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칼럼] '조선일보 방 사장' 일가의 패륜, 한국 언론의 수치②

2019. 4. 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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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사장' 일가 비호 의혹을 벗으려면 검경 스스로 수상쩍은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초기 부실수사 경위도 제대로 밝혀야 한다.
언론이 그 영향력을 권력처럼 휘두르면 '언론권력'이 된다. 사주 일가의 행적뿐 아니라 최근 <조선일보> 지면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지난번 칼럼(4월9일치 ‘‘조선일보 방 사장’ 일가의 패륜, 한국 언론의 수치’)에 4천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방 사장 일가를 비판하고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주문들 속에 ‘늦었네요 이런 기사…더욱 분발하시기 바랍니다’(ohje****) 등 몇몇 댓글이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들이 언론계 내부 문제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 왔는지 따져 묻는 취지다. 최근 다시 불거진 두 여성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수사기관뿐 아니라 진실을 제때 파헤치지 못한 언론에도 똑같은 책임을 묻고 있다.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아내 고 이미란씨 친언니 집 앞에서 찍힌 2016년11월1일 시시티브이 영상. 뒷쪽이 방 사장. <PD수첩> 제공

‘조선일보 방용훈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이미란씨는 2016년 9월 차 안 블랙박스에 이 말을 남기고 한강에 몸을 던졌다. 조선일보사 대주주(지분 10.57%)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부인이었다. 이씨의 형부 김영수씨는 지난달 방송에 나와 방용훈 사장 일가를 비호해온 경찰의 행태를 폭로했다. 등산용 도끼를 든 채 대문 앞 물건을 발로 걷어차는 모습이 시시티브이에 고스란히 담겼는데도 방 사장을 무혐의 처리한 게 경찰이다. 검찰 역시 이씨 친정 식구들의 이의신청으로 ‘다시 수사하라’는 고검의 명령을 받고서야 약식기소로 처벌하는 시늉을 했다. 김씨 주장 가운데 주목할 대목은 방 사장 스스로 캐나다에서 소송 중이라고 밝힌 ‘50억원’의 정체다. 김씨는 이 돈과 연관된 상당히 많은 캐나다와 미국 계좌들의 운영 상황과 자금 흐름에 대해 “수상한 게 많다”며 수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방 사장 일가 비호 의혹을 벗으려면 이제라도 검경 스스로 수상쩍은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초기 무혐의 처리 경위도 제대로 밝혀야 한다.

10년 전 장자연씨는 죽음으로써 성착취 가해자들을 고발했는데 검경은 ‘조선일보 방 사장’과 ‘아들’을 처벌하기는커녕 누군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검찰은 엉뚱하게 진상규명을 요구한 국회의원 둘과 시민단체 인사 3명,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 모두 7명을 줄줄이 법정에 세웠다. 조선일보사 앞에서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한 시민단체 간부들에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까지 적용했다. 집시법 위반자 1명에게 벌금 30만원 선고된 것 빼고는 모두 무죄 또는 면책을 받았다. 검찰과거사위원회가 다음달 재조사 결과를 공개한다. 경찰 수사책임자가 느꼈다는 ‘심각한 위협’이 검찰 단계에선 없었을까. ‘방 사장’ ‘아들’의 실체와 함께 본말이 뒤집힌 적반하장 수사의 전말도 이제는 밝혀져야 한다.

언론이 그 영향력을 권력처럼 휘두르면 ‘언론권력’이 된다. 사주 일가의 행적뿐 아니라 최근 <조선일보> 지면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국회 패스트트랙 국면에 쓴 ‘…선거법 날치기, 군사정부도 이러진 않았다’(4월26일치)라는 사설과 관련 보도가 압권이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지명한 유정회나 정치 규제로 아예 출마를 봉쇄한 흑역사를 빼놓은 채 군사정권과 이번 사안을 단순 비교한 상상력이 우선 놀랍다. 폴리스라인 넘자마자 의원 체포하는 미국 경찰 사례까지 거론하며 국회에서의 가벼운 충돌에도 맹비난을 퍼붓더니 이번엔 태도를 180도 바꿨다. 회의 방해죄에 형사처벌까지 규정한 국회선진화법을 대놓고 위반하면서 폭력을 행사한 자유한국당은 제쳐놓고 다른 정당들만 비난하고 나섰다. 정당 지지율과 국회 의석 사이의 괴리를 줄이는 등 긍정효과는 외면한 채 한국당에만 불리한 것처럼 왜곡했다. <문화방송> ‘피디수첩’과 인터뷰에 나섰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전언처럼 조선일보가 ‘정권 창출에 나선 것’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다.

100년이 돼가는 이 언론사가 역사의 굽이마다 보여온 문제적 보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일제하 친일보도뿐 아니라 불과 30여년 전 사주는 신군부 반란세력의 꼭두각시 조직에 참여해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신문은 ‘나보다 국가’를 앞세운다며 ‘인간 전두환’을 미화했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조선일보가 ‘1980년 국민들의 민주화 기대가 커갈 때는 ‘3김’을 퇴진해야 할 세력, 신군부를 새 정치세력으로 의미부여하고 1987년 변화를 바라는 대중적 욕구가 폭발하던 시기엔 초점을 지역주의로 돌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담론을 조직화했다’(<만들어진 현실>)고 평했다. 군사정권과는 권언유착을 하다 민주개혁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원색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주요 사안마다 언론으로서의 권력 감시와 비판 수준을 넘어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과도한 비판을 가해왔다.

이런 언론이 ‘1등’을 내세우는 현실은 한국 언론의 수치다. 이씨에 이어 언론과 수사기관마저 ‘조선일보 방 사장 일가를 어떻게 이기겠냐’며 무릎 꿇는다면 국가적 수치가 되고 말 것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조선일보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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