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과학자가 찍은 블랙홀 사진은 진짜일까? [구석구석 과학사]

입력 2019. 5. 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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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과서나 신문 등에서 자주 봐서 친숙하게 여기는 천체나 세포 등의 사진도 사실 대부분 거짓 색상 사진이다. 하지만 일정한 규칙에 따라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색상을 바꾸었을 뿐,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말머리성운의 사진 / amazonaws

지난 4월 10일 세계 100여개 기관이 협력해 2006년부터 추진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가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은 도넛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사진에 수십억의 사람들이 열광했다. 인류가 블랙홀의 존재를 처음으로 시각적으로 확인한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편의상 다들 ‘블랙홀 사진’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이 사진에 보이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블랙홀은 아니다. 그림자를 보고 빛의 존재를 추론하듯이 빛조차 가두어 버리는 절대 어둠의 존재는 주변의 빛을 보고 확인할 수밖에 없다. 사진에 불그스름한 도넛처럼 보이는 고리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지 않은 채 주위를 도는 기체와 빛이고, 그 안의 시커먼 공간이 이른바 ‘사건의 지평선’의 안쪽이다. 도넛(?) 안쪽의 검은 공간은 태양계 전체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광대한 영역인데, 그 안의 사정은 알 수 없으나(그래서 저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 가장자리의 사진을 찍는 데 성공한 것이다.

‘거짓 색상 사진’이라 부르지만 진짜 사진

M87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약 5500만 광년(1광년은 약 9조5000억㎞)이나 떨어져 있다. 즉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5300만년 전에 사건의 지평선에서 탈출한 빛을 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온 빛이니 흐릿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EHT 프로젝트가 8대의 전파망원경으로 5페타바이트(500만GB)의 데이터를 모아 합쳐 얻은 것이다. 데이터를 합치다니, 그러면 저 사진은 블랙홀을 ‘그대로 찍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사실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블랙홀 사진을 비롯해 대부분의 천체 사진, 나아가 세포나 단백질의 사진 등 많은 과학 사진들은 특수한 과정을 거쳐 얻는다. 우리가 셀카를 찍거나 꽃이나 반려동물의 사진을 찍을 때는 가시광선으로 전달된 정보를 기록한다. 아주 작거나 아주 큰 세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으려면 가시광선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시광선의 파장은 짧게는 약 38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에서 길게는 770㎚ 정도인데, 간단한 분자나 낱개 원자의 크기는 1㎚도 되지 않으므로 아무리 성능이 좋은 현미경을 사용해도 광학적으로는 관찰할 수가 없다. 이렇게 작은 대상을 관찰하려면 그보다도 파장이 짧은 전자의 운동을 이용해야 한다.

한편 천체로부터 오는 신호에는 매우 긴 파장부터 매우 짧은 파장까지 여러 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들이 섞여 있는데, 이 또한 인간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으므로 전자장비로 따로 탐지해야 한다.

이렇게 인간이 볼 수 없는 신호를 모은 뒤 그것을 활용하려면 일종의 번역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듯이, 가시광선이 아닌 신호도 가시광선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아무렇게나 색을 입히면 정보로서 가치가 없어지므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변환한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 영역의 빛은 중간 파장인 초록색으로 변환하고, 적외선은 빨강, 자외선은 파랑 계열의 색으로, 각각 일정한 비율로 변환하여 사진을 다시 그리면 가시광선과 적외선, 자외선으로 전달된 정보까지 한 사진에서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색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변환한 사진은 실제 색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므로 ‘거짓 색상(false color)’ 사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교과서나 신문 등에서 자주 봐서 친숙하게 여기는 천체나 세포 등의 사진도 사실 대부분 거짓 색상 사진이다. 오리온 대성운이나 말머리성운 등의 사진은 매우 큰 망원경을 통해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가시광선과 그 바깥 영역으로 전해진 매우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인 뒤, 이것을 가시광선 영역의 신호로 변환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말머리성운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 해도, 우리 눈에는 사진 같은 광경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훨씬 작아 광학현미경으로는 제대로 관찰할 수 없는 세포나 그보다 작은 원자의 사진도 전자현미경으로 얻은 신호를 가시광선 대역으로 변환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이 기상 사진이나 체온 사진 등에 자주 보이는 ‘유사 색상(pseudo-color)’ 사진이다. 유사 색상 사진은 넓은 의미의 거짓 색상 사진에 포함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정한 한 가지 측정값(온도, 고도, 압력 등)을 색깔로 변환해 그 세기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따로 구별하기도 한다. 유사 색상 사진의 대표적인 예는 우리가 건강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보는 열화상 카메라 사진이다. 열화상 카메라는 피사체의 온도를 측정한 뒤 온도에 대응하여 색상을 배당한다. 여름철 기상예보에 등장하는 태풍이나 장마전선의 위성사진도 기압에 대응하여 색을 입힌 유사 색상 사진이다.

과학이 확장해준 인간 감각의 세계

이름이 주는 부정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진이 가짜라고 할 수는 없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색상을 바꾸었을 뿐, 없는 것을 만들어 내거나 있는 것을 무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정보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에서는 거짓 색상 사진도 참 색상(true color) 사진 못지않게 ‘진짜’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 한참 전부터 인간은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래 시각정보가 아니었던 것을 시각정보로 변환하여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스프링에 축적된 탄성에너지를 보고 무게를 ‘쟀으며’, 모세관 속 수은이나 알코올이 팽창하는 것을 보고 온도를 ‘읽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측정하려면 언제나 번역 또는 변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할 때 기계의 도움을 받는 것도 문제 삼을 만한 일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감각의 범위를 확장해 나간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인간이 자연 그대로의 인간보다 그만큼 성장했다는 이야기이니 뿌듯하지 않은가?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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