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축구 울고갈 시간끌기..재판장도 '법잘알'들에게 당황했다

2019. 5. 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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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사법부
③ 판사들 법지식 활용 백태
법지식 무장한 피고인 판사들
수사관행, 형사소송법 등 따져

재판연구관 출신 유해용 전 판사
"진술조서 증거 채택은 위헌" 주장
공소장 작성관행 옹호했던 양승태
피고인 돼 "공소 기각 판결해달라"

"피고인 권리 행사? 재판 지연 꼼수"
일반인은 재판부에 맞서기 어려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11일 오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의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위헌법률 심판 제청…, 형사소송법 312조, 200조 맞죠?”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이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하자 재판부가 재차 확인했다. 유 전 연구관은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이었던 김영재 원장의 특허소송 관련 자료를 청와대로 누설하고 2017년 초 대법원을 떠나면서 재판연구관 보고서와 같은 내부기밀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네, 200조는 검사의 출석요구권에 관한 겁니다. 검찰 조사에서 피의자 신문 횟수나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잉이고 위헌입니다. 312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 조서로 재판하는 나라는 선진국 어디에도 없습니다. 2005년 헌법재판소에서 한번 다퉜는데 그때 5대4로 합헌 나왔습니다. 헌재는 정치적 판단을 하기 때문에 헌재 재판관 구성이 바뀌면 충분히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유해용 전 연구관 쪽 변호인)”

유 전 연구관 쪽이 꺼내든 위헌법률 심판 제청은 재판 중인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아닌지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법원이 소송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들이거나 직권으로 해당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판단해달라고 헌재에 제청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헌재 판단이 날 때까지 재판은 중단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형사소송법 조항은 두 가지였다. 검사가 필요할 때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제200조(피의자의 출석요구),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검찰 조서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작성됐다면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제312조(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 등)이다. 검찰 수사 과정은 물론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진술조서가 증거로 활용되는 재판 과정까지, 유 전 연구관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형사소송법 세미나도 아니고…”

법정에 피고인으로, 증인으로 선 전·현직 판사들은 법률 지식을 ‘깨알같이’ 활용하고 있다. 주요 재판의 경우 법정에 출석하는 증인이나 피고인의 모습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포착되곤 한다. 재판정으로 향하는 법원의 복도는 판사가 이동하는 길, 구속된 피고인이 이동하는 길, 일반인이 이동하는 길로 나뉘어져 있다. 통상 재판에 출석하는 증인은 일반인의 길을 통해 법정에 들어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취재진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맞닥뜨린다.

하지만, 지난달 2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의 첫 번째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언론에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이날 정 부장판사는 ‘증인 지원 절차’ 신청서를 제출하고, 피고인이 법정에 드나드는 통로를 이용해 재판에 출석했다. 정 부장판사뿐 아니라,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현직 판사들은 피고인이 드나드는 통로를 이용하면서 언론과 접촉할 여지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으로 증인으로 소환돼, 방청석에서 대기하다 증인석으로 들어선 두 명의 외교부 사무관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재판부도 알고, 검찰도 아는 법률 지식을 다시 한 번 재확인시키는 피고인도 있다. 임 전 차장은 지난달 2일 정 부장판사의 증인신문을 앞두고 재판부에 증인신문 원칙(형사소송규칙 74조)을 당부했다. “검사는 자기가 바라는 답을 유도해선 안 되고, 재판장은 이를 제지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다만 첫 재판부터 마이크를 잡고 직접 ‘셀프 변론’에 나섰던 임 전 차장은 최근 들어 발언을 줄이는 추세다.

이는 법대에 앉아 수십년간 재판하던 법률 전문가들이 피고인이 돼 거꾸로 재판을 받다보니 빚어지는 이례적 풍경이다. 이들은 유 전 연구관처럼 피고인의 유·무죄를 논하기에 앞서, 검찰 수사나 재판의 근간이 되는 형사소송법 이슈부터 하나하나 따지기도 한다.

유 전 연구관이 문제를 제기한 형사소송법 조항(제312조1항)은 오랜 논쟁거리였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작성된 신문조서는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지만, 검찰 수사단계에서 작성한 신문조서는 당사자가 부인한다 해도 믿을 수 있는 상태에서 진술이 이뤄졌다면 법원이 증거능력을 인정해왔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우월적 지위’를 상직적으로 보여주는 이 조항은 2005년 헌재 판단 대상이 된 적이 있고, 지난달 29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패스트트랙에 올린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도 그 개선 방안이 포함됐다. 유 전 연구관은 이 조항의 위헌 여부를 자신의 재판에서 따져보자고 주장했다.

