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충돌 가능성 100만분의 1..그러나 우주에선 종이 한 장 차이

이정호 기자 2019. 5. 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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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10년 뒤 3만1000㎞까지 접근하는 소행성 ‘아포피스’

러시아 현지시각으로 2013년 2월15일 오전 9시쯤, 우랄산맥 기슭의 한 대도시 상공을 불덩어리 하나가 빠르게 가로지른다. 난데없는 광경에 놀란 시민들을 뒤로하고 불덩어리는 지상 가까이로 순식간에 이동하며 굉음을 내고 폭발한다. 낙하지 주변 공장과 주택 7000여동이 부서지고, 부상자는 무려 1000여명에 달했다. 러시아 첼랴빈스크 소행성 낙하 사건이다.

이러한 소행성 낙하 장면이 도시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에 찍히면서 우주에서 날아든 재앙으로 인한 공포는 피해 지역인 첼랴빈스크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번졌다.

문제는 이런 일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크고 작은 소행성 수백만개가 태양 주위를 도넛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언제든 이것들이 지구로 날아들어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워싱턴서 ‘행성방위회의’ 개최 ‘야르코프스키 효과’ 등 논의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3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행성방위회의’에선 바로 소행성 충돌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심도 깊게 오갔다.

행성방위회의는 2004년부터 미국과 유럽 등 세계 행성과학자들이 꾸준히 열었지만, 올해는 더욱 긴장된 분위기 속에 개최됐다. 지구로 바짝 접근할 시점이 꼭 10년 앞으로 다가온 소행성 ‘아포피스’ 때문이었다.

아포피스는 고대 이집트 태양신 라(Ra)를 삼킨 뱀의 이름을 따 지은 소행성으로 2004년 처음 발견됐다. 아포피스는 10년 뒤인 2029년 4월13일, 지구 앞 3만1000㎞까지 접근한다. 꽤 먼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2015년 10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지구 초근접 소행성으로 정의한 또 다른 소행성은 지구와 50만㎞ 떨어져 있었다. 아포피스보다 17배나 먼 지점을 통과했는데 지구를 스친다고 본 것이다. 아포피스는 말 그대로 습자지 한 장 차이를 두고 지구를 지나는 셈이다.

문제는 아포피스의 경로를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려워 지구를 스치기만 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유는 바로 ‘야르코프스키 효과’라는 천체 현상이다. 우주전문매체 스페이스닷컴은 행성방위회의에 모인 과학자들이 야르코프스키 효과의 영향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고 전했다.

태양을 바라보는 소행성의 면은 뜨겁게 달궈지며 열을 머금는다. 이렇게 달궈진 면은 소행성이 회전해 태양 반대쪽을 향한 뒤에도 여전히 열기를 내뿜는다. 이렇게 튀어나가는 열기에서 일종의 추진력이 생긴다는 게 야르코프스키 효과다. 노를 저으면 그 반작용으로 배가 전진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사실 야르코프스키 효과가 만드는 추진력은 매우 작다. 문제는 야르코프스키 효과가 일어나는 곳이 우주라는 데 있다. 야르코프스키 효과로 생긴 힘을 감소시킬 공기 저항이 우주에는 없고, 소행성의 크기가 수십 또는 수백m에 불과하다면 궤도를 바꿀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된다.

무엇보다 우주는 광대하다. 조금만 방향이 바뀌어도 초속 수십㎞로 이동하는 소행성에는 엄청난 궤도 변화가 생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선 핸들을 조금만 돌려도 차선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과학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야르코프스키 효과가 생겨 아포피스의 궤도가 바뀐다면 2036년 지구를 다시 찾아올 아포피스의 지구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현재로선 아포피스가 2036년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은 100만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얘기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야르코프스키 효과로 궤도가 얼마나 변할지 알려면 오랫동안 관측 자료가 쌓여야 한다”며 “2029년 지구에 아포피스가 접근할 때 집중적인 탐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르코프스키 효과에 더해 아포피스가 2029년 지구 중력의 영향까지 받으며 궤도가 2중으로 틀어질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는 게 행성방위회의에 모인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험이 가중되는 셈이다.

