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조류 죽음의 벽, 투명 유리창

2019. 5. 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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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국내에서만 하루 2만 마리 새들이 투명 유리창에 충돌해 생을 마감합니다.

*이 글은 ‘생태지평’에 실린 칼럼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이 문제를 방기해온 중요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십 년이 넘게 야생동물 구조와 치료, 재활과 관련된 일을 해오면서 누구보다도 더 깊숙이 이해했어야만 했던 사람입니다. 차라리 그때 논문 몇 편이라도 더 보았더라면, 통계치 몇 개라도 더 찾아보았더라면, 그 문제의 심각성을 하루라도 더 빨리 경고할 수 있었을 텐데 나태함에 또는 자만감에 그러지 못했었습니다. 고작 한다는 말이 유리창 닦지 말고 더럽게 놔두라는 말 같잖은 말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시작은 아주 작았습니다. 국립생태원에 온 후 바라본 건물은 반사유리로 가득 찼고, 우수 집수정에는 꺼병이와 개구리가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소소하게라도 여기저기서 새들의 죽음은 기록되었지만 무방비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그래도 생태원인데’라는 외침 아래, 자료를 찾고, 몇몇 건물에 저감 방안을 적용하였습니다. 이듬해에는 저감 방안과 더불어 자그마한 소개 스티커를 주요 통로에 붙였습니다. 그냥 본다면, 건물 외관 유리의 한 무늬에 불과할 것이었고, 누구도 이 해결방안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도 못할 것이기에 안내글을 내건 것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가정집, 카페, 심지어 시골 창고 작은 유리창에서도 새들은 죽습니다.

마침 이 안내글 스티커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환경부 공무원이 스티커를 본 후 사업추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우리나라 연간 피해 추정 수가 나오게 된 것이죠. 바로 하루 2만 마리입니다.

이 수에 대해 많은 분은 선뜻 동감하기 어려울 겁니다. 탐조문화가 널리 퍼진 것도 아니고, 새를 이해하는 사람 수도 무척이나 적지요. 물론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새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매년 실시하는 겨울 철새 동시모니터링의 수만 봐도 연간 150만 마리 미만의 기록은 오히려 이러한 해석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텃새나 여름 철새, 그리고 겨울 철새 중 산새류에 대해서는 양적 추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습니다.

도로 방음벽은 야생조류들의 무덤입니다.

미국에서 연간 3.5억~9.9억 마리가, 캐나다에서는 2천5백만 마리 가까이 희생된다고 합니다만, 무척이나 좁은 한국에서 연간 8백만 마리가 가당키나 할까요? 하지만 좀 더 깊게 바라보면 달라집니다. 미국에는 약 1억3천8백만동의 건물이 있고, 캐나다 인구와 건물 수는 약 3천6백만 명에, 1천만 동, 우리나라는 5천1백만 명에, 712만 동의 건물이 있습니다.

국토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리창의 면적과 수는 인구와 건물 수와 비례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구조센터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가정집, 카페, 심지어 시골 창고 작은 유리창에서도 새들은 죽습니다.

물론 모든 건물에서 사고가 일정하게 나는 것은 아니죠. 많은 죽는 건물이 있고, 아예 안 죽는 건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 모이통이 있는 시골집과 새 모이통이 없는 도시 건물 중 어디가 많은 희생을 보일까요? 건물당 희생률로 보자면 당연히 시골집입니다. 하지만 전체 건축물 수를 놓고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도시 건축물이 많은 희생을 나타냅니다.

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 흔적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투명방음벽이라는 또 하나의 함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개발이라는 기치를 앞세운 시절, 도로 인근 거주민에 대한 배려 없이 무차별적으로 개설되던 도로는 거주환경이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나고 폐쇄형 방음벽으로, 다시 경관을 고려하는 투명형 방음벽으로 진화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환경을 돌보지 않은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쉴 새 없이 깔리고 있는 투명방음벽을 볼 수 현실에 다다르고 말았습니다. 정확한 통계추정도 불가능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고 지역마다 생기는 혁신도시는 거대한 방음벽을 거의, 항상 동반하고 있습니다.

역마다 생기는 혁신도시는 거대한 방음벽을 거의, 항상 동반하고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인공조명 문제입니다. 조류 투명창 충돌 문제에서 항상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인공조명입니다. 특히 광공해는 이주성 조류, 즉 철새나 도요새와 같은 나그네새에게 치명적 문제를 낳습니다.

참새나 박새류와 같이 충돌사고로 많이 폐사하는 조류는 대부분 대낮에 활발히 활동하며 다양한 색깔과 밝은 빛을 감지할 수 있는 시각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류들은 주로 밤에도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지만 야간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요. 그 대신 지구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 자기장을 감지하여 날아가는데, 눈의 망막에 있는 감각 인지 조직체를 통해 어두운 파란색 자연광을 인지해야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답니다.

많은 인공조명이 내뿜는 붉은색 파장은 이러한 조류 자기장 인지 활동을 방해합니다. 독일과 러시아에서 이뤄진 연구를 살펴보면 이러한 인공조명 사이를 날아가는 새들은 자신의 비행경로를 최소 몇 도에서 많게는 원을 한 바퀴 그리면서 바꾼다고 합니다. 특히 구름이나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고공 야간비행이 어렵기에 지상부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데 이때 도심지 불빛에 영향받으며 많은 새가 건물에 충돌하게 됩니다.

도로 방음벽에 부딪혀 죽음에 이른 새들

어쨌거나 이제 고작 한 삽이 떠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멉니다.

도처에 깔린 투명방음벽과 같은 사회적 간접시설의 경우에는 국가의 의지가 직접 작용할 수 있지만, 전체 희생량은 분명히 건축물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만 건축물 통계상 국립/공공건물의 비율은 고작 2.7%에 그쳐, 사유건물에 대한 해결방안이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존을 위한 사회문화적 흐름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과 개발이 상충하지 않는 공존의 개발방식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녹색 건축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요 개념은 건물의 필수 사용에너지 효율 향상과 건물 유발 오염원의 최소화에만 맞춰진 것이라 지역 생물과의 공존의 여지는 부족해 보입니다.

야생생물과의 공존이 가능해지는 건축이야말로 명실상부한 녹색 건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동물을 모아(비오톱 및 주변 식생 조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죽이는(예방방안이 없으면 충돌사고는 지속함)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빌딩으로 가득 찬 서울 강남거리가 혁신도시에 자리 잡은 빌딩들보다 더 적은 수의 새를 죽인다는 것은 아이러니할 수도 있지만, 사실입니다.

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 흔적

몇 년 전 우리의 기억을 울렸던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쌉쌀달콤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개론에 철학이 녹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건축학과 정규 교과과정에 조류 충돌 자체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접근 방법에 관해 소개가 필수적으로 요구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젊은 건축가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비용절감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시장수요가 창출되어야만 산업계에서는 보다 많은 연구와 투자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라, 최소라는 점에서 필요한 일일 겁니다.

김영준 수의사(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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