유 전 연구관의 문제 제기에 검찰은 거세게 반발했다. “공판 진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공판준비기일이 형사소송 제도 개선을 논하는 형사법 세미나도 아니고…. 피고인의 죄책을 물을 수 있도록 공판 진행에 적극 협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4월10일). 증거에 대한 의견을 묻던 재판부도 난색을 표했다. “이런 힘든 결정을 재판부에 맡기고 변호인들은 좋겠다(웃음)”, “선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최대한 공부해서 맞는 답을 찾겠다.”(4월24일). 법정 공방을 전해들은 한 판사의 관전평은 이렇다. “수석재판연구관은 법원에서 누가 봐도 법리에 밝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다. 판사로서 오랜 기간 재판할 때는 공개적으로 한 번도 문제삼지 않다가 피고인이 되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모순이다. 피고인으로서 권리 행사라지만, 재판을 지연하려는 꼼수로 보인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해 9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압수수색이 끝난 뒤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

양승태의 ‘공소장 일본주의’ 두 입장

특히 ‘공소장 일본주의’는 사법농단 재판에서 ‘디폴트값(기본설정)’이나 다름 없다. 3월25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쪽 주장은 예견된 것이었다.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위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앞서 2월26일 열린 보석심문에서 “검찰이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13분간 작심 비판한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사실과 직접으로 관련이 없음에도 범죄로 인한 결과나 영향 등이 장황하게 기재돼 법관에 부정적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게 한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판사에게 범죄사실만 적은 공소장을 제출하고, 유죄를 예단하게 하는 서류를 내거나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형사소송규칙 제118조 제2항). 재판부는 공소 사실을 명확히 해달라고 검찰에 요구했고, 지난달 29일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뿐 아니라, 임종헌 전 차장, 유해용 전 연구관도 공소장 일본주의를 주장했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도 언급됐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형사 재판에 선 피고인이 자주 꺼내드는 무기다. 문제는 양 전 대법원장이 과거 공소장 일본주의에 관해 180도 다른 판단을 내놓은 적이 있다는 점이다.

2009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문국현 당시 창조한국당 후보의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는 문 후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다수의견에 보충의견을 덧대었다. “범죄의 동기나 경위, 범의와 공모 관계, 범행의 배경이 되는 정황 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구체적인 범죄 행위를 특정하고 형사책임 유무와 범위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요소다.” 10여년이 흐른 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정에서 피고인으로 서자 완전히 태도를 바꿔 공소장 일본주의를 주장하며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기 앞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의 반박은 이렇다. “6년 동안 지휘체계와 계통에 따라 은밀하게, 조직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범행이 이뤄졌다. 범행 동기나 배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도 이런 전후설명은 필요하다.”

공소장 내용을 문제 삼는 사이, 공판준비기일은 다섯 차례를 채울 참이다. 기소 시점으로부터 최대 구속 기간(6개월)의 절반 가까이 지났다. 본격 재판에 들어가더라도 구속 기간 내 신속하게 결론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쪽 증거에 대거 부동의하면서 검찰이 211명의 증인을 신청하게 된 탓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많은 수의 증인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출석하면서 법원에 피해를 끼쳐 송구하다고 했음에도 전·현직 판사들을 다 법정에 불러내겠다는 건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상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중 26명의 증인을 채택했다.

“피고인 돼보니 알겠다?”

“참 부끄럽고 어리석게도 몸소 피의자, 피고인이 되어보고 나서야 헌법과 형법,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적법절차, 무죄추정, 증거재판주의, 피의사실 공표 처벌 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됐습니다. (중략) 어떤 사건이든, 어떤 상황이든, 진영 논리를 떠나 증거와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선언해주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고, 우리 헌법이 법관의 신분과 독립을 철저히 보장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유해용 전 연구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이 적었다.

피의자 혹은 피고인이 된 판사들은 검찰 수사과정부터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난해 10월15일 오전 9시30분 검찰에 출석한 임종헌 전 차장은 다음날 새벽 5시 귀가했다. ‘밤샘조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밤샘수사, 논스톱 재판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올려 “잠을 재우지 않고 밤 새워 묻고 또 묻는 것은 ‘네가 네 죄를 알렸다’라고 고문하는 것과 진배 없다“고 비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 서울중앙지검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패싱’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언론인클럽은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열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행정처 간부들이 과거 사법부를 그렇게 이끌어 왔다. 지속적인 비판을 잠재우고 법원을 거꾸로 운영해왔던 이들이 다시 원칙을 언급하니까 아이러니한 것이다. ‘왜 하필 지금인가?’ 라는 물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문제제기가 피고인의 권리 신장으로 이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이례적’ 피고인의 ‘이례적’ 주장임은 명확하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일반 사건에선 변호인이 재판부에 그렇게 대등하게 대항하기 어렵다. 재판에서 혹여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기 때문에 재판부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피고인의 신분이 이례적이고, 변호인도 재판부와 맞대응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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