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읽고 미래를 고민..폴리텍 DNA 바꾼 직업훈련전도사

2019. 5. 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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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위원장 출신 이석행 폴리텍 이사장…
4차산업혁명시대에 맞게 체질개선 
“새로운 50년 향해 ‘아버지’같은 역할 하고 싶다”
 

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이 인천캠퍼스의 융합실습지원센터인 ‘러닝팩토리’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올해 전국에 러닝팩토리를 12곳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공공 직업교육기관 폴리텍의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석행(61)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과거 강성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그에게서 날카로운 ‘민주노총 위원장‘의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목표를 정하고 이루기 위해 도전 의지를 불태운다는 점에서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며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된 후 어릴 때 꿈이었던 체육선생이 되기 위해 인천대 체육학과에 2010학번으로 입학해 청년들과 같이 공부를 하면서 그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제 누구도 민주노총 시절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같다“고 자평했다.

“앞으로 폴리텍의 새로운 50년을 써나가는데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별 얘기가 다 나오지만 지금은 폴리텍을 시대 변화에 맞게 전문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만드는데 매진하고 싶다. 그래서 1분1초가 아깝다”

이어진 그의 말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인재를 양성하는 폴리텍에서 ‘직업훈련 전도사’를 자처한 그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그는 “4차산업혁명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것”이라며 “앞서가고 있는 독일이 제시한 ‘인더스트리4.0’을 보니 핵심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고, 기술과 기술이 융합되도록 하는 것”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계과, 전자과 등 4개 학과 교수들이 소통하고 힘을 합쳐 만들어낸 ‘5축 가공기 범용장비’를 스마트기술의 융합이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이석행 이사장은 하루 스케줄이 5~6개가 넘는 날이 많다. 노동운동을 할 때 몸에 밴 ‘직접 소통’ 방식 때문이다. 끊임없이 현장에 가서 교수들과 만나고 학장들과 토론한다. 취임 후 전국 36개 캠퍼스, 다솜고교, 인재원 총 38곳을 세 차례 이상씩 방문했을 정도다. 예산 확보부터 장학금 유치까지 그의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오로지 폴리텍’이다. 그의 건배사는 “폴리텍이 최고야”라고 한다. 스스로 ‘이 주사’로 불리기를 자청한 그다. 자신의 이사장 취임에 교수협의회가 완강하게 반대하자 교수협의회 교수들과 300대 1 밤샘 ‘끝장토론’을 벌이면서 “왜 반대하느냐, 같이 할수 있는 게 없겠느냐”며 설득해 의지를 관철시킨 일화는 폴리텍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주위의 만류에도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과 폴리텍 혁신 공청회도 가졌다. 처음에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시작됐지만 새벽 3시쯤 되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 찍고 ‘아침이슬’을 같이 부를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됐다.

학장들과 경영전략회의도 하고 비전을 발표하는 자리도 많이 갖는다. 동원훈련처럼 1박2일, 2박3일간 회의를 하니 원성도 들렸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얼마 전 정년을 앞둔 한 학장은 “이석행 이사장이 온 후 처음에는 많이 불편했지만 지금와서 보니 폴리텍 현장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것 같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잘 했을 것”이라고 호응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2017년 12월 취임 직후 폴리텍 캠퍼스가 지금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않게 가르치고 있어 놀랐다고 한다. 직업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시급성을 절감한 그는 폴리텍의 직업교육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날새는 줄 모르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폴리텍 학과 통폐합은 그가 터뜨린 직업교육 혁신의 신호탄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과 노동환경이 변화하면 직업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변화에 맞춰 필요한 학과는 생겨나고, 찾는 이가 없다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며 중복되거나 유사한 13개 학과 이전ㆍ통폐합을 추진했다. 교수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캠퍼스를 돌며 왜 폴리텍이 바뀌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설득했다.

그는 융ㆍ복합형 학습 시스템으로 전환을 위해 지역산업에 바탕을 둔 ‘러닝팩토리’(공동실습실) 12개를 연내 구축할 계획이다. 러닝팩토리는 전통적인 칸막이식 학과 운영에서 벗어나 융ㆍ복합 학습이 가능하도록 한 실습지원센터로 여러 학과 학생이 한 곳에 모여 전공분야 외 실습과정도 함께 참여함으로써 전반적인 제품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뿌리ㆍ기간산업 위주의 교육직종을 스마트공장, 핀테크, 바이오헬스, 미래차, 드론 등 8대 핵심 선도사업을 포함한 신기술 분야로 바꾸어 나가기로 하고 학과 개편과 신설을 통해 신산업ㆍ신기술분야 학과 비중을 2018년 7%에서 2022년 20%까지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그가 취임 당시 “폴리텍이 지금까지 해온 ‘추격형’ 직업교육제도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미래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선도형 직업능력개발 시스템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첫 현장기술자 출신 폴리텍 이사장이다. 노동운동가이기 이전에 전북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대동중공업에서 기술자로 일하면서 제안왕으로, 최고의 기술자로 승승장구했다. 당시 미사일 개발팀에서 일한 경험으로 항공 등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산업변화 추이에 대한 식견이 넓다. 그는 매번 “산업의 수요를 빠르게 파악해 맞춤형 기술인재를 공급하는 것이 폴리텍의 책무”라며 “전기차 항공정비 반도체 등의 산업분야에서 폴리텍이 선도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의 일환으로 안성캠퍼스를 반도체교육전문 캠퍼스로 만들어 선제적으로 직업교육을 업그레이드 할 계획이다. 그는 “장비를 정비하고 조정하는 기술자들은 ‘역설계’로 장비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그런 인력을 양성하면 우리나라도 반도체 장비시장진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정비(MRO)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손재주가 뛰어난 우리나라가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꼽는다. 이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에는 항공정비(MRO) 교육센터를 지어 항공정비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산업 수요가 있는 지방 공단 등에 기술센터를 건립하는 계획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그는 “한전의 나주 이전으로 관련기업 250개가 ‘에너지밸리’를 형성하고 있지만 기술인력 구하기가 어렵다”며 “신재생에너지, 전기학과 등 관련기술 교육을 하는 폴리텍 기술교육센터를 개설하기 위해 전남도와 업무협약을 맺고 센터 설립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명에 내년 상반기 중 제2융합기술교육원을 신설한다”며 “고학력 미취업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이테크과정을 개설해 2022년에는 2000명의 융합형 기술인재를 길러낼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기술자로서 폴리텍 혁신의 방향을 제대로 짚어낸 이 이사장의 임명은 결국 ‘맞춤형 인사’였던 셈이다.

이 이사장은 “폴리텍에 와서 구성원들에게 채찍만 가했는데도 잘 따라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지금껏 살아오면서 DNA로 체득한 것이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있다‘ 인데 그걸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보안사로 끌려가 고문도 받고 죽을 고비도 3번 넘겨봤지만 가장 힘든 것은 주변사람들이 해코지를 당하는 것이었다는 그는 수감생활 중 매일 원수진 사람 108명에게 108배,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108배, 자신을 도와주다 희생당한 사람에게 108배, 가족을 위해 9배 등 총 333배를 한 일화를 가만히 들려줬다. 이 이사장의 좌우명은 ‘긍정적으로 살자’다. 저서로는 ‘아주 평범한 노동자’와 ‘아름다운 동행’ 등 2권이 있다. 그는 사진찍는 걸 좋아한다. 아마추어 작가수준이라는 게 주변의 귀띔. 돋아나는 새싹 찍는 걸 좋아한단다. 인생의 책은 ‘체게바라 평전’이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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