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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정치, 술자리서 '욕'만 했는데..국민들이 달라졌다

남형도 기자 입력 2019. 05. 01. 06:00 수정 2019. 05. 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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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100만 청원에 담긴 여론, "더 두고 못 봐"..전문가 "의회·권력에 대한 일상적 감시 가능해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검경수사권과 공수처 설치법의 패스트트랙이 통과되자 회의장 앞에 누워 항의를 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국민들이 정치 관련 '의사(意思) 표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거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 술자리서 욕하는 정도에 그치거나, "선거 때 보자"라 으름장을 놨던 것과는 다소 다르다. 실시간으로 청와대 국민청원방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변화할 것을 촉구한다. 정치를 향한 시민 의식이 한 단계 나아갔단 평가를 받는 동시에, 정치 행태는 이를 뒤따라가지 못한단 문제 지적도 나온다.

이들 대다수가 정치 의견 개진에 나선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구태의연한 정치에 신물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 정치 관련 일을 하거나 특별히 관심이 많은 이들이 아닌, 평범한 경우가 많았다.

"정치만 유독 후진국"…국민들 뿔났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복도에서 정의당 이정미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누워서 길을 막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대기업 직장인 김경훈씨(가명·37)는 지난달 30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해산'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방에 난생 처음 참여했다. 김씨는 딱히 한 정당을 지지하진 않는, 평소 '중도' 성향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물국회'를 방불케 한 한국당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했다. 김씨는 "경제도, 문화도, 시민 의식도 모두 나아가는데, 유독 정치만 후진국에 가까운 것 같다"며 "어떻게 그리 똑같을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래서 그는 청와대 국민청원방에 들어가, 로그인을 하고, '서명'을 했다.

4살짜리 딸을 키우는 주부 조소영씨(가명·35)도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방을 찾았다. 조씨는 '국회의원을 국민이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에 서명했다. 평소 정치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싼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에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조씨는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인데, 민생 등 관련 법안엔 별로 관심도 없고, 밥그릇 싸움에만 열을 올리는 걸 보고 화가 났다"고 했다.

이 같은 지지에 힘입어 정치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방은 새 기록들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은 지난달 30일 오전 9시16분을 기점으로 국민 참여 100만명을 넘었다. 정치 관련 청원으로는 처음이며, 모든 청원을 통틀어도 역대 2번째다. 패스트트랙 저지를 하겠다며 물리적 충돌을 야기시키고, 지정 후에도 장외투쟁을 하겠다고 나선 한국당을 바라보는, 민심(民心)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이는 비단 한국당에 국한된 얘긴 아니다. 청원 참여도가 10배 가까이 차이나긴 하지만, '민주당 해산 청원'도 지난달 30일 기준 10만명을 넘어섰다. 정치를 우려하는 국민들 날선 눈초리엔, 성역(聖域)이 없단 걸 방증한 셈이다. 그만큼 정치인들도 긴장해야 하는 분위기가 됐다.

정치 욕만 하던 과거와 달라져, '소통 창구' 한몫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안의 접수를 강행하기 위해 동원된 쇠지렛대를 들어 보이고 있다./사진=뉴스1


이 같은 변화가 갑작스런 것이라기 보단, 평소 갖고 있던 불만들이 드러난 것이란 해석이 많다.

직장인 오상민씨(39)는 "청와대 국민청원방으로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이 드러나는 것이지, 갑자기 정치에 불만이 많아진 거라 보진 않는다"며 "옛날엔 술자리서 한심한 정치를 보며 욕만 하거나, '선거 때 두고보자'는 식으로 소극적이었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란 의견을 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 '청와대 국민청원방'이 신설된 것도 한몫했다. 기존엔 '조두순 신상 공개'나 '강서 PC방 살인사건 강력처벌' 등 사회 이슈 중심이던 국민청원방이, 정치까지 확장되는 모양새다. SNS나 기사 댓글 등으로 표출되던 민심을. 창구 하나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참여 기회도 대폭 늘려준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에겐 이 같은 정치 의견 참여가 더 친숙하다. 취업준비생 정창영씨(26)는 "로그인 한 번만 하면, 정치에 대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 간편하다"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어떻게 보면 보완하는 장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전문가 "국회, 민심 받아들이고 개혁 과제 집중해야"

/사진=인스타그램

전문가들은 '자유한국당 해산 100만 청원'이 실질적 효과는 없겠지만, 국민 여론을 담고 있는, 상징성이 있다고 했다.

하성수 정치개혁공동행동 공동 대표는 "국회가 무능하고 문제 해결을 제대로 못해 불신 있는 상황에서, 한국당이 국회법까지 위반하며 물리력으로 막는 모습이 분노를 일으킨 것 아닌가 싶다"며 "정부가 실제 정당 해산을 하긴 어렵고, 상징적인 것"이라고 했다. 국민들이, 정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역할하는 걸 원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국회가 민심을 읽고, 당면한 개혁 과제들과 민생 과제들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하 대표는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개혁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한국당은 무겁게 민심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다른 정당들도 개혁 진전을 잘 못 이뤄낸 측면에서, 언제든 민심 분노 대상이 될 수 있단 걸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계 전문가도 "한국당 해산 100만 청원은 꼭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국회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이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면 언제는 분노가 폭발할 수 있단 걸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며 "국회도 긴장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필요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성 상지대 외래 교수는 "예전에는 선거서 뽑히고 나면 4년은 당연히 여겼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며 "의회나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감시와 감독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직접 민주주의와 관련된 또 하나의 흐름이란 생각이 들고, 일종의 '디지털 촛불' 같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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