7% 성장했다. 반면 국내 1위 신발 편집 매장인 금강제화 '레스모아'의 지난해 매출액(1512억원)은 전년보다 3.5% 감소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ABC마트는 대량 구매를 통해 제품 가격을 낮추고,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색다른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선보인다"며 "이런 구매·마케팅 노하우가 국내 업체보다 앞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여행 늘면서 일본풍 유행

일본 스타일의 유행은 최근 일본 여행 급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754만명으로 2016년 509만명에서 2년 새 48% 늘었다. 20·30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저비용 항공(LCC)을 타고 일본 여행을 한 것이다. 이들은 현지에서 경험한 일본의 브랜드와 음식 등을 한국에서도 소비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일본 음식점 수는 2013년 7466곳에서 2017년 1만1714곳으로 57% 늘었다. 같은 기간 서양 음식점 증가율 19%의 3배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현지에서 정통 일본식 음식과 문화를 접한 젊은 세대들이 한국에서도 이를 찾는다"며 "그러다 보니 일본 음식점과 맥주, 패션 등이 국내에서도 훨씬 세분화·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와 불황을 우리보다 앞서 겪은 일본 업체들의 축적된 노하우가 한국에서 뒤늦게 빛을 본다는 분석도 있다. 롯데리테일연구소 최가영 팀장은 "유니클로 같은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불황기에 가성비 뛰어난 상품을 개발하면서 성장했다"며 "국내 업체들도 강점을 가진 온라인 유통 등을 통해 일본의 공세에 맞서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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