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원내대표 이후 사라진 국회 협상

윤호우 선임기자 2019. 5. 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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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4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복도에서 정의당 이정미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누워서 길을 막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지난 4월 30일 새벽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법 개혁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되기 직전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환경노동위 간사로 활동했음을 이야기하며 “홍영표 원내대표는 환노위 위원장 때에도 패스트트랙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제1호인 ‘사회적 참사법’을 말한 것이다.

패스트트랙 제도는 18대 국회의 ‘몸싸움’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이명박 정부의 여대야소 정국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밀어붙이기로 일관했고, 야당인 민주당은 몸싸움으로 막았다.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해머가 등장했다. 2009년 미디어법 통과에서는 큰 충돌이 있었다. 여야 간 협상은 없었고 몸싸움만 남았다. 패스트트랙 제도를 담은 국회 선진화법은 2012년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패스트트랙이었다.

패스트트랙 제1호인 ‘사회적 참사법’은 국회 농해수위가 아닌, 국회 환노위가 떠안았다. 당시 환노위 위원장이 홍 원내대표였다. 2016년 12월 23일 환노위에서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사회적 참사법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334일이 지난 후인 2017년 11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제2호인 ‘유치원 3법’은 지난해 12월 말 국회 교육위에서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홍 원내대표가 원내 사령탑일 때였다. 4월 29일 밤과 30일 새벽, 선거법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각각 국회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에서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것도 홍 원내대표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 5월 말까지인 20대 국회 회기 내에 사법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여당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몸싸움을 피하고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도록 만든 패스트트랙이 오히려 몸싸움의 원인이 됐다.

홍 원내대표가 유독 패스트트랙과 많이 얽혔지만, 원내 협상전략은 유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과 대치했을 뿐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제2야당인 바른미래당의 ‘잦은 수정’ 요구에 능숙하게 협상했다. 소수 야당인 민주평화당·정의당과의 협상도 매끄러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연말 예산정국에서는 한국당과 손잡고, 올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는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손을 잡을 정도로 협상의 ‘기술’을 보여줬다. 5월 7일, 1년의 임기를 마치는 홍 원내대표의 협상전략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명백히 달라졌다. 협상 상대인 제1야당의 원내대표 임기와 맞물려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상대한 전반기(2018년 5월 11일∼2018년 12월 11일)와 나경원 원내대표와 상대한 후반기(2018년 12월 12일∼2019년 5월)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김성태 단식농성장 찾은 홍영표 홍 원내대표가 지난해 5월 11일 당선되자 김성태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농성장을 가장 먼저 찾아갔다. 김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 중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노동계 출신 정치인으로, 19대 국회에서는 환노위 여당(김성태) 야당(홍영표) 간사로 활약했다. 누구보다 상대방을 잘 알았고 주고받는 협상의 기술을 알고 있었다. 김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을 요구했고, 홍 원내대표는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통과를 요청했다. 김 원내대표는 단식을 끝냈다. 두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과 추경을 주고받았다. 특검에서도 김경수 당시 의원의 이름을 명시하는 것과 특검 추천을 거부할 수 있는 방식이 논란이 됐지만 두 원내대표는 명칭과 거부권을 서로 주고받았다. 협상의 기술을 보여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왼쪽)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4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7월에는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이 여야 간 논란이 됐다. 청와대 관련 상임위인 운영위원회와 법안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법사위원회를 서로 차지하려는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운영위원장은 민주당이 차지하고, 법사위원장은 한국당이 차지하는 것으로 주고받는 협상이 이뤄졌다.

홍영표-김성태 원내대표의 협상은 지난해 12월에 올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야3당은 예산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연계시키기 위해 단식농성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예산안은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의 합의만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임기는 예산안 통과로 끝났고 협상 대상이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로 바뀌었다.

첫 합의는 12월 15일 이뤄졌다. 나 원내대표는 공공분야 채용비리 의혹 국정조사특위를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채용비리를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여당은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과 사립유치원 관련 개혁법안을 합의문에 집어넣는 데 만족했다. 여기에 4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문제가 된 선거법 합의문도 이때 이뤄졌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후 선거법 합의문에 대해 ‘단식농성 중이었던 야3당을 달래기 위해 합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나경원 인기 오르지만 당에는 무익” 지난해 12월 말에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이 관건이었다. 여당은 김용균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한국당이 요구하는 대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운영위 출석에 합의했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같은 비상설 특위의 연장법안도 이때 합의됐다. 하지만 양당이 팽팽히 맞섰던 ‘유치원 3법’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연말에 교육위에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의 주도로 유치원 3법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이후 나 원내대표는 김태우 특검, 신재민 청문회, 손혜원 국정조사, 조해주 선관위원 사퇴를 요구하면서 여야 협상은 공전했다. 민주당의 원내 한 관계자는 “일방적인 청문회·특검·국정조사를 나열식으로 내놓아서 협상이 도저히 이뤄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1월 이후 국회는 정상적으로 열리지 못했다. 여론에 떠밀려 3월 5일 국회가 일부 정상화됐다. 각종 청문회와 특검·국정조사를 주장한 나 원내대표의 손에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못했다. 한국당은 뒤늦게 비례대표를 없애고, 국회의원을 줄이는 안을 내놓았다. 이에 반발해 여당과 야3당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채 선거법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4월 30일에는 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한국당은 장외투쟁을 선포했다. 수도권의 한 여당 의원은 “의원들 사이에 앞으로 20대 국회의 남은 1년 동안 한국당 나 원대대표와 정상적인 협상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겠나라는 비관론이 많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의 협상 태도에 민주당이 합의조건을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의 한 관계자는 “선거법 개혁안을 보면 제3당인 바른미래당이 열쇠를 쥐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민주당이 바른미래당과 함께하는 협상전략을 취한 반면,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나홀로 협상’ 전략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양당의 강경대치 국면에서 “더 이상 협상은 필요 없다”는 강경한 목소리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협상이 필요하다는 온건론도 있다.

수도권의 다른 한 여당 의원은 “협상 없이 패스트트랙으로 간 책임은 야당의 원내대표가 져야 하지만 민주당이 여당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한국당과 협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한국당은 지지율이 오르면서 많은 것을 얻은 듯 보이지만 협상의 기술이 부족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한 의원 측은 “주고받는 협상전략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면서 나 원내대표 개인의 인기만 올라갔을 뿐 당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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