63빌딩보다 훨씬 큰 ‘매머드급’ 궤도 예측상 2029년에 초근접 히로시마 원폭의 10만배 위력 천체현상 변수 땐 재앙 올 우려

만에 하나 아포피스가 지구와 충돌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장 큰 문제는 거대한 덩치다. 길이가 340여m로 똑바로 세운다면 63빌딩보다 크다.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추락한 소행성 길이가 20m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매머드급이다. 아포피스가 지구와 충돌하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만배에 해당하는 위력을 보일 것으로 과학계는 예상한다. 국가 하나를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만약 바다에 떨어진다면 초대형 쓰나미가 생기면서 세계 해안 도시 곳곳이 수장을 면치 못하게 된다. 쓰나미는 해안을 휩쓴 뒤에도 내륙 깊숙이 치고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소행성 충돌로 생긴 다량의 먼지가 하늘을 가리면서 장기간 햇볕이 지상에 닿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식물이 고사하면서 먹이사슬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일들이 현실화한다면 인명과 재산 피해는 지금까지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핵미사일로 소행성 폭파?…영화 속 얘기일 뿐

탐사선 보내 경로 틀거나 충돌 몇년 전 미리 알아야 실행 가능

1998년 개봉한 영화 <아마겟돈>의 포스터. 지구로 돌진하는 소행성에 인간이 착륙해 폭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8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아마겟돈>은 미국 텍사스주 크기만 한 소행성이 지구로 돌진하자 굴착 전문가들을 우주선에 태워 소행성으로 보낸다는 줄거리다. 소행성에 가까스로 착륙한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구멍을 파 폭탄을 묻는다. 비장한 심정으로 폭파 버튼을 누른 주인공은 결국 소행성을 산산조각 낸다. 지구를 구한 것이다.

과학계에선 이 같은 상상력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정말 텍사스 크기만 한 소행성이라면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몇 시간 만에 산산조각 낼 정도로 중심부까지 굴착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소행성 위에서 굴착 같은 정밀한 작업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량이 달보다 훨씬 작은 소행성에서 사람의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둥둥 떠다니기 마련이다. 사람이 몸을 가누며 굴착기를 다룰 정도의 중력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우주를 향해 쏘는 건 어떨까. 영화 <딥 임팩트>에는 혜성에 우주선을 보내 파괴하려는 노력이 실패하자 최후의 대책으로 핵미사일을 쏘는 상황이 묘사된다.

기술적인 가능 여부를 넘어 우주 공간에서 핵무기를 쓰지 못하게 한 국제 규약을 두고 국가들 간에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리적인 위치상 직접적인 충돌에서 비켜 서 있는 일부 국가들은 핵미사일 발사를 반대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문제는 영화 밖이라고 해서 소행성에 대항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세계 과학계에선 재앙을 피하기 위해 조기 발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름 140m급 소행성을 최대한 많이 발견하는 게 목표다. 이 정도 크기도 지구로 떨어진다면 미국의 주 하나는 날려버릴 만큼 엄청난 위력을 갖는다. 미리 발견해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다.

만약 충돌이 예상되는 소행성을 발견한다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선 뭘 할 수 있을까. 소행성으로 탐사선을 보내 그저 옆에서 같이 비행하게 하는 것만으로 재앙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소행성과 탐사선 간에 생긴 중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끈과 같은 역할을 해 소행성의 경로가 살짝 바뀔 것이고, 이 차이가 비행을 할수록 커져 결국 지구를 비켜가게 할 수 있다. 상황이 더 다급하다면 아예 탐사선을 충돌시켜 직접적인 충격을 가할 수도 있다. 소행성과 일종의 몸싸움을 벌여 경로를 바꾸는 방법이다.

박창근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본에선 이미 무인 탐사선을 소행성에 보내 착륙시킨 사례가 있는 만큼 소행성 방어를 위해 가능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모두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기 최소 몇 년 전에 발견될 때 실행 가능하다. 몇 개월 또는 며칠 전에 발견된다면 충돌 자체를 피하는 건 어렵다. 범지구적인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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