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여성 노숙인 '커뮤니티 케어'의 관건

입력 2019.05.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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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고ㅣ김진미 디딤센터 소장

겨울이 지나고 봄이 한창이다. 그러나 일찍이 자기 거처를 떠나 떠도는 노숙인들에게 밤 기온은 여전히 차다. 누구보다 거리의 여성들은 단순한 동사 위험만이 아닌, 다른 안전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보호가 필요하다.

위기에 놓인 여성 노숙인들이 보호를 요청하면, 응급 잠자리를 제공하는 시설이 바로 여성일시보호시설이다. 서울 지역 여성일시보호시설인 디딤센터는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노숙인 전용 시설이다. 지난해 11월부터 3월 중순까지 93명의 여성 노숙인이 여성일시보호시설을 찾았다. 하루 평균 23명이 잠자리를 이용하고, 한 달 정도 머물다 집이나 거주 시설로 찾아나갔다. 1년에 약 200명 이상이 일시보호시설을 다녀간다. 서울 지역 노숙인 실태조사에서 집계한 20명 안팎의 여성 숫자보다 훨씬 많다. 실제 실태조사 지역인 지하도나 공원 말고도 많은 여성이 불안정한 거처를 전전하다가 일시보호시설을 찾는다.

어떤 이는 고시원 월세가 밀려 쫓겨나고, 어떤 이는 찜질방에서 버티다 그 비용조차 낼 수 없어 노숙 위기에 놓이며, 어떤 이는 식당에서 살다 실직해 거리로 내몰린다. 가정폭력으로 집을 떠나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여성들, 친구나 지인 집에서 신세를 지다 눈치가 보여 나온 여성들, 병원에서 퇴원하게 됐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여성들이 일시보호시설로 향한다.

거리에서 잠을 청하거나 일시보호시설을 찾는 여성들 가운데 많은 이가 불안과 우울증, 양극성 장애, 조현병 등으로 오랜 세월 고통받으며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노숙을 거듭한다. 실제로 지난겨울 일시보호시설을 찾았던 93명 가운데 36명은 정신질환이 있어서 진료를 받았다. 일상생활과 심리, 정서적인 면을 살폈을 때 정신질환이 있다고 의심되거나 정신병 치료 경험이 있는 여성도 10명이 넘었다. 일시보호시설 이용 여성의 50% 정도는 정신질환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리에서 숙박하는 여성 노숙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겨울철 서울역에 마련한 응급구호방에서 보호받는 여성은 하루 평균 10명가량인데, 대다수가 정신 건강 문제가 있다. 안타깝게도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여성 노숙인의 상당수는 재발과 정신병원에서 겪었던 심리적 고통 등을 이기지 못하고 만성적 노숙의 굴레 속에 있다. 일시보호시설을 거쳐 여성 노숙인 재활시설이나 요양시설에 가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지역사회로 돌아가 독립할 준비를 하는 여성도 있다. 시설을 거친 뒤 재노숙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에서는 이미 1천 명 이상의 노숙 경험자가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가면서 노숙 생활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이 있으면 임대주택 입주도 쉽지 않고, 입주 뒤 거주 유지에도 큰 어려움이 있다. 재발 위험도 크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진료나 투약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이 있는 노숙 경험자는 평생을 병원이나 시설, 거리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 사회는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지역이나 자신이 살던 집에서 지역의 각종 전문적 돌봄을 받으며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커뮤니티 케어’ 구현을 전제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노숙인 역시 커뮤니티 케어에서 빠질 수 없는 대상이다.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여성 노숙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도움과 돌봄을 토대로 살아가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큰 난제가 ‘주거 문제’다. 서울시가 임대주택과 복지 서비스를 결합해 시범 운영하는 ‘지원주택’이 지역사회 돌봄 체계의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 지원주택은 독립적인 주거 공간인 임대주택을 제공하면서 정신 건강 때문에 생기는 취약함을 보완하기 위한 각종 사회서비스 연계형 사례관리로 이어진다. 말 그대로 주거와 사회서비스를 결합한 모델이다. 현재 서울시는 임대주택을 활용해 18호의 여성 노숙인 지원주택을 운영한다. 지난해 서울시 지원주택 조례를 제정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지원주택 100호를 추가 제공한다.

서울시는 조례 제정과 지원주택 사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아직 뾰족한 대안이 없다. 그만큼 중앙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 모쪼록 지원주택이 전국으로 확산돼 여성 노숙인이 거리와 병원과 시설을 오가는 고통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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