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 없는 이란 경제난, 하메네이 '신정체제' 흔든다

박효재 기자 2019. 5. 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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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미, 이란 핵합의 탈퇴 1년
ㆍ미, 민수용 핵개발 활동도 제재…군사적 압박 수위 높여
ㆍ민심도 흉흉…시아파 성직자 살해범 “신정체제에 봉기”
ㆍ온건보수 로하니 대통령 ‘하메네이 리더십’에 도전 행보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하며 이란 압박을 본격화한 지 8일(현지시간)로 1년째다. 미국이 이란을 경제적·군사적으로 거세게 몰아붙이면서 이란 내부 상황은 어수선하다. 경제난이 가속화하면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사진)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고조되고,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하메네이의 대립 행보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 옥죄기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달 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지난 2일에는 일부 국가들에 유예했던 이란산 원유 금수 면제 조치를 종료했다. 4일 이란 핵합의에서 민수용 핵개발 활동으로 용인한 우라늄 저농축과 중수로 생산도 제재하겠다고 발표했고, 5일에는 이란의 위협 증대를 이유로 중동에 항공모함과 폭격기 기동부대까지 파견했다. 이란을 불법국가로 낙인찍으면서 돈줄을 막고 군사적 압박 수위도 높이는 상황이다.

이란은 정부가 미국의 전방위 공세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내부 민심이 흉흉하다. 극심한 경제난에 세계 유일의 신정체제(이슬람법학자 통치)까지 도전받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파르스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하마단의 시아파 성직자 호자톨레슬람 모스타파 가세미가 지난달 26일 혁명수비대 특수부대 쿠드스 출신 베흐로즈 하지루에게 총으로 피살당했다.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에서 수니파 성직자 살해 사건은 종종 벌어지지만 시아파 성직자가 살해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신정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된다.

하지루는 인스타그램에 범행 사실을 알리면서 군인들에게 “이란 신정체제에 봉기하라”고 촉구했다. 혁명수비대 출신들이 더 많은 성직자를 살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범행은 가세미가 과거 시아파가 다수인 인접국 이라크와 연대 강화를 촉구하고, 이슬람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하지루가 범행 사실을 밝힌 이후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어 수는 순식간에 10만명을 넘겼다. “이란에서 성직자를 한 명이라도 더 줄여야 한다”는 댓글이 잇따랐다. 이란 여배우 마흐나즈 아프샤르는 가세미의 사망을 애도하는 대신 그의 과거 발언들을 비난했다.

하메네이가 지난달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에서 호세인 살라미로 교체한 것을 두고 민심 수습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남서부 후제스탄주와 북서부 일람주에서는 지난 3월부터 3주째 이어진 홍수로 최소 70명이 숨졌다. 이란 전체 31개 주 가운데 25개 주가 수해를 입었다. 후제스탄주의 일부 유전은 가동이 중단됐다. 혁명수비대는 국방뿐만 아니라 인프라·에너지 부문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혁명수비대 고위 간부들이 재난지역을 방문해 피해지역 주민들의 거센 원성만 들었다면서 총사령관 교체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민심의 분노는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경제난이 길어지면서 커지고 있다. 신정체제가 서구 국가들 비난만 할 뿐 돌파구를 만들지 못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실제 트럼프 정부의 지난해 11월 이란 제재 복원으로 경제난은 가중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의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6%포인트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율은 37.2%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온건보수 성향인 로하니 대통령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로하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지난 3월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 나자프를 방문해 이란의 성직자 대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만났다. 문제는 시스타니의 이슬람법 해석이 하메네이의 해석보다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로하니 대통령의 방문을 두고 일각에서 하메네이 리더십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스타니는 회동에서 “성직자는 조언할 뿐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로버트 글리브 영국 엑서터 대학 교수는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로하니는 이슬람법학자 통치 체제가 만능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에게 여지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금 고갈에 시달리는 로하니 정부는 종교학교 지원금을 약 3분의 1로 줄이기도 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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