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약도 없다, 1000만마리 한국돼지 살려라

신수지 기자 2019. 5. 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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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아프리카 돼지 열병' 중국 등 아시아로 확산, 백신도 치료제도 없고 방법은 살처분뿐.. 한국에 번지면 양돈업계 초토화 우려

'4월 30일 16시, 세종시 전의면 축사 1동에서 의심축 발생.'

/그래픽=김현국

30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가상방역 현장 훈련이 열린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 제2주차장. 농장주로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의심된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세종시 동물위생시험소 가축방역관과 초동방역팀이 긴급 출동했다. 하얀 방역복을 착용한 이들은 먼저 고압 분무기로 차량과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소독했다. 농장 주변엔 출입 금지 표지판을 세우고 접근 금지 띠도 둘렀다. 농장 출입구는 한 곳 외에 전부 폐쇄됐고, 농장 주변엔 뿌연 생석회가 뿌려졌다. 농장으로 진입한 가축방역관은 돼지의 혈액과 조직, 장기를 채취해 삼중 포장 용기에 담았다.

정부가 ASF 방지를 위한 가상 방역 현장 훈련을 처음 실시했다. 지난달 9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데 이어 3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훈련까지 개최한 것이다. 발병하지도 않은 전염병에 대해 정부가 담화문을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ASF가 발병하면 양돈 산업이 초토화할 정도로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퍼지면 양돈 산업 초토화

ASF는 돼지에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급성의 경우 치사율이 100%에 달한다. 지난 2011년 국내에서 가축 300만마리를 몰살시킨 구제역 치사율이 가축 연령에 따라 5~50%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치명적이다. 구제역과 달리 현재까지 백신이나 치료제도 없다. 한번 발병하면 살처분 외엔 대처 방법이 없어 양돈업계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다만 사람을 비롯해 다른 동물은 감염되지 않으며, ASF에 감염된 돼지고기를 섭취해도 인체에는 무해하다.

백신이 없다는 점에선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유사하지만 바이러스 생존력은 ASF가 훨씬 강하다. 동물 사체 내 AI 바이러스는 실온에서 10일, 냉장에서 23일간 생존하는 반면 ASF 바이러스는 실온에서 18개월, 냉장 상태로는 6년이나 존속된다. ASF가 한 차례 휩쓸고 간 농장에는 바이러스가 재발할 위험이 AI나 구제역보다 훨씬 높다는 뜻이다. 재발 위험 때문에 현재 중국 내 ASF 발생 농가 80%가 돼지를 다시 키우는 것을 포기한 상태다.

지난해 민간 연구소인 정P&C연구소는 국내에 ASF가 유입될 경우 약 1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소는 ASF가 발생하면 예방적 살처분을 포함해 최소 돼지 100만마리가 살처분되고, 종식까지는 적어도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3월 현재 국내 돼지 사육 두수는 1120만 마리에 달한다. 다만 ASF 발생 농장은 20~30년이 지나도 돼지를 키울 수 없다는 풍문은 사실무근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ASF 역시 구제역과 AI처럼 요건을 갖추면 다시 돼지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중국 뒤덮은 ASF "자칫하면 뚫린다"

중국에서 시작된 ASF는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등으로 번지면서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ASF가 발병한 중국은 8개월 만에 31개 성·시 전체로 퍼졌고, 돼지 102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작년 12월, 4억2800만 마리였던 중국 내 돼지 수는 지난 3월 말 3억7500만 마리로 급감했다. 네덜란드 라보뱅크는 향후 ASF로 인해 중국 내 돼지 2억마리가 살처분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0일 오후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 주차장에서 열린 아프리카돼지열병 가상방역 훈련에서 방역관들이 진짜 돼지 대신 돼지 사진을 나르고 있다. /신현종 기자

ASF 발생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도 언제든 ASF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돼지 농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대부분 중국·몽골 등 ASF 발생국 출신이고, 이들이 축산 가공품을 직접 또는 우편으로 반입할 우려가 높다"고 했다. ASF 바이러스는 냉장 돈육에서 최소 15주, 훈제 처리로 만든 햄·소시지 등에선 3~6개월간 감염성이 유지된다. ASF에 감염된 축산 가공품이 국내에 들어오는 순간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9일 전북 군산항으로 입국한 중국인의 피자 토핑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법 축산물 반입 과태료 최대 100만원→1000만원

정부는 선박·항공기 등 국경 검역을 강화했다. ASF 발생국의 선박·항공기 운항 노선에 검역 탐지견을 투입하고, 휴대 수하물에 대한 엑스레이 검사를 확대했다. 인천공항에 배치되는 검역관 수는 하루 34명에서 48명으로 확대 배치했고, 세관과 합동으로 실시하는 일제 검사를 주 28편에서 38편으로 늘렸다. 특히 불법 축산물 반입에 따른 과태료도 현행 100만원에서 대폭 상향된다. 오는 6월부터 중국 등 ASF 발생국에서 불법으로 축산품을 들여오면 적발 횟수에 따라 500만~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ASF 전파원이 될 수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먹이는 돼지 농장에 대한 관리도 강화된다. 환경부는 가축 전염병 발병 우려로 농식품부 장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잔반 급여를 금지하는 폐기물관리법 시행 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 ASF가 발생하면 전국에 48시간 동안 일시이동중지(스탠드스틸)가 시행되며, 발생 농장과 반경 500m 내 돼지는 모두 살처분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ASF·African Swine Fever) 돼지에게 발생하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질병으로 치사율이 100%에 달한다. 사람이나 다른 동물은 감염되지 않는다. 구제역,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함께 제1종 법정 전염병으로 분류된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발생했지만 2007년 이후 동유럽과 러시아로 번졌고, 작년 8월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중국에서 발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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