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이 국제질병코드로 분류되면.."게임 즐긴다고 질병기록 남겨야 하나"

안승진 입력 2019. 5. 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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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대위' 위정현 교수 인터뷰
국제보건기구(WHO)가 오는 20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11차 국제질병분류코드(ICD-11)에 게임 중독을 등재하기로 하면서 국내 게임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게임이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분류되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게임중독에 대한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게임학회를 비롯한 영화, 만화, 캐릭터 단체, 게임학과 등 관련 기관들은 지난달 29일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WHO에 질병코드 반대의사를 전달했다. 공대위를 주도한 위정현 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지난 2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등재하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클 것”이라며 “게임이 중독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을 무조건 환자로 몰아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반발했다.
◆ 게임중독이 질병코드로 등록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WHO는 ‘게임 과몰입 중독’에 대해 “게임이 개인, 가족, 사회, 직업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게임 빈도를 본인이 통제하지 못하거나 다른 생활보다 게임이 우선시 되는 것 등을 게임 과몰입 중독으로 본다. 위 회장은 “WHO 기준을 보면 과거 논의된 인터넷 중독기준과 비슷하다”며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아 동일한 환자라도 의사마다 게임중독자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에 따라 게임중독자로 판별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한때 게임을 과하게 했다는 이유로 얻은 질병코드는 진료기록에 남아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회장은 “게임중독은 사회경제적 구조와 긴밀하게 연관이 있다”며 “부모가 맞벌이하고 학원 갈 돈이 없는 학생들이 주로 게임에 깊이 빠지곤 하는데 그 이유로 중독자로 분류할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건국대 산학협력단 정의준 교수가 2014년부터 5년간 한국의 10대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게임 과몰입의 원인에 대해 연구한 결과 “청소년 게임 과몰입은 게임 그 자체가 가진 중독성보다 부모의 양육 태도, 학업 스트레스, 교사와 또래 지지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위 회장은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들이 게임이나  스포츠, 아이돌 등 특정 장르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며 “현재는 청소년들이 게임보다 유튜브에 빠지고 있는데 유튜브도 중독으로 볼 건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게임 중독 규제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청소년들이 학습하는 기계처럼 살아가는 시대에서 왜 게임을 탈출구로 삼게됐는지부터 고민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만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이우주 기자
◆ WHO 게임중독 질병코드…다른나라보다 ‘한국’에 영향 클 것
 
게임중독이 주요한 이슈로 다뤄지는 곳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주로 아시아 국가다. 중국은 이미 국내법에 따라 게임에 대한 규제를 강하게 하고 있고, 일본은 내부적으로 게임 산업을 건전하게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반면 한국은 한쪽에선 게임을 주요 산업으로 보지만 다른 쪽에선 중독의 원인으로 보고 규제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15년 WHO의 서울 회의에서는 한국중독학회가 게임중독에 대한 질병코드 도입을 제시하기도 했다.
 
위 회장은 “셧다운제와 게임을 포함한 ‘4대 중독법’ 발의 등 한국은 (게임의 부정적인 인식 확산에) 이미 전과가 있다”며 “이번 WHO의 논의에도 우리나라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당시 “WHO가 최종적으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확정하면 이를 바로 적용할 것”이라고 말해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에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WHO가 개정결과를 각국 보건당국에 권고하는 2022년이 되면 국내 의료계에 게임중독 질병코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내 게임 산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게임이 중독을 일으키는 사행산업으로 분류되면 게임업계가 중독예방과 치료부담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지금도 버거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더 낮아질 거란 관측도 제기된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게임 과몰입 정책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이라는 분석 보고서에서 2023년 국내 게임중독 질병코드가 도입된다면 6조3454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위 회장은 “전체적으로 국내게임 산업이 하락기에 접어들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게임 산업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됐지만 국내 게임사들은 해외기업에 밀리며 이미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 국내서 일고 있는 ‘WHO 게임중독 질병코드분류’ 반대움직임
 
공대위는 WHO 총회가 열리는 오는 20일 정책토론회를 열고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집단행동에 나선다. 위 회장은 “게임의 질병화는 표현과 창작에 대한 침해로 영화, 만화, 문화콘텐츠 미디어에 대한 탄압의 연장선”이라며 “이 때문에 공대위에 영화학회, 애니매이션학회, 융합콘텐츠산업협회 등 60여개 미디어 단체가 모였다”고 설명했다. 문화콘텐츠 주관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도 지난달 29일 WHO에 게임중독 질병코드분류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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