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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태평양 전쟁 피해국 돌며 "사죄".. 한국은 숙제로 남아

도쿄/이하원 특파원 입력 2019. 04. 30. 03:09 수정 2019. 04. 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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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新일본 시대] [2] 아키히토는 무엇을 남겼나
재임 초기엔 존재감 크지않았지만, 지금은 국민통합 상징으로
종전 기념식 때마다 "과거 반성".. 전쟁책임 침묵한 아베와 달라

지난해 8월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일본의 종전(終戰) 기념식. 아베 신조 총리는 "내일을 사는 세대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주변국이 입은 피해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이어서 등장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달랐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을 한다"며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베는 2012년 재집권 후 6년째 전쟁 책임을 말하지 않았지만, 아키히토는 4년 연속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1989년 56세로 즉위한 그는 아베 내각을 비롯한 정치권이 '강대국 일본' 깃발하에 우측을 향해 내달릴 때,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주변 국가를 배려하는 역할을 해왔다. 국내적으로는 장애인 체육 후원, 재해 지역 위문을 통해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을 다독거려 왔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런 아키히토에 대해 "국민 통합의 생각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지진 피해 이재민 찾아 무릎 꿇은 일왕 -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016년 4월 일어난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일본 남부 구마모토현의 대피소를 찾아 무릎을 꿇은 채 이재민들에게 위로하는 말을 건네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아키히토는 2016년 스스로 생전(生前) 퇴위를 결정해 장남 나루히토(德仁)의 '레이와(令和)' 시대를 열어주었다. 군국주의 광기가 하늘로 치솟던 1933년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 말에는 미군의 공습을 피해 도치키현의 닛코(日光)를 비롯한 지방을 전전해야 했다. 일본 패전 후, 불과 수개월 만에 폐허가 돼 버린 도쿄로 돌아온 후 큰 충격을 받았다.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강한 다짐을 했다. 그는 1991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문을 시작으로 중국 필리핀 등 태평양 전쟁 피해국을 대부분 방문해 사죄의 뜻을 밝히며 평화를 강조했다. 그가 지난해 12월 "헤이세이(平成)가 전쟁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다"고 한 것은 진심 어린 발언이었다. 그가 헤이세이 시대의 유산으로 물려준 것은 '전쟁 없는 일본' '평화를 추구하는 일본'이라는 메시지다.

아버지 히로히토(裕仁)의 병사에 따라 즉위한 아키히토의 재임 초기 존재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런 아키히토가 지금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은 '무릎 꿇는 절대자'로 국민에게 다가가면서다.

아키히토는 즉위 후, 미치코(美智子) 왕비와 함께 크고 작은 재해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현장을 찾아가 무릎을 꿇은 채 피해자들과 눈을 맞추었다. 일본에서는 1946년 히로히토 일왕이 '인간선언'을 하며 신(神)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여전히 일반인은 쳐다보기 어려운 위치다. 그런 일왕이 무릎을 꿇은 채 위로하자 일본 국민이 감화되기 시작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북부 대지진, 2018년 서부 지역 수해…. 그가 고령에도 낮은 자세로 재해 지역을 찾아 피해자의 손을 잡고 위로하자 많은 국민이 마음을 열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 18일 미에현의 이세(伊勢)신궁을 마지막으로 참배하고 돌아올 때 기차가 출발하는데도 일어서 있었다. 흔들리는 기차 속에서도 배웅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선 채로 손을 흔들었다. 이런 겸손한 모습 때문에 일본 왕실에 대한 지지도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헤이세이(平成) 시대에 '천황제'는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재임 중 한국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일 월드컵 개최 확정으로 양국 관계가 정점에 있던 2001년 12월. 아키히토 일왕은 68세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놀라운 발언을 했다. "간무(桓武)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

그의 이 발언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당시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물밑에서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아키히토 일왕은 2017년에는 고구려를 의미하는 고마(高麗)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과의 관계에 공을 들여왔다. 사이판 방문때에는 한국인 위령탑에 헌화하고 참배했다. 도쿄 지하철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숨진 이수현씨 추모 영화 시사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키히토 일왕은 아마도 자신의 생전 마지막 임무로 방한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도쿄에서는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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