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색 짙은 일왕 즉위 의식, 헌법 위반 논란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1일 즉위 일성으로 "헌법에 따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일련의 즉위 의식을 둘러싸고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고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현행 일본 헌법이 정치와 종교를 나누는 정교분리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고가 지원되는 즉위 관련 행사들이 일본 전통종교인 신도(神道·신토) 색채를 띠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 첫날 첫 번째로 치른 것은 '검·곡옥 등 승계의 식'(剣璽等承継の儀)이라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청동검과 청동거울, 굽은 구슬(曲玉) 등 이른바 '삼종신기'(三種の神器)로 불리는 일본 왕가 상징물 중 일부를 새 일왕이 넘겨받는 종교적 상징성이 큰 의식이다.
일왕 거처인 고쿄(皇居)의 비밀장소에 보관되는 것으로 알려진 삼종신기에 대해 대다수 일본인은 일왕가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가 내려준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삼종신기가 신화에 나오는 그 물건인지 입증된 바는 없다.
의식 이름에 '등'(等)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도 삼종신기가 불완전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단서로 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이날 일왕 즉위식에 등장한 것은 검과 곡옥뿐이다.
또 일왕 거처에 보관된 검은 복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한 일본 매체는 삼종신기의 진짜 검은 나고야시의 아쓰타(熱田)신궁에, 거울은 미에(三重)현의 이세(伊勢)신궁에 보관돼 있다고 최근 보도했지만 이 보도의 진위도 확인하기 어렵다.
어쨌든 일왕 즉위 행사의 첫 의식으로 삼종신기를 내세우는 것은 일왕의 신성성(神聖性)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날도 '검·곡옥 등 승계 의식'이 국가행사로 규덴(宮殿) 내 접견실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리는 동안 규추산덴(宮中三殿)의 현소(賢所·가시코도코로)에서는 아마테라스 신에게 새 일왕 대리인 자격으로 궁내청 의전장이 즉위를 보고하는 신도 의식이 왕실행사로 열렸다.
새 일왕 즉위와 관련해 펼쳐지는 약 30개 의식 가운데 신도 색채가 짙은 왕실 행사는 올 11월 14∼15일 일왕 거처 내에서 진행되는 '대상제'(大嘗祭·다이조사이)를 포함해 23개에 이른다.
특히 새 일왕이 즉위한 뒤 처음으로 거행하는 추수 감사 의식인 신상제(新嘗祭)인 대상제는 막대한 국가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앞으로 지속적으로 위헌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비밀 의식이 주축인 이 행사를 치르는 데는 임시 신사(神社) 건립 등의 비용으로 약 27억엔(약 27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제는 비교적 조촐한 의식이었지만 일본의 근대화가 본격화한 메이지(明治) 일왕 때부터 대규모 행사로 커졌다.
그간 일본 왕실 행사 비용은 왕실 자체 예산으로 충당하는 것이 통상의 관례였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부는 헌법에 왕위 세습제가 정해져 있는 만큼 계승 행사는 공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무시하고 국비(궁정비) 충당 방침을 정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 예산이 38억5천만엔(약 400억원)이고, 국가행사 등으로 정해진 것까지 포함하면 총 계승 비용은 166억엔(약 1천700억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종교 관계자와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이 국비지출은 부당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법에 지출중지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당했다.
왕실 행사에 국비를 쓰는 것을 놓고 이번에 왕세제로 신분이 바뀐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후미히토(文仁) 왕자는 작년 11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후미히토 왕자는 당시 올해 대상제에 대해 "종교행사와 헌법의 관계를 봐야 한다"면서 왕실 예산인 내정비(內廷費)로 쓰는 게 맞는다는 의견을 밝혀 논란이 됐었다.
이 논란은 일단 수그러든 상태지만 올 11월 대상제가 가까워지면 재점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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