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기억의책] "기억의책 만드는 과정이 치유의 과정.. 자신과 가족과도 화해"

오유신 기자 2019. 4.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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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책을 3년간 만들어온 꿈틀 문혜영 수석편집자"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선물’로 권하고 싶어"

‘기억의책’ 원고작업을 하고 있는 문혜영 편집자./사진=꿈틀 제공

조선비즈는 지난 4월24일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 제작을 대행해주는 ‘조선비즈 기억의책’ 서비스를 시작했다. ‘조선비즈 기억의책'은 꿈틀이라는 자서전 제작대행 전문회사와 함께 한다. 꿈틀은 지난 3년간 200여권 이상의 기억의책을 제작해 왔다.

"한 사람의 삶의 기억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보통 두 달에서 여섯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억의책 주인공을 인터뷰하는 전문작가와 제작을 총괄하는 편집자 그리고 표지와 내지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는 그 시간을 기억의책 주인공과 함께 하며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꿈틀의 문혜영 수석편집자는 기억의책 제작과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문편집자에게 기억의책이 자신에게 준 의미와 지난 3년 동안의 경험 속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억의책 제작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3년 전, 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지인의 소개로 꿈틀의 박범준 편집장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참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생경하면서도 새로웠어요.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대부분의 40대는 노후를 걱정하고 먹고사는 이야기만 했거든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기억의책이 새로운 가족문화로 자리 잡길 꿈꾸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호구지책으로 회사에 들어간다기보다는 멋진 꿈에 동참하다는 기분으로 기억의책 일을 시작했어요.

어떤 일을 해왔나요?

처음에는 직접 어르신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기억의책 작가로 일을 시작했어요.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평상에 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어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정말 즐거웠거든요. 두 번의 인터뷰를 하면서 어르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면 같이 울고 웃게 됩니다. 어르신들은 누군가 당신들의 삶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것 자체로 무척 행복해하세요.

그렇게 1년 넘게 기억의책 작가로 경험을 쌓고 편집자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기억의책 편집자는 글을 편집하는 역할이 기본이지만, 저자, 의뢰인, 작가, 디자이너 사이에서 소통하고 조율하는 지휘자 같은 역할이에요.

작가가 인터뷰부터 최종 원고 완성할 때까지 전 과정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막힌 문제를 같이 풀어주고, 기억의책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 입니다.

기억의책을 만들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의뢰인이 있나요?

지난 겨울 어느 날 아침에 기억의책 의뢰인 한 분이 긴 문자를 보내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요. 그 문자를 보는 순간, 기억의책 표지에서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라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기억의책 작업을 하면 어쩔 수 없어 저자의 삶을 가까이에서 호흡하게 되고 가족처럼 친근감이 생기게 됩니다.

문혜영 편집자가 기억의책 의뢰인과 인터뷰 하는 장면. 이 인터뷰 육성파일은 기억의책과 함께 의뢰인에게 전달된다./사진=꿈틀 제공

처음 제작을 시작할 때 아버님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서둘러 책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기억의책이 완성되어 도착하고 3일 후에 아버님이 별세하셨다고 해요. 아버님의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인터뷰를 하고 돌아가시기 전에 책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또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기억의책을 통해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 의뢰인분은 아버님 기억의책에 가족서문으로 ‘글을 통해 나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아버지 삶의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적어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기억의책을 만드는 의미를 잘 알아주신 것 같아서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기억의책 작가나 편집자로 일하기 위해서 어떤 능력이나 태도가 필요한가요?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능력이 기본이겠죠. 그렇지만 기억의책을 만들기 위한 인터뷰와 글쓰기는 좀 특별합니다. 저희는 경청하는 인터뷰, 존중하는 글쓰기라고 부릅니다. 한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꿈틀 편집팀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보다 책을 잘 만드는 출판사는 많다. 훌륭한 저자를 모셔서 수십만 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보다 한 사람의 삶을 더 잘 경청하고 존중하는 출판사는 없다. 삶을 존중하는 것에 대해서는 꿈틀이 최고의 출판사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꿈틀이 가진 자부심과 기억의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기억의책을 만들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최근에 대구에 사시는 저자분께 전화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여든이 넘은 어르신인데 "나이가 들어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책 만들고 난 후에 살맛이 나" 하고 말씀하셨어요. 주인공을 찾아뵙고 인터뷰할 때 5년째 위암 투병 중이었데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셨어요.

전화기로 들리는 목소리도 힘이 넘치더라고요. 주인공은 주변에 지인이 많다며 다른 분들보다 인쇄를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몇 달 후에 다시 연락을 주셔서 주변에 나눠줄 것이 더 있다며 추가로 인쇄해 달라고 주문하시더군요.

이렇게 기억의책을 쓰고 활기를 찾으신 주인공분들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또 책을 의뢰한 자녀분들이 책을 받아보고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살아오신 줄 몰랐다"라는 말씀을 전해주실 때도 저희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기억의책 제작을 어떤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가요?

모든 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내가 성공한 사람도 아닌데 무슨 자서전이냐"며 손사래 칩니다. 그런 분들에게 특히 더 권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잘살아왔다고’ 토닥여 주며 기억의책이라는 멋진 선물을 해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의 삶에 경의를 표해달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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