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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M] 장애인 차별을 차별이라 부르지 못하고..법무부의 호부호형

이유경 260@mbc.co.kr 입력 2019. 05. 07. 15:34 수정 2019. 05. 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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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차별이라 부르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법무부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진영 씨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입니다. 김 씨는 내후년에 변호사 시험을 볼 예정인데요. 당장 학교와 김 씨의 동기들은 시험 대비에 들어갔습니다.

김 씨도 당장 기출 문제들을 확보해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에 돌입하려고 했습니다. 이 문제들은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개돼있어서 누구나 다운로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변호사 시험은 크게 선택형, 사례형, 기록형 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요. 이 중 선택형과 사례형은 모두 한글파일이 제공되지만 기록형 시험은 'jpg' 양식의 그림 파일만 올려져 있었습니다. 원본 한글 파일을 그림 파일로 변환한 뒤 업로드한 겁니다.

그런데 김 씨의 보조기기론 그림파일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문자를 음성이나 점자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정보에 접근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술들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림이나 PDF 파일은 읽을 수 없는 겁니다.

따라서 김 씨는 그림 파일로 제공된 기록형 문제는 읽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쉽습니다

이미지 파일의 원본 한글 파일을 제공하면 됩니다. 당장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림 파일의 원본 한글 파일을 주면 김 씨는 제약 없이 기출 문제들을 풀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거절했습니다

처음에는 김 씨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입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김 씨가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복지카드를 통해 장애를 입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법무부는 비장애인에게도 개별적으로 파일 주지 않는데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파일을 제공해줄 순 없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비장애인은 파일을 별도로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미지 파일을 프린트하면 됩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왜 비장애인과의 형평성을 얘기하는 걸까요? 차별에 대한 개념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차별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장애인 차별은 장애 그 자체에서 오지 않습니다. 장애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장애인들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현실에서 유래합니다.

카페 입구에 계단이 설치돼 있다고 가정해보시죠. 다른 사람들은 그냥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됩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그 계단 위에 경사로가 설치돼있다면 휠체어를 탄 사람도 바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겠죠.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법무부는 시각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따라서 김 씨는 다른 수험생들이 자료를 받아 공부를 하는 이 순간에도 자료 변환을 알아봐야 하고 전화해야하고, 요청해야합니다.

그냥 한글파일을 제공하면 금방 끝나는 일인데요.

이것은 명백한 차별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0조 1항은 장애인이 정보를 이용하고 접근할 때 장애 때문에 차별을 받아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무부가 만든 정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과정에서 차별이 있어선 안 됩니다. 법무부가 만든 변호사 시험 기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법무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3조에 따라 장애인 차별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관입니다. 인권위 권고를 따르지 않은 기관에게 법무부가 문제를 시정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차별에 맞서 문제를 해결해야할 법무부가, 정작 내부의 차별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는 꼴입니다.

가짜 개인정보 유출, 학원에서 도용 우려…

보도가 나간 뒤 법무부에선 해명자료를 내놨습니다.

"① 문제 내용에 개인식별정보(주소, 연락처, 주민번호 등)가 포함되어 정부 보안 정책상 홈페이지 업로드가 불가능하며, ② 법학전문대학원 실무교육과정에 충실하기 보다는 수험용으로 가공ㆍ재생산하여 고시학원화할 우려가 존재한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1번에서 언급한 개인식별정보란 무엇일까요?

시험에서 소장을 적거나, 문제 사례로 들기 위해 적어둔 가짜 개인정보들입니다. 법무부는 개인정보가 적인 한글 파일은 온라인 업로드할 수 없는데, 가짜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가짜 개인정보들이 유출될 우려 때문에 업로드가 금지되는 것도 우습지만, 그런 알려지지 않은 내부 규정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현행법보다 우선시 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 해당 자료가 수험용으로 가공, 재생산될 우려가 있다는 해명도 말이 안 됩니다. 이미 선택형, 사례형 문제는 법무부가 한글파일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는 그러면서 나름의 대안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대책도 역시 시각장애인 개인에게 터무니 없는 대안이었습니다.

법무부 '직접 법무부에 와서 시험지 열람하라'

법무부는 김 씨가 직접 법무부에 와, 한글 파일을 열람 후 녹음을 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법무부 차원에서 별도의 시각장애인용 음성파일을 제작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 기출 문제를, 김 씨는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법무부까지 와서 열람하라는 겁니다. 게다가 음성파일 자체도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비시각장애인들이 주요 단어들을 눈으로 찾아가며 문제를 풀 듯, 시각장애인들은 텍스트 검색 기능을 이용해 필요한 단어들을 찾습니다. 그런데 음성 파일은 그냥 시험문제를 읽어주기만 합니다. 검색도 안되고, 재생과 정지를 반복해가며 들어야하니 무척 번거롭습니다. 정작 장애인 당사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안입니다.

법무부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

법무부는 이번 건을 두고 '정보 접근을 제한한 장애인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이런 이의 제기를 한 사람은 김 씨가 처음이며, 시각장애인이 변호사 시험에 응시한 해(1,4,7,8회)에는 시각장애인용 시험지를 제공했다'고 얘기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차별과 맞서야할 법무부가 오히려 내부의 차별을 인지조차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김 씨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최초의 시각장애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법무부의 말에 따르면 이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김 씨가 처음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장애인들은 매일을 투쟁하며 살아갑니다. 법무부가 아니어도, 그냥 일상에서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물건을 주문할 때도 장애인들은 당연한 권리를 부정당하고 그 부정당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싸웁니다.

그렇게 투쟁을 하다보면 무적 로보트가 아닌 이상 누구나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런 상황에선 일상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바꾸려는 노력보단, 그냥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더욱 쉽습니다.

김 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면,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법무부와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싸운 결과 내 권리를 쟁취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따라서 법무부에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며 싸우는 것보단, 그냥 몇 개월 기다리며 복지관이나 자원봉사자에게 자료를 변환해달라고 말하는 게 훨씬 간단하고 쉽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존재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그는 도로 위에 박힌 큰 돌을 나 혼자 피해 돌아가지 않고, 모두를 위해 파내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김 씨는 동기들이 법전을 들여다보고 시험을 준비하는 오늘도 법무부에 전화를 걸며 긴 싸움을 이어갑니다.

▶ 관련 영상 보기 [소수의견] 공부하고 싶다는데…'장애인 차별' 법무부

이유경 기자 (260@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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