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반일은 북한만 이롭게 하고 한국엔 이롭지 않다

입력 2019.05.10. 00:05 수정 2019.05.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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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유사시 미군 병력·자원
일본 거치는 만큼 일 협력 중요
반일은 한·미·일 협력 약화시켜
한국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어

한반도 평화와 일본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일본을 다루는 현 정부의 태도를 보면 마치 우리에게 적대적인 국가이거나, 관계를 단절해도 문제가 없는 성가신 이웃처럼 느껴진다. 일본이 한국의 안전과 번영의 안전판이라는 생각이 읽히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와 지역 안정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는 필수적인데, 우리는 식민지 시대의 과거사 피해 의식 때문에 전후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한·미 동맹처럼 한·일 협력은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일본을 멀리하는 것은 북한엔 이롭지만 한국엔 이롭지 않다.

◆ 안보 위한 한·일 협력 중요성=김정은은 지난 4일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이후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오히려 적절한 발언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한반도 평화 구축에 주력하고 있지만, 튼튼한 안보와 힘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많은 한국인은 한·미 동맹만 튼튼하면 한국 안보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반도 유사시 일본 또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은 한국 안보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자 안전판이다.

한국 안보를 위해서는 한국군은 물론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결합하는 한미연합사령부, 그리고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연계하는 유엔사령부를 포함하는 총체적 전력 동원이 불가피하다. 유엔사령부는 한·일 간 중심적 연결고리로, 이를 통해 일본에 있는 7개 유엔사 후방기지에 있는 안보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 본토에서 오는 대규모 증원군도 일본을 거쳐 들어온다. 식량 및 보급품의 조달은 물론 이들이 이용해야 하는 공항·항만·도로·기타 시설 등은 일본 정부와 일본 자위대의 후방 지원이 있어야 원활한 이용이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안보 자원의 총체적 가동은 한·일 협력을 전제로 한다. 한국 방위를 위해 일본은 국외자가 아니라 안보의 안전판이다.

유엔사령부는 휴전협정에 따른 정전체제 유지에 중요한 역할이 있으므로 정전을 선언하면 유엔사의 해체로 연결될 수 있고, 평화협정은 연합사의 해체를 불가피하게 할 수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란 한·미 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상정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힘에 의한 평화’에 기반을 둔 한국 안보를 해체하기 위해서 유엔사령부-연합사-주한미군사령부 순서로 힘을 빼게 하는 게 북한의 전략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한·일 협력, 특히 안보 협력의 해체는 한·미 동맹을 약화하기 위한 컨베이어 벨트와 같다. 외세의 배격은 남북한 군사 균형을 궁극적으로 북한에 유리하게 만들 뿐이다.

지난해 9월 25일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파커 호텔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 북한의 강온 양면 전략=북한은 1990년대 이후 자국 안보 강화를 위해 전력 면에서 한국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려 했다. 구체적으로 한반도 전역을 사정거리로 하는 단거리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통해 군사적 균형을 깨고자 했다. 이후 북한은 98년부터 일본을 사정권에 넣는 중거리 미사일인 대포동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였으며, 2016년부터는 괌·하와이를 넘어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주력하였다.

여기에 핵무기를 소형화해 미사일에 탑재하면 북한을 위협하는 공세적 수단들을 막을 수 있다는 게 북한식 발상이다. 한·일 안보 협력을 약화해 동북아에서 한국의 군사 지원 체제를 무력화시킨 후 미국 본토로부터의 지원 체제를 ICBM과 핵 위협으로 막겠다는 ‘공세적 방어 전략’이다.

북한은 핵은 포기할 의사 없이 갖가지 조건을 내세우면서 한국 안보를 약화할 수 있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현재 자신들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 제재 완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먹고 살 여력이 생기면 한반도 평화라는 명분으로 정전선언을 유도해 유엔사령부 해체를 시도한 다음, 한·미 동맹의 고리를 약화하는 방식으로 평화협정을 맺자고 할 공산이 크다. 한국과 일본을 군사적으로 떨어뜨려 놓은 다음, 한·미 동맹을 해체하는 수순이다. 한국을 미국과 일본에서 떼어내면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우위에 서고, 외교적으로 한국을 미·일에서 떼어내 고립시키거나 중국의 영향력이 더 잘 먹혀들게 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 반일 내세우는 북한의 셈법=북한이 보아도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은 쉽게 약화할 수 없다. 하지만 한일 관계는 약한 고리이다. 한국 내 강한 반일 정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사 비판을 한국보다 매몰차게 앞세우고, ‘우리 민족끼리’의 단결을 통해 친일을 척결하자는 소리를 높이면 한·일 간 거리를 쉽게 멀게 할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치밀하게 전략적이다.

우선, 한·일을 이간질해 안보 협력의 고리를 끊으면 한국엔 치명적이지만 북한엔 도움이 된다. 또 한·일 간 과거사 분쟁에서 민족 정기를 높이자고 반일 정서를 부치기면 한·일 갈등은 심해지니 북한은 앉아서 득을 본다. 나아가 친일·반일로 한국 사회 내부 갈등을 부추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반일이 북한에 유리한 이유이다.

한국은 중국의 과거사 접근법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 중국에 있어 과거사는 협상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공개적인 금전 요구는 중국의 위신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일본에는 사과와 반성을 주로 주문한다. 중국 관점에서 역사 문제는 일거에 청산할 수 없고 궁극적 해결 방법이 없어 오래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문제를 안고 가면서 때때로 활용하는 게 낫다는 접근법을 취한다. 반면, 한국은 일거에 과거사 청산을 하길 바라고, 같은 현안을 반복적으로 또는 다른 현안을 지속해서 제기한다. 북한과 중국이 ‘전략적 반일’이라면 한국은 ‘정서적·감성적 반일’이다.

◆ 전략적 포석 옮기는 일본=최근 일본은 시민사회와 공조해 과거사 문제를 지속 제기하는 한국보다 독재자인 북한 김정은과 협상해 아베 총리의 관심사인 납치 문제를 적정 수준에서 해결하고 대범한 전후 처리를 시도하기 위해 북·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통제 불가능한 한국보다 통제 가능한 북한이 협상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건 아닌가 싶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7년 만에 중·일 정상회담을 열어 갈등 고조에 대비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는 한편, 트럼프의 무차별적 무역 공세에 상호 보증보험을 들고자 했다. 제3국 공동 진출로 경제적 협력의 물길도 열었다. 경제계의 제3국 공동 진출은 한·일 경제계의 전매 특허상품이었는데, 경제력과 기술력이 향상된 중국이 이를 낚아채는 기미다. 일본이 한·일 경제 협력을 중·일 경제 협력으로 전환하면 한국 경제에 간접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은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지며 국제 질서의 파수꾼 역할에 소홀해지고 있다. 미국이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의지가 같은 국가들’의 국제 연대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일이 공동 추진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함께 유지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한국이 어느 정도의 의지로 여기에 참여할까가 미·일 편인가 중국 편인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미·일 동맹도 일본 방위를 위한 일방적 동맹에서 쌍무적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은 미·일이 동아시아와 아·태 지역을 넘어선 군사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동맹을 진화시키고 있다는 증표다. 미국을 끌어안고 도와서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 일본의 전략이다.

일본의 새로운 전략적 포석에서 보면 한반도에 갇힌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낮아지고 있다. 한·일 협력을 양자 관계를 넘어 넓은 지역과 글로벌 외교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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