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000명의 아이가 시설로 보내진다 [뉴스+]

이상수 입력 2019. 5. 5. 13:28 수정 2019. 5. 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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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조치 원인 '학대' 26%로 최다 / '미혼모·혼외자' 비율도 22% 달해 / "부모와 지낼 수 있는 지원책 필요" /"시설 아이들 중 진짜 고아 거의 없어 / 부모의 잘못으로 아이들 피해.. 人災" / 학대 피해 아동·자녀 유기도 증가세 / "가정 회복시켜 아이들 돌려보내야 / 원가정 종합적인 지원체계 강화를 / 시설 보육환경 개선·아동보호 필요"
#1. A양 자매는 최근 경기도의 한 보육원에 입소했다. A양 자매를 키워 온 엄마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엄마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워왔다. 친부는 전혀 책임지지 않았고, 친정과도 연락이 끊겨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생활비가 없어 빚을 지고, 월세조차 내지 못해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됐다. 결국 머물 집을 구하고 자리를 잡고 난 뒤 데려가겠다며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겼다.
 
#2. B군 남매는 학대피해아동쉼터에 머무르고 있다. 부모는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친부는 술을 많이 마셨고, 취하면 아이들을 때렸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친모는 아이들에게 화풀이하곤 했다. 남매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더러운 옷을 입고 다녔다. 이웃의 신고로 학대가 드러나면서 부모와 떨어지게 됐다.
 
◆ 학대·방임에…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는 아이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으로 들뜬 5월이지만 ‘가정해체’라는 그늘에 가려진 아이들이 적지 않다. 매년 4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부모 품을 떠나 보육원 등 시설로 보내지고 있다. 부모가 이혼이나 생활고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 학대하고 방임하는 등 부모가 자격이 부족해 가정에서 나오게 된 아이도 늘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은 TV 속 이야기일 뿐이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호조치 아동 수는 2017년 말 현재 4121명이다. ‘보호조치’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원가정 대신 보육원이나 그룹홈, 입양가정 등에서 돌보는 것을 말한다.
 
보호조치 아동 수는 2013년 6020명, 2014년 4994명, 2015년 4503명, 2016년 4592명 등 절대적인 수는 줄어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착시효과일 뿐, 실제로는 저출산으로 전체 아동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호조치 아동이 전체 아동의 0.05% 수준으로 꾸준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2013∼2017년 보호조치 아동 2만4230명을 대상으로 발생 원인을 분석해 보면, 학대가 26%로 가장 비중이 크다. 부모의 생활고와 가정해체 사유도 많다. 미혼 부모 자녀·혼외자 시설 위탁이 22.3%, 부모 이혼이 21.9%, 부모빈곤·실직이 5.9%였다. 이밖에 비행·가출·부랑 7.9%, 부모사망 7.7%, 유기 5.8% 등이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발생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조사와 상담을 거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보육원에 보내지는 경우가 전체의 33.7%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가정 위탁이 25.9%, 공동생활(그룹홈) 11.9% 순이었고, 입양은 6.8%였다.
 
이봉주 서울대 교수(사회복지)는 “보호아동의 절대적인 숫자만 보면 줄어들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열악해지고 있다. 학대·방임으로 가정에서 돌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지고, 베이비박스에 유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아동이 시설에 가지 않도록 예방하고, 가정으로 돌아와 부모와 지낼 수 있게 종합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진짜 '고아' 거의 없어요"…이혼·생활고에 맡겨져
 
“요즘 시설 아이들을 보면 부모 사망 등 이른바 진짜 ‘고아’는 거의 없어요. 부모의 학대, 이혼이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대부분이죠.”
 
아동보육을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2일 “아이를 키울 수 없는데 입양은 친권을 포기해야 하니까 안 하고 시설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리 잡으면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데, 사실 기약은 없다”며 “한번 시설로 보내지면 성인이 될 때까지 시설에 머물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의 연도별 보호 아동 현황을 보면 2017년 1만5600명이 양육시설이나 그룹홈 등에 머무르고 있다. 2013년 1만7657명에서 12% 줄었다. 이는 한해 발생하는 보호조치 아동의 2013∼2017년 감소율 31%보다 적다. 시설에 맡겨진 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보호아동 발생 원인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사유가 미혼 부모·혼외자인 경우와 부모 이혼인 경우를 합치면 40% 안팎을 차지한다. 부모빈곤·실직인 경우(5% 내외)까지 합치면 경제적 사유가 절반에 가깝다. 둘이 벌어도 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에서 부나 모 어느 한쪽이 혼자서 돈벌이와 양육을 병행하긴 쉽지 않은 현실이다. 형편이 나아지기도 힘드니 시설에 맡기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학대 피해 아동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부모의 학대로 시설 보호를 받게 된 아동은 2013년 1117명에서 2017년 1437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보호아동수가 감소한 것과 다른 흐름이다. 전체 보호조치 아동 중 차지하는 비중도 2013년 18.6%에서 2017년 34.9%로 높아졌다. 부모의 학대로 아이가 숨지는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관련 대책이 만들어지고,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면서 신고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학대 가해 부모는 교육 등을 받아야 한다. 그래도 부모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해도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다. 아예 부모가 자녀를 버리는 유기도 증가세다. 전체 보호조치 아동 가운데 유기는 2013년 4.7%, 2015년 7.1%, 2017년 6.3%로 비중이 늘고 있다. 베이비박스의 등장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인 아이들이 최선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를 시설에 맡겨야 하는 상황을 예방하고, 시설에 맡겼더라도 돌아올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시적으로 분리하더라도 가정을 회복시켜 아이를 돌려보내는 게 중요한데, 원가정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봉주 서울대 교수는 “취업, 생계비, 주거 등 원가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국가·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시설에 보내는 경우보다 원가정 양육을 지원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필요한 경우 아이들이 시설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보육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소규모 인원이 지내면서 가정과 가장 가까운 분위기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육원이나 위탁가정 등에서의 생활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보육원 원장이 원생들을 학대해 법적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는 이유다.
 
아동의 심리 안정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학대 등으로 심리가 불안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언어·놀이·음악 치료와 개별·집중상담, 심리 및 인터넷 중독 치료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는 “최근 아이들이 시설로 보내지는 것은 ‘인재(人災)’다. 어른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시설로 보내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고, 시설에 대해서는 정부가 현장 실태조사를 강화하고, 시설 아동에 대한 공공후견인을 도입하는 등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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