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별내의 '장수의자', 다른 동네에도 없는 '별난 의자'

이동준 2019. 4. 2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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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내동 국내 최초로 '장수의자' 설치/ 노인들에게 잠시 쉴 공간 목적으로 설치/ 지금은 시민 모두 이용하는 '별내동 시민의자'
장수의자를 이용하는 노인. 그는 “다리가 아플때 사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국내 최초로 ‘장수의자(이하 의자)’가 설치됐다. 노인들에게 잠시 쉴 공간을 제공할 목적으로 설치된 의자인데 지금은 시민 모두가 이용하는 ‘별내동 시민의자’가 됐다.
 
◆“빨리 설치하지 못해 고민”
 
의자는 남양주시 별내동 남양주경찰서 별내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유석종 소장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지난해 교통관리계장으로 재직한 유 소장은 지난 24일 세계일보와 만나 “무단횡단으로 소중한 인명 피해가 끊이지 않는 점을 고민하던 중 주민 의견을 참고해 의자를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양주시 별내동에 설치된 장수의자.
유 소장은 “‘어·보·이’ 사고만 줄여도 교통사고가 약 80%까지 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보·이’는 △어르신 △보행자 △이륜차(자전거·오토바이 등)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 소장은 “보행자 교통사고의 다수가 어·보·이에서 발생하고 특히 어르신들의 사고가 절반에 달한다”고 말했다.
 
실제 행정안전부의 ‘2017년 전국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한해 동한 보행사고 사망자 수는 1675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노인 사망자는 906명(54%)이나 된다. 특히 무단횡단으로 인한 노인 사망자가 335명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 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별내동에서만 어르신 두 분이 무단횡단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며 “의자 제작부터 설치까지 순탄치 않았지만 빨리 설치하지 못한 고민이 더 컸다”고 말했다.
 
별내파출소 유석종 소장은 노인이 많은 사는 지역과 사고 발생지 등을 직접 돌아다니며 위치를 선정했다. 
◆“제작부터 설치까지 순탄치 않았던 여정”
 
유 소장은 “아이디어와 설계, 설치 장소 등 구체적인 안이 준비되고, 설치 후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됐지만 도움받을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서에는 관련 예산이 없고, 지자체는 복잡하고 긴 절차를 요구하는 한편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으로 유 소장이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공장에서는 “매출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작을 거부해 의자 만들 곳을 백방으로 수소문해야 했다.
 
유 소장은 “한 업체에 특허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재료비만 주고 의자를 만들 수 있었다”며 “어르신들에게 ‘무단횡단하지 말라’는 말 대신 무단횡단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별내의 특별한 시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의자는 지난 1일 별내동 교차로 10곳에 설치됐다. 유 소장이 주민들에게 무단횡단하는 이유 등을 직접 물어보면서 노인이 많은 지역과 사고 발생지 등을 찾아다니며 설치 장소를 선정했다.
 
유 소장은 설치 후 기술적으로 어려운 수리 업무를 제외한 관리업무를 도맡았고, 주민들에게 사용 과정에서 불편한 점을 청취해 문제가 없도록 신경썼다. 장수의자 설치 소식이 알려진 뒤 부천시 노인복지과 등 다른 지자체나 기관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별내동을 방문하는 등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장수의자를 이용하는 어린이. 의자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별내동을 둘러보니 의자는 노인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사용하고 있었다.
 
한 어린이는 의자를 놀이기구 삼아 여기저기 옮겨 앉으며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또 주부가 무거운 짐을 의자에 올려두고 한숨 돌리기도 했다.
 
노인들은 능숙하게 사용했다. 한 노인은 “파출소 소장님이 설치한 의자”라며 “다리가 아플 때 앉아 쉴 수 있어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인은 “처음에는 앉아도 될까 망설였지만 ‘노인을 위해 설치했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편히 사용하고 있다”며 “부자 동네에도 없는 별내동 의자”라고 말했다.
 
유 소장은 “명칭은 장수의자지만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며 “다만 어르신이 계시면 양보는 필수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이 이용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며 웃었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우리 동네는 왜 설치 안 하나’라는 민원성 질문이 있을 정도”라며 “하나의 문화로 당연히 사용하는 의자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수의자를 통해 무단횡단 예방과 교통 안전 의식이 제고돼 무단횡단 관련 사고가 사라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남양주=글·사진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유석종 소장.
*남양주경찰서 별내파출소 유석종 소장.
유 소장은 2013년 구리경찰서에 근무할 당시 배관 등에 형광물질을 도포해 침입 범죄를 막는 예방책을 만들어 ‘에디슨 경찰관’으로 불렸다.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는 지금 전국 지자체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의 두 번째 발명품은 기사에서 소개된 장수의자다. 정년퇴임을 5년 앞둔 유 소장은 드론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 2월 드론 조정 자격을 취득한 그는 올가을쯤 드론 지도자 교관 자격증을 취득해 드론을 활용한 경찰업무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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