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골마을의 절망..'트럼프 거짓말에 속았다'

방성훈 2019. 4. 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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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콘이 짓겠다던 美최대 제조단지..결국은 '신기루'
투자 약속한 폭스콘 회장..대만 총통 출마 위해 사표
"트럼프 '재선 염두' 무리한 추진이 불러온 참사"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오른쪽에서 두 번째) 폭스콘 회장이 지난해 6월 폭스콘 미국 위스콘신 공장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지 6개월이 됐을 때 미국 위스콘신주(州) 남동부의 조그만 마을 마운트 플레전트(Mount Pleasant) 주민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애플 납품업체인 대만 폭스콘이 해당 지역에 대규모 제조 공장 단지를 짓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공장이 들어선다던 마을은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로 변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폭스콘이 짓겠다던 美최대 제조단지…결국은 ‘신기루’

트럼프 대통령과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은 2017년 7월 백악관에서 회동한 뒤 “위스콘신에 대규모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제조 공장 단지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두 사람은 마운트 플레전트 지역에 100억달러(약 11조6000억원)를 투자해 ‘폭스콘 테크놀로지 그룹 캠퍼스’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100억달러는 한국의 4대강 예산(22조원)의 절반 규모다.

폭스콘의 투자로 1만3000개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됐다. 간접 고용유발 효과도 3만~5만명으로 추산됐다. 위스콘신 주정부는 “공장 부지는 약 200만㎡로 펜타곤(국방부 건물)의 3배에 이른다”며 미국내 최대 규모 제조단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정부는 또 과도한 혜택 논란에도 “한 세기에 한 번 있을 법한 기회”라며 세액공제 등 각종 보조금으로 45억달러(약 5조 25005억원)를 지원키로 했다. 위스콘신 납세자 1명당 1800달러를 보태주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투자 계획을 챙겼다. 그의 대표 공약인 일자리 늘리기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마운트 플레전트 주민들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며 철썩같이 믿었다. 공장부지로 마운트 플레전트가 선정됐을 때에도 기꺼이 터전을 양보했다. 불도저가 마을 내 75채의 집과 수백 에이커의 농경지를 밀었다.

허허벌판이 된 땅 위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궈 회장은 작년 6월 착공을 알리는 첫 삽을 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공장을 둔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는 첫 사례”라며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치켜세웠다. 폭스콘은 “1만300개의 일자리 창출 및 평균 임금 5만4000달러(약 6300만원)를 약속하며 화답했다.

이후 주정부 수많은 트럭과 노동자들이 오갈 것에 대비해 도로를 확장했다. 주민들은 인프라 구축과 토지 구입 등을 위해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총 3억5000만달러(약 4100억원)를 빌렸다. 이 때만 해도 위스콘신주는 폭스콘 일색이었다. 술집이나 식당 등 어디를 가도 대화 모두 폭스콘 얘기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 (사진=AFP)
◇폭스콘, 1월 모든 작업 중단…돌연 투자계획 전면 수정

그런데 지난 1월 모든 건설 작업이 중단됐다. 동시에 폭스콘이 투자계획을 전면 수정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폭스콘은 제조업 공장 대신 연구개발(R&D)에 초점을 맞춘 ‘테크놀로지 허브’를 짓겠다고 밝혔다.

궈 회장의 특별보좌관인 루이스 우는 “위스콘신 공장은 당초 예상보다 축소되거나 보류될 수 있다”면서 “인건비가 높은 미국에서 LCD 패널을 만들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 “글로벌 시장 환경이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했을 때와 달라져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테크놀로지 허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울러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폭스콘이 올해 초 가동하기로 했던 오 클레어의 테크놀로지 허브 건물은 짓다가 만 상태로 방치돼 있다.

오 클레어 지역의 두 번째 프로젝트 건물 역시 폭스콘이 구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비용을 줄이려는 폭스콘 때문에 협상만 하다가 만 상태라고 IT매체 더버지는 전했다. 신문은 “투자하기로 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폭스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폭스콘 회장 대만 총통 출마로 사표…일자리 창출 기대감↓

마운트 플레전트 주민들 등은 여전히 공장 건설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폭스콘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약속은 유효하다. 1만3000명 고용 계획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마저 꺾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17일 궈 회장이 대만 총통에 도전하겠다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당사자’가 경영 일선에서 떠난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기약할 수 없게 됐고 주정부와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폭스콘은 큰 공장을 짓겠다며 작은 마을을 갈아엎고 갈기갈기 찢어놨다. 그러고는 (공장 건설 계획에서) 발을 빼버렸다”며 “폭스콘만 빼고 (공장 건설을 위한) 모든 것이 있다”고 비판했다. 더버지는 “폭스콘이 위스콘신을 지옥과 같은 혼란으로 몰아넣었다”고 꼬집었다.

결국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염두에 두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탓에 이같은 사태가 초래됐다는 지적이다. 애당초 폭스콘이 미국에서 LCD 제조 단지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인건비 등 비용 측면에서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선거에서 주지사에 당선된 토니 에버스가 폭스콘과의 계약을 “형편없는 계약”이라고 비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편 폭스콘 투자 계획이 미궁으로 빠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공약도 힘을 잃을 전망이다. 내년 재선가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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