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관용의 軍界一學]軍정신교육 교재 발간..6·25전쟁, '기습'일까 아닐까

김관용 2019. 5.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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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군 당국은 장병들의 대적관을 분명히 하고 전투 의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신교육용 표준 교재를 만듭니다. 이 기본교재의 모체는 1976년 ‘국군정훈교정’으로, 이후 ‘정신전력지도지침서’ 등으로 명칭이 변경됐다가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위기극복을 위한 우리의 다짐’이라는 최근 형태의 정신교육 기본교재로 바뀌었습니다. 이 기본교재는 5년 단위로 재발간됩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발간 이후 지난 해 새 교재가 나왔어야 하지만, 1년여 가량 늦어져 최근에야 일선 부대에 배포됐습니다. 안보상황 변화에 따른 일부 내용 수정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전해집니다.

기존 ‘정신교육 기본교재’에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로 명칭을 바꾼 이번 교재는 2013년 발간본과 마찬가지로 국가관·안보관·군인정신 분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주제는 기존 18개에서 12개로 줄었습니다. 교육 주기 등의 이유로 주제 수를 줄여달라는 일선 부대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군에 새로 입대한 신병들을 위한 정신전력 교재를 별도로 발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신병 교육 주기와 일선 부대 장병 교육 주기를 통합한 교재를 만들다 보니 주제 수가 12개로 줄었다는 것입니다.

육군 장병들이 GOP 철책 순찰을 하고 있다. [출처=국방부 홈페이지]
◇외부 전문가가 軍 정신교육 교재 집필

특히 이번 교재 집필은 처음으로 군 내부 정훈장교들이 아닌 외부 전문가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집필진은 실제 장병 정신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부대 정훈장교들과 4~5번의 공청회를 하고 ‘격론’의 과정을 거쳐 이번 새 교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간 군 정신교육 교재는 정치적 중립 논란에 시달렸던게 사실입니다. 지난 2012년 국방부의 종북실체 표준 교안이 대표적입니다. ‘사상전의 승리자가 되자!’라는 제목의 이 교안은 ‘종북세력은 우리 국군의 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대남전략 노선을 맹종하는 이적세력’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국방부는 이를 전 군에 하달하고 신병훈련소와 야전부대, 학교기관 등에서 장병 정신교육시 활용하도록 지시한바 있습니다.

이후 발간된 정신교육 기본교재에서도 총 18개 과 중 제11과 ‘사상전에서 승리하는 길’ 주제를 통해 종북세력을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을 조성하며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내부 세력’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종북세력이라는 개념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이를 군 장병들에게 교육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이에 따라 외부 집필진에 의해 만들어진 이번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선 종북세력이라는 표현이 사라졌습니다. 아예 ‘사상전’ 관련 주제도 없어졌습니다. 이와 함께 2013년 교재에 포함됐던 ‘우리의 적, 북한군의 실체’ 주제 관련 내용은 주제 수 조정에 따라 일부 수정돼 다른 주제에 편입됐습니다. 북한군과 북한 정권을 적시해 적으로 규정했던 기존 개념은 ‘현실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대체됐습니다.

◇6.25 전쟁은 ‘기습’이 아니다?

주제 수 감소에 따라 6.25 전쟁 관련 기술도 축소됐습니다. 2013년 교재에선 제7과 ‘자유를 지켜낸 6.25 전쟁’ 주제를 통해 6.25 전쟁의 전개 과정과 전쟁 피해, 6.25 전쟁의 성격 등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유는 결코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소주제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번 교재에선 제9과 ‘국가와 군대’ 주제 속 ‘6.25 전쟁과 교훈’이라는 소주제로만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번 교재의 6.25 전쟁 관련 부분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기습’ 관련 내용입니다. 2013년 교재에선 6.25 전쟁의 시작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전군에 ‘폭풍’이라는 공격 개시 암호를 하달하고 기습 남침을 해왔다.”, “북한의 기습 남침시 대한민국은 무방비 상태에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고…” 등으로 기술했습니다. 북한군의 기습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교재에선 제5과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 주제에서 “북한은 1950년 대남적화통일을 목표로 기습 남침을 감행했고…”라는 부분과, 제9과 ‘국가와 군대’ 주제에서 “국군은 이런 상태에서 북한군의 전면 기습 공격에 맞딱뜨리게 되었다.” 정도로만 표현했습니다.

사실 이번 교재의 6.25 전쟁 관련 부분을 기술한 외부 전문가는 당초 ‘6.25 전쟁은 기습이 아니다’는 취지의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감수 과정에서 관련 부분을 일부 삭제·수정했습니다. 6.25 전쟁이 기습인지 아니였는지의 여부는 해석의 논란이 있을 수 있어, 역사적 사실로서 사전적 의미의 기습으로 기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군 장병들이 행군 훈련을 하고 있다. [출처=국방부 홈페이지]
◇軍 ‘무능’ 포장하려…불법성·기습성 강조

기습의 사전적 의미는 적이 생각지 않았던 때에 갑자기 들이닥쳐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6.25 전쟁은 북의 기습 작전에 의해 시작됐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 군은 북한군과 여기 저기서 국지전을 치르고 있었고, 대규모 전쟁 준비를 한다는 첩보도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군의 미흡한 대비태세가 전면전을 야기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간 우리 군의 각종 교재에선 당시 군의 ‘무능’을 포장하기 위해 6.25 전쟁 관련 상당 부분을 북침설 반박과 남침의 불법성 설명에 할애해 왔던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6.25 전쟁의 기습성을 강조했습니다. 2013년 정신교육 기본교재 역시 그랬습니다.

이번 정신교육 교재에는 일부이긴 하지만, 당시 우리 군의 문제점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이번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일부를 옮겨 놓은 것입니다. 6.25 전쟁 직전 우리 군의 상태를 설명한 것이지만, 지금도 곱씹어 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내용입니다.

“북한군 전투부대가 38도선 북쪽에 전개해 공격 출발 진지에서 남침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6월 23일, 우리 군은 자정을 기해 비상경계령을 해제하였다. 이로 인해 24일 많은 장병들이 외출·외박을 나갔고, 전방부대의 주요 지휘관들이 육군회관 낙성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근무지를 벗어나 있었다. 차량과 총포의 상당수도 정비를 위해 병기창에 들어갔다. 일부 부대와 정보부서에서 북한군의 남침 가능성을 수차례 보고했지만 무시되었다. 국군은 이러한 상태에서 북한군의 전면 기습공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결국 군의 안이한 판단으로 인한 미흡한 대비태세는 수도 서울을 3일 만에 함락당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김관용 (kky144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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