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뜻도 몰라 포털 검색..검찰 경악시킨 9급 수사관

김기정 입력 2019. 5. 2. 00:05 수정 2019. 5.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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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급 공채 고졸자 늘리려
형법·형사소송법 필수과목서 빼
"수사 기본 개념 모르면 시민 피해"
대검, 법무부에 과목 개편 건의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검찰 수사관은 최근 후배 수사관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9급 공채 출신인 후배 수사관이 ‘기소(형사사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긴다는 법률 용어)’란 단어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가 “왜 그걸 찾아보느냐”고 묻자 후배는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그랬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9급 공채 출신 수사관들이 법률 용어를 잘 몰라 업무에 혼선을 빚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검찰 내부에서 나온다. 최근 9급 신입 수사관 연수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 이들을 상대로 한 형사법 관련 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50점을 밑도는 사람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9급 공채 시험의 경우 2012년까진 필수과목으로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후 ‘고교 졸업자 채용을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시험 제도가 개편되며 두 과목이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됐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이후 9급 수사관 합격자 1438명 가운데 43.9%인 632명은 형법·형사소송법 대신 사회나 과학, 수학 등의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렀다. 반면 시험 제도 개선 취지와 달리 9급 검찰 수사관 채용자 대비 고졸 비율은 2.8%로 제도 시행 전과 큰 차이가 없다.

법조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인 수사 절차나 행태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다면 검찰에 근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인 김한규 변호사는 “수사관이 법적인 소양이 없을 경우 고소인이든 피고소인이든 모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시험 과목을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 내부에서도 9급 수사관 채용 시험에 형사법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검은 법무부와 인사혁신처에 9급 채용 시험과목 변경을 건의한 상태다.

검찰은 이와 함께 검찰 사무관(5급) 승진제도도 대폭 개편할 계획이다. 현재 검찰 사무관 승진을 위해선 시험을 보거나 뛰어난 성과를 거둬 ‘특승(특별승진)’하는 방법밖엔 없다. 특승의 경우 운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승진 대상인 6급 수사관 대부분은 시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사무관 승진을 위해선 1차 헌법·형소법(객관식), 2차 형법(객관식)·수사 실무(논술)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렇다 보니 승진을 앞둔 6급 수사관들이 업무 부담이 적은 비수사부서를 지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인사철이 되면 “제발 ‘한직’으로 보내달라”는 민원도 들어온다고 한다. 반면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수사관들은 시험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 승진에 누락되기도 한다. 필기시험 성적 위주로 승진을 시키다 보니 정작 실무 능력이나 중간관리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검찰은 모의 피의자를 직접 신문하거나, 피의자 신문조서 및 수사기획 보고서 등을 실제 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승진 시험 방법을 변경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승진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런 방안을 올해 확정해 2021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3일엔 법무부와 대검, 전국 6개 고검의 인사 담당자들이 모여 함께 논의하는 ‘실무 기획단’도 출범한다.

김기정·백희연